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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믿고 구하는 것은 (마 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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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구하는 것은 (마 21:12-22)

(마21:12-2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기 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이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12-13) 

예수께서 고난주간 중 첫째 날 제일 먼저 성전을 정화(淨化)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내 성전”, “내 집”이라고 말씀하시므로 그가 얼마나 성전을 사랑하셨던가를, 성전이 자신의 몸과 같은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 보신 광경은 한 마디로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절기에 바쳐질 희생 제물로 끌려온 각종 동물들의 우는 소리, 행상인들이 흥정하며 외치는 소리 등으로 소란하여 성전을 아무도 예배드릴 수 없는 장소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장날 장터를 방불케 하여 정작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드리며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전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성전이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을 보시고 당연히 분노하셨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래서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을 둘러엎으시고 온 인류 구원을 위한 영원한 성전을 짓고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찍이 “(요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요2:21)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서야 비로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2:21-22)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야 예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므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시대는 끝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요4:20-24) 

구약시대에는 ‘날마다 동물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을 받게 하는 제사를 드렸지만 그 동물의 피가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희생되시므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속죄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히10:1-18)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시므로 성전을 새롭게 세우시고 성전 예배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속죄를 위해 동물의 희생을 드려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 믿는 믿음으로 예배드리므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산 예배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산이나 어떤 잘 지어진 예배당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0:18-22에서 이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0:18-22)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전 휘장을 열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면 됩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제사 의식(儀式)이나 눈에 보이는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공로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에 이끌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며 그 이유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계21:10-22)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어느 인종,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늘나라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따로 없고 성 전체가 성전이며 성안의 모든 거리가 다 예배하는 성전 뜰입니다. 그곳에는 유대인, 이방인이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다 거룩한 제사장들 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이 하나님 나라이며,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곳이 바로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3:16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으시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과 인격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의식(儀式)에 치우친 성전과 이익을 추구하는 성전, 형식적이고 외식적(外飾的)이며 교만하며 탐욕하는 마음의 성전이 있다면, 모두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헐어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사야가 예언하신 말씀을 들어 마음에도 없는 헛된 예배를 책망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막7:6-8)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잘 예언하였도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도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도다하였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고 있느니라.’(이사야29:13) 

말라기 선지자는 이러한 위선적이고 형식적이며 가증스러운 그들의 예배를 책망하며, 이러한 행위를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임을 밝혀 그들에 대해 심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말라기1:13-2:3입니다.

(말1:13-2:3)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당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 장로, 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모두 돈 독(毒)이 올라 백성들이 가져온 온전한 제물들은 자신들이 차지하고 병들고 온전치 못한 제물들로 바꿔치기 하도록 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탐욕적이며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예배, 마음에는 전혀 하나님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 오히려 예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에게 ‘희생 제물의 똥을 그들의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똥무더기 위에 버려지게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이제 인간이 준비한 형식적이고 마음에도 없는 그러한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거룩한 제물,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죄를 사하시며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이렇게 성전을 정화하시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시장하셔서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가까이 가셨지만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나무를 향해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니라.” 고 하시자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갑자기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내가 그 무화과나무에게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느니라. 그뿐 아니라 이 산을 향하여 땅에서 들려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니라.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니라.” 

길가에 무화과나무는 그 열매를 누구나 따먹는 일이 허락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잎과 꽃이 무성하게 되었을 때 그 열매도 함께 열리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그 열매를 일 년에 두 세 번(6월과 8월과 12월) 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비록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 열매가 맺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열매를 따고자 했지만,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었다.’ 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기억에 남을 만한 교훈을 가르치시고자 그 나무를 저주했는데, 그것은 제 철이든 아니든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열매가 있는 양 무성한 잎만 자랑했지 실상은 아무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백성이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성전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전혀 말씀과 거리가 먼 생활, 그리고 전혀 마음에도 없는 예배, 탐욕에 눈이 멀어 인색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신앙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고 외식(外飾)적인 생활 태도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7:19-23입니다.

(마7:19-23)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예수 믿는다면서 하나님 뜻,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래서 신앙생활에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제부터 맺지 못하리라.”고 하시자 ‘곧 말랐다’는 것은 이렇게 신앙생활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영원한 심판을 받으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시 105:33, 렘 8:13, 호 2:12, 눅 13:7) 

(렘8: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무화과와 마찬가지로 포도나무도 이스라엘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260년 전 B.C.740년경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포도원 비유를 들어 예언했습니다. 

(사5:1-7) 내가 사랑하는 자와 그의 포도원에 대하여 노래하리라. 내 사랑하는 자에게는 비옥한 야산에 포도원이 있어 땅을 파서 돌을 없애고 제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가 그 곳에 망대를 세우며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어 놓고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다렸으나 쓸모없는 포도가 맺혔구나. 그래서 내 사랑하는 자가 말한다. 예루살렘과 유다에 사는 사람들아, 너희는 나와 내 포도원 사이를 심판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서 이 이상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가 좋은 포도를 기대했는데 어째서 쓸모없는 포도가 맺혔는가? 이제 내가 내 포도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너희에게 말하겠다. 내가 울타리를 헐어 내 포도원을 짐승에게 짓밟히는 풀밭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가지를 치거나 북을 돋우지 않고 찔레나 가시가 그대로 자라게 하여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비를 내리지 말라고 명령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여호와의 포도원이며 유다 사람은 그가 심은 포도나무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공정하고 옳은 일 하기를 바랐으나 그들은 살인을 일삼았으며, 여호와께서 선한 일을 기대하셨으나 고통당하는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뿐이었다. 

포도원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최고의 비옥한 땅에 최고의 포도나무 품종을 심었지만 ‘좋은 포도’는커녕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들 포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을 헐어 그 포도원을 짐승에게 짓밟히는 풀밭이 되게 할 것이며 찔레나 가시가 그대로 자라게 하여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심판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결국 예수께서 장차 심판주로 오셔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는 말씀으로 세례 요한이 거듭 예언했습니다. 

(마3:10-12)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도 직접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열매맺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무화과나무가 곧 마르게 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나이까?’ 라고 묻자 예수께서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감람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앞서 말씀대로 성전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온전했다면, 그 성전에 나가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겠지만, 실제 그들은 믿음과 생활이 따로따로 였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믿음에 따른 생활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처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열왕기 상8:23-53입니다. 

(왕상8:23-5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 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만일 이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열왕기 상9:2-9입니다. 

(왕상9:2-9)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다윗에게 약속한 축복들을 다 이루어주시겠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면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려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믿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 그 성전에서 바라보이는 감람산이 둘로 갈라지라고 기도할지라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B.C. 931년경,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 이스라엘을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내려가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 두 곳에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아무나 제사장을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하여 그 산당에서 분향하도록 했습니다.(왕상12:25-33) 

하루는 여로보암이 벧엘 산당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 금송아지 숭배하는 여로보암을 경고하셨습니다. 장차 다윗의 자손 중 ‘요시아’라 이름하는 아들이 태어나 모든 우상의 단들을 철저히 파괴할 것이며 그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의 뼈까지도 찾아내 태워 가루로 만들어 없애버릴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왕상13: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이 예언대로 B.C.622년경(360년후), 요시아가 어린 나이에 왕에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요시아는 왕이 된 후 6년 동안 전국에 걸쳐 모든 우상과 우상의 단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우상숭배 행위를 근절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성별하여 수리하고 모든 예배와 절기를 예법에 따라 하나님 앞에 드리도록 했습니다. 

요시아는 성전을 수리하는 중 성경을 발견하고(왕하23:24-25) 이스라엘의 남과 북 공히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게 된 원인이 바로 성전을 더럽힌데 있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리라는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대하 6:20,왕상 5:5)  그래서 철두철미하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이러한 왕이 전무후무했습니다.

(왕하23:24-25)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렇게 해서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으로 모든 우상들이 타파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되어 사무엘 선지자 이후로 한 번도 드리지 못했던 절기 예배를 이스라엘 전 지파가 다 참여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하35:18-19)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요시야의 위에 있은지 십 팔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처럼 요시아 왕이 나라 전역에 걸쳐 성전 회복을 이루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여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역대기하30:27,31:21을 보겠습니다.

(대하30:27)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대하31:21)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약속하신대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베드로가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한 그 고백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16:18-19)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사도로 세움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어느 날 오후 3시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이렇게 하루 세 번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를 택해 성전에 올라간 것은 그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파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이들 사도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계속 머물러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이유는 예수께서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신 말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 전파의 사명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리라는 사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는 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40년 동안을(행4:22) 남의 손을 빌려 성전에서 구걸하던 비참한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가 “(행3:6-10)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자 이내 곧장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기도하는 집”, 거룩한 성전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힘든 앉은뱅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치유 불가능한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신 성도 여러분,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을 수 있는 거룩한 “기도하는 집”이 되어 모든 일에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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