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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눅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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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눅 19:28-4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 아기로 세상에 오신 성탄절과 함께 가장 기쁘고 감격스런 또 하나의 기독교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으니 성탄절은 기쁨의 날입니다. 부활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신 승리의 날이니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도 기쁨과 승리의 날입니다.

부활은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있는 영광스런 사건입니다. 죽음이 없이 다시 사는 것도 없습니다.부활의 기쁨과 승리의 감격은 이루말할 수 없지만 그 전에 우리를 위한 모진 고난과 고통과 부끄러움과 죽음이 있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드리는 오늘의 예배는 주님이 겪어야만 했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그 날을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주님은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 제자 둘을 건너편 마을로 심부름 보내셨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가 매여있는 것을 볼 것이니 그 나귀를 끌어 오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을로 들어간 제자들은 어린 나귀 한 마리를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이 나귀 주인에게 언제 예약을 해두셨는지는 모르지만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씀을 전하였더니 주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가져가라 허락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어린 나귀 등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웠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자기의 겉옷을 펼쳐 지나가시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행렬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을 알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동서남북 모든 지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로 술렁이고 있을 때였습니다.전에도 나사렛 예수가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목격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예루살렘으로 오던 길에 들은 예수님의 소문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문둥병자 열명을 고쳐주신 일, 여리고로 가시던 길에 눈 먼 사람 바디매오의 눈을 보게 하신 일 그리고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하며 친구가 되어주셨던 일 등 이 모든 일들이 순례객들에게 즐겁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주인공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자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들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것에서는 영광이로다’(눅19:38) 하였습니다.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길가에 펼치기도 하며 손에 들고 흔들며 외치기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 하였고, 성전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외쳤다. 왕의 행차를 알리는 요란한 나팔소리나 군중들의 흥을 돋구는 광대들의 거리 공연도 없었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군중들을 감시하는 완전무장한 군인들도 없었습니다. 덩치 큰 어른이 어린 나귀를 타고 많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주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군중들의 호산나 외침과 어린 아이들의 찬송소리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갈릴리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왕으로 행차하셨습니다.사전에 의논을 하거나 예행연습을 한 것도 아닌데 열 두 제자들과 또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으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라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여 종려주일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주일에는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가 읽은 열왕기상하는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이스라엘 주변 국가 이방의 왕들과 권력자들의 이름과 행적도 기록되었습니다. 열왕기하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멸망으로 결말을 짓습니다. 다윗이나 히스기야 요시아 왕과 같은 선한 왕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흠이 없이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열왕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와 타락의 길을 걸었고 백성들은 악한 왕들의 폭정 아래 신음하였습니다. 

역대기상하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왕족과 귀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간 후 70년이 지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기록한 역사책입니다. 이방 민족에게 멸망당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역대상 첫 장을 보면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족보가9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뿌리가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하여 족보를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후손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번성하였는가 족보를 통해 설명합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히브리인들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읽기에도 지루하고 성경에 이런 내용이 구태여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들기도 합니다. 족보를 기록한 목적은 포로귀환 이후 상실감과 패배감에 빠진 민족의 정신을 새롭게 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역대상하는 열왕기상하와 많은 부분이 중복되어 나옵니다.  공통점도 있만 특별히 다른 점은 열왕기서는 남북의 왕들 이야기가 함께 나오지만 역대기는 남쪽 유다의 왕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역대상은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였는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제사제도와 제사장 직무를 비롯하여 레위 지파의 직무를 정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민족의 기틀을 든든하게 마련하고, 국가 관리들의 직무를 정비함으로 종교와 정치, 국방 등 다방면에 큰 업적을 남긴 다윗을 칭송합니다.  

역대상 마지막에는 아들 솔로몬이 건축하게 될 성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다윗의 열정과 헌신의 모습을 기록하여 명실공히 다윗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이며 모든 왕들의 모범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왕으로 평가합니다.

역대하는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하여 후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솔로몬의 지혜와 성전건축의 영광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후대 왕들의 흥망성쇠의 과정과 유다 왕국의 멸망,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들의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 단락에서 70년 세월이 흐른 후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포로생활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내용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이방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찾아온 자유와 해방의 소식은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왕들을 통해 직접 다스리셨던 신정국가였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과거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도록 교훈하고자 함이 역대기의 기록 목적이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가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기다린 것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희미하게나 바라볼 수 있었던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사람의 욕망과 하나님께 대한 배신으로 금방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그 나라는 다윗도 솔로몬도 아니었고 장차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족보를 통해 오셨고 미완성으로 남겨진 그 나라를 완성하신 왕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실패하며 범죄하며 부족하였지만 왕의 왕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루어 드리셨습니다.인간 왕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추구하다 하나님이 맡기신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망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왕 중의 왕이었던 다윗의 시편 중에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한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145:1)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5:2)

그 왕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권세를 위임 맡아 세상에 내려온 왕의 왕이십니다.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그분이 이 땅에서는 자기의 것이 없어 태어나실 때에도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나사렛 동네 목수의 아들로 자라났고 아버지의 일을 도왔던 가난한 목수이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하셨던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마지막 행차 때에도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가져온 어린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실 때에도  제자들이 누군가에 빌린 다락방에서 모였습니다. 3년 반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에게 멋진 식당 하나 통채로 전세내어 위로회나 송별 파티 같은 것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죽임당한 그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기를 위하여 파놓은 돌무덤에 장사지내졌습니다.  그 모진 고문과 십자가 형으로 찢겨진 주님의 시신이 비로소 안식에 들어갔습니다.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하늘 영광을 사양하고 세상으로 오셨을 때 가장 낮은 사람들 중에 계셨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주님은 전쟁에서 돌아온 개선장군이나 왕의 행차가 아니라 죽으러 들어가시는 왕의 행차였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자기 영토, 자기 권력을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고 부리며 착취하고 희생시키지만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는 온 세상의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시러 오신 평화의 왕이셨습니다.사람들이 왕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왕이셨습니다. 왕은 왕이로되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권력과 특권과 영광을 내려놓으신 섬기는 왕이십니다. 

왕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왕이 되고픈 욕심으로 가득합니다.최고가 되기를 꿈꿉니다. 아무도 나를 따라 잡을 수 없는 저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어합니다. 돈이 많든지, 권력을 거머쥐든지, 특별한 기술과 재주가 있든지 아무튼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는 최고의 자리를 꿈꿉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다스리며 권력이 주는 특혜를 즐기고픈 야망을 실현하기 위함입니다.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암투를 벌이고 혁명을 일으키며 어제의 친구를 오늘은 적으로 돌려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다른 차원의 왕이시며 최고의 권위자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왕이신 주님을 본 받아 그분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최고가 되며 혹 왕의 자리에 오를지라도 자신을 위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공연하게 왕이라 불렀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기만 하셨던 주님이 이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으며 높은 자리에서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왕은 사람들의 인기에 좌우되며 추종자들의 아첨과 환호에 우쭐거리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으며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심으로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높이 들려야 할 자리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왕궁의 화려한 왕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고 피하고 싶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그 다스림에 복종한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겸손한 왕권을 외면하고 세상의 교만한 방식을 더 좋아합니다.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 받아 실천해야 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목적을 위하여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세상의 방식을 흉내내며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의지하며 권력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왕이십니다. 그 왕이 부활 승리를 앞두고 먼저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백성들의 피를 흘려 자기 왕국을 지키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흘려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으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고난주간을 맞이하며 겸손한 왕,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다가 부활의 아침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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