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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눅 1: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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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눅 1:27-38)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네 번째 순서로,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대목을 함께 살펴봅니다. 사도신경 중에서 아마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 대번에 의문을 제기할 겁니다.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 말도 안 돼!” 인간의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사생아였다는 둥 예수의 탄생 기록은 억지로 지어낸 신화라는 둥 별의 별 소리를 다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사실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대목을 문자 그대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만일 아직도 긴가민가하다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아주 쉬운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쨌든 오늘 말씀을 통해 이미 믿는 분들은 재확인하시고, 혹시 아직 의심이 남아 있는 분은 이 문제를 꼭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 교리에 숨겨진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통지해 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흔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 사건이라 부릅니다. 

[1] 동정녀 잉테 :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건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초자연적 대사건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동정녀 잉태 교리를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어차피 자기 이성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정녀 탄생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사실은 마리아 본인부터 처음에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하루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천사입니다. 당시는 조혼을 하던 시대로, 마리아는 10대 나이의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들려준 말씀이 무엇입니까? 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때 마리아가 당황하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여기서 남자를 ‘안다’는 말은 동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때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고, 동거하기 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을 알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혼인은 3단계로 이뤄졌습니다. 약정, 약혼, 그리고 결혼입니다. 약정은 어렸을 때 부모들끼리 미리 약속해 두는 것을 말합니다. 약혼은 장성한 후 본인들의 동의로 결정하는데, 그 기간은 대개 1년입니다. 법적으로 부부와 동일한데, 절대로 동거하지 않고 철저히 순결을 지킵니다. 혹시라도 이 기간 중에 간음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합니다. 결혼은 완전한 부부로 동거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약혼 상태에 있던 마리아로서는 자기 몸에 아이가 잉태된다고 하니까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죠. 천사는 당황한 마리아를 설득하기 위해 친척 엘리사벳(세례 요한의 모친)의 예를 듭니다. 36절.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엘리사벳이 이미 경수가 끊긴 노인이었지만 아이를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잉태와 차원이 다르지만, 그래도 참고가 됩니다. 엘리사벳의 경우도 인간적으로 보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전해준 말씀의 요지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35절,37절. “35 ...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서 ‘덮는다’는 말이 특이합니다. 이 단어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기록과 흡사합니다. 창1:2~3 “2 ...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운행한다’는 말이 바로 ‘덮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암탉이 날개를 덮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창조 당시 그러셨던 것처럼 전능한 능력으로 이루신 기적임을 증거합니다. 

천사로부터 이렇게 자초지종을 들은 마리아가 마침내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38절. “ ...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 ” 이건 엄청난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이렇게 해서 처녀의 몸에 예수님이 잉태되셨습니다. 

그런데 약혼자 요셉이 문제였습니다.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고민에 빠져 고민하다 조용히 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을 사용하지만 요셉과 마리아의 인생을 망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 경위를 설명해 주십니다. 마1:18~25에 그 기록이 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이름까지 예수라 지으라고 알려줍니다. 요셉은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당장 마리아를 데려와 보호합니다. 그리고 예수 탄생 이전까지 순결을 지킵니다. 

이처럼 마리아와 요셉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동정녀의 잉태! 그러나 하나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그들은 의심을 벗고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설명을 통해 동정녀 잉태를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는 비이성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게 아니라 초이성적이고 초과학적인 하나님의 역사요, 역사 상 단 한번만 존재했던 놀라운 기적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둔한 인간이 자기 수준에서 생각하니까 가능하니 불가능하니 과학적이니 비과학적이니 따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수준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요즘 보면 인간의 과학수준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시험관 아기, 체외 수정 등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인간복제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재주가 이 정도라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정녀 마라이의 성령 잉태를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동정녀 잉태의 의미 :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신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대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빌리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입니다. 이른바 신인(神人 God-Man)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구약 성경에 예언되고 예언되었던 겁니다. 최초의 예언은 창3:15입니다. 아담과 여자의 타락 이후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운명에 처한 인류를 위해 주신 구원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를 유혹한 뱀에게 한 말씀입니다. 뱀도 문제지만 그 속에 들어가 역사한 사탄이 진짜 문제죠. 사탄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된다는 겁니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에서 나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십자가 고난을 의미하고, 뱀의 머리가 상하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 사탄이 패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십자가 복음의 최초 예언이라 ‘원시복음’(原始福音)이라 부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예언의 말씀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구절은 사7:14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7백여 년 전의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이 되는 것은 이성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사인(sign)으로 알라는 겁니다. 

[3]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사역 : 십자가 대속, 동정하는 보호자, 인생의 모델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셔서 하신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십자가 대속, 동정하는 보호자 역할, 그리고 인생의 모델 등입니다. 그 중에서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십자가 대속입니다.

① 십자가 대속 :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 그리고 각자 스스로 지은 자범죄를 가진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적으로 죽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육체는 살아 있어도 영혼이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영적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육신적으로 풍요로울 때조차 그 영혼이 곤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세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영원한 사망이 있습니다.

이 비참한 운명에서 구원받는 길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으로 모든 죄를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히9:22 “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는 생명의 근원이고, 피흘림은 사망입니다. 죄값으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각자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면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대신 피흘려 죽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주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므로 죄의 오염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인간적 생육법으로는 필연적으로 원죄의 오염이 있으니까, 동정녀에게 잉태되는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신 겁니다. 절묘한 것은 동정녀 중에서도 약혼한 상태에 있던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혼한 여자의 순결은 사회적으로 보증합니다. 아니면 돌에 맞아 죽으니까 말입니다. 

고후5:21 보면 대속의 원리를 잘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경험하지 않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피흘려 죽은 겁니다. 그리고 믿는 자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바꾸기’(exchange)를 한 겁니다. 이를 신학 용어로 이중전가(二重轉嫁 Dual Imputation)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의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천국 백성이 됩니다. 믿음 외에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이고, 그 구원의 진리인 복음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영생과 천국을 확실히 얻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동정하는 보호자 :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심으로 우리를 동정하는 완전한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해도 그냥 하나님으로만 계시면 인간 스스로 공감대를 갖지 못하고 멀게 느낄 겁니다.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동일한(죄가 없는 것만 빼고) 인간으로 오셔서 모든 인생고를 직접 경험해 보셨기에 친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3월 26일 국내선교위원회 주관으로 진중 세례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강원도 철원의 신병교육대를 방문했는데, 그 날 276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세례식 전에 예배를 드리려고 훈련병들이 모여 있는데, 아예 주무시려고 작정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죠.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어떻게 집중시켜 말씀을 듣게 할까 궁리하는데,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공감대를 느끼도록 감정이입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피교육생은 누구든지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 그렇죠?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니까 집중하세요.” 이렇게 서두를 꺼냈더니 약간 분위기가 잡히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자세를 취한 훈련병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 논산훈련소에서 5주 기초훈련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마치 내 아들 같습니다. 내 아들도 논산에서 오늘 훈련 마치고 곧 자대 배치를 받게 되거든요.” 그러자 모두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목사지만 금세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설교도, 세례식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 바로 공감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똑같이 인생고를 겪으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산골 출신이었습니다. 일찍이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 죽어서 소년 가장 노릇도 했습니다. 편모슬하도 경험했습니다. 공생애 중에는 머리 둘 곳조차 없어 동가식서가숙했습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핍박받았고, 마침내 가장 큰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고생을 한다 해도 예수님보다 더 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십니다. 우리 편에서도 예수님에게 친근감을 갖고 스스럼없이 다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4:15~16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sympathize with)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은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in time of need)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고 또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전능자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할 때나 어려울 때에 망설이지 말고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부디 이 말씀대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평안을 얻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인생의 모델 :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참 인생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모델 역할을 해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인지 잘 모릅니다. 이럴 때 본받을 수 있는 모델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고2 때 이야기입니다.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밥을 사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당시는 대학생도 교복을 입었잖아요. 대학생들이 드는 가방도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옷감이 후진 교복에 비닐로 만든 가방이었는데 얼마나 멋지게 보였는지! 너무 부럽고 마치 하늘과 같았습니다. 그 때 선배들이 해 준 이야기대로 따라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동기 부여가 된 겁니다. 

그래서 모델을 보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위인전을 읽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까? 하지만 위인전은 좋은 면만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 유익하지만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위인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모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요 참 인간의 전형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닮으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도 바울의 인생 모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본받을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 게 아닙니다. 자기가 열심히 예수님을 본받고 있으니까 성도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본받으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처럼 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도전하면서 일평생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을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대목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으로 늘 감사하시고, 예수님을 가까이 의지함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평생토록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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