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안식일이 다 지나고 (마 28:1-10)

첨부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마 28:1-10)

사형장에서 사형수들에게 기도해주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사형장은 전기충격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사형장이었습니다. 

어느 사형수에게 기도해 주시려고 들어가신 목사님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허겁지겁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그 사형수가 말하기를, “목사님, 내가 너무 두려우니까 내가 충격을 받고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제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세요” 그러더랍니다..... 아무리 자비로운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사형수의 손을 잡고 함께 죽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내 손을 붙들어 주실 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나를 변호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분,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실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안 계십니다. 그분은 나의 온갖 실수와 허물과 죄악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의롭다 일컫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이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임.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고, 무속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다른 여러 종교들과 다른 점은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의 사건은 인류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 또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여인들의 반응을 통하여 함께 보기를 원함.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6절).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기록해 놓으시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3년 간 사역하시면서 몇 차례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막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대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6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미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55:11절)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12:1~2)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 2절에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럼 그 믿음은 대체 어떤 믿음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18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raise)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죽은 자 가운데서도 능히 내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실 것이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잡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부활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렇게 독자인 이삭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의 부활신앙 그대로 이삭의 부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절대 체념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말씀을 체험해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체험하면 창조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커널 샌더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배우지도 못하고 중학교 1학년 중퇴였습니다. 자라서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이나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살아났습니다. 한번은 아들과 함께 절벽사이의 다리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다리가 끊어져서 50피트(15~6m) 아래로 떨어졌는데 살아났고, 또 한 번은 어느 음식점에서 일할 때 4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고 졸음운전을 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차가 몇 바퀴를 돌아서 제 위치로 떨어져서 멀쩡했습니다. 죽음에서 두 번이나 살아난 샌더스는 63세가 되었을 때 뭔가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진지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리이라.”,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나이도 많은데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기도 중에 닭들이 날아가는 환상이 보입니다. 그래서 닭튀김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어느 날부터 날개 돋친 듯이 팔립니다. 마침내 그의 체인점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고 많은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샌더스의 체인점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음.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을 믿고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되어 말씀의 축복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7~8절). 

영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1616)는 “불행을 고치는 약이 있다면, 그것은 소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불행하고 외롭고 슬프게 사는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은 바로 소망입니다. 왜 삶에 보람이 없습니까? 왜 기쁨이 없습니까?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이 땅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처음 목격하고 만난 여인은 절망과 낙심에서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소망이 생겼습니다. 

(8절)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리려고 가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0절)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런데 왜 하필 갈릴리입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절망과 낙심과 허탈에 빠져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떠난 곳이 갈릴리바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께서 그 절망의 현장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 그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우리의 삶에 소망을 갖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사실이고 여러분과 저의 부활이 분명히 보장된 사실이라면 우리는 얼마만큼 기뻐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단지 죽음이후에 부활이 약속되었다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오늘 하루하루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부딪히는 삶의 시련이 아무리 힘겨운 것이라 해도 왜 절망합니까? 우리는 참으로 이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놀라운 소망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 안에 역사할 수 있는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삶의 시련을 넉넉히 넘어설 수 있는 흥분과 기쁨을 가지고 삶의 장 앞에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믿는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엘 소넨버그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조엘 소넨버그는 생후 20개월 되던 해 1979년 고속도로에서 연쇄 추돌사고로 인해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자동차 안, 불덩어리 속에서 건져졌는데 완전히 숯 덩어리가 돼서 나왔어요. 생존확률 10%, 의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50여 차례 전신을 마취하고 수술하고, 수술하고 수술해서 그가 살아났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 축구도 하고 농구 선수로도 열심히 뛰고 또 청소년 시절에는 자전거도 타고 클레이 사격선수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 마음가운데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환경,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살아가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죠? 뇌성마비에 걸렸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밤낮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며 불평했을 텐데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비록 육체는 온전하지 않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끼칩니까? 부활은 우리의 삶에 소망을 줍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보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증거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7, 10절).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이 기뻐했습니다. 낙심과 절망가운데서 큰 기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인들은 또한 무엇을 하였습니까?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제자들에게 증거 하기 위해 갈릴리로 갔습니다. 

1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 다음 11절에 “여자들이 갈 때”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고 말씀하셨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 가라고 말씀하시기전에 벌써 열정을 가지고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8절) “...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주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했습니다. 어떻게 침묵할 수가 있겠습니까? 

왕하 7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어 성 안에서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나병환자들이 여기서 죽느니 차라리 적진에 가서 죽자고 나갔다가 적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간 것을 보고 말합니다. 

(왕하7:9)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침묵하고) 기다리면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이 죽어간다면) 우리가 벌을 받을 것이다, 가자!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디티나이프 라는 유명한 세계적인 선교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전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전도란 뭐냐? 전도란 것은 배고팠던 거지가 양식을 발견한 후에 그리고 그 양식을 취하면서 다른 배고픈 거지들에게 가서 여기에 빵이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전도에 대한 증언입니까? 목이 말라 죽어가던 사람들이 생수를 발견하고 목을 축인 후에 목말라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수가 있다’, ‘여기에 샘물이 있다’, 그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죽어가던 사람이 의사를 만나서 자기의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치유가 있다고, 여기에 당신의 살길이 있다고, 이것이 전도라는 것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체험했습니까? 그 부활을 믿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증거 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히틀러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에 유명한 본 헤퍼 목사와 나치에 저항했던 분 가운데 마르틴 니멜러 라는 독일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마르틴 니멜러는 유명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온 후에 그는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히틀러와 그의 군대들만은 용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침묵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히틀러가 주님 앞에 마지막 심판을 받고 있는 광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물어 보더래요 법정에서, 히틀러에게,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히틀러가 대답하기를, “저에게 아무도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히틀러보고 하는 말이, “야! 네가 마르틴 니멜러 목사 잡아다 놓고 너하고 같이 이야기할 때 마르틴 니멜러가 너에게 나를 전하지 않더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니멜러는 꿈속에서 갑자기 소스라치게 깨어납니다. “아!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었구나. 저가 나를 핍박하지만, 저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저도 용서받고 구원 받아야 할 한 영혼으로 바라보지 못했구나.”, 그날부터 그는 전도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감시하고 있던 나치의 군인들에게 그리고 간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마르틴 니멜러를 통해서 적지 않는 숫자의 사람들이 나치의 간부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놀라운 기적 같은 사실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그것을 여러분과 제가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기뻐하며 소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구원이라고 소망이라고 우리는 전도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어떤 신앙의 길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바라보며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