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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산 소망 (벧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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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산 소망 (벧전 1: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 절기의 양대 축을 이룹니다. 구속사 성취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나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타 종교와는 다른 유일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인간의 모든 죄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었다는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야말로 영원한 산 소망을 우리에게 주는 최고 축복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허파에 산소가 필요하듯 삶에는 소망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불행을 고치는 약이 있다면 그것은 소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소망은 우리의 인생길을 참된 행복과 기쁨으로 채우는 통로가 됩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산 소망의 근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3~4) 

사도 베드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범죄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범죄한 인간 스스로는 이런 죄와 저주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본문에 기록된 내용처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산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에는 ‘마땅히 저주해야 할 사람을 불쌍히 여겨 저주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음을 받게 되었고 그 증거가 바로 부활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새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 결과로 우리는 산 소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승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며, 이 부활 생명을 사실적으로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부활 생명, 산 소망을 누리게 되면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참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6)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색깔의 시험이 오게 되는데 그때 근심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근심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서론적인 것으로 인해 매이지를 않게 됩니다. 산 소망의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목공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청년이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후 그에게는 인생의 소망이 생겼고 열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에 전심을 다했고 10년 후 마침내 가구제조업체의 사장이 되어 돈과 명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뒤편 언덕에 올라 산책을 하다가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마을 정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걸터앉은 널찍한 바위와 같은 존재가 자신을 떠받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행복한 근거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이심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그 자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시가 바로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는 가사의 488장 찬송 <이 몸의 소망 무언가>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굳건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심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소망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급전직하(急轉直下)라는 말처럼 갑작스럽게 떨어져 더 큰 실망과 좌절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산 소망 되신 부활의 주님과 함께하는 축복을 날마다 체험하며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산 소망의 전파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7) 베드로는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자의 믿음이 얼마나 확실한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금을 고열의 도가니 속에 넣으면 불순물이 다 타 없어지거나 제거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순금이 되는데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긴 믿음은 이러한 순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련 속에서도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앙과 같은 불순물이 다 빠지면서 더 큰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정도로 그 믿음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부활 신앙을 가진 자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부활의 산 소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장차 영광스럽게 완성될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부활의 산 소망을 우리만 누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소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운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부활의 산 소망을 누리고 살면 자연스럽게 삶의 현장에서 산 소망의 전파자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누리는 삶은 어렵거나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로 삶이 스케줄화 될 때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도자의 삶을 살면 됩니다. 이는 고차원적인 수준이 아니라 기본일 뿐입니다. 막 3:13~15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신 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는 말씀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역하시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습관을 따라 기도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3오늘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개인화의 응답을 누리면서 오늘의 전도를 통해 현장을 회복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전도자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성도 여러분이 부활의 산 소망을 사실적으로 누리며 증거하는 산 소망의 전파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극작기 유진 오닐이 쓴 <나사로는 웃었다>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그는 죽었다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았을까를 상상하며 이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을 보면, 나사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돈이나 명예 등 세상에서의 권세를 부러워하거나 바라보지 않았고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 웃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그를 화형에 처하려고 하는 순간까지도 나사로는 웃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난 체험을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의 서론적인 것은 웃어넘길 수 있는 영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론을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눈을 돌려도 소망 없이 죽어가는 영혼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을 살릴 사람은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여러분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가슴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능력만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흑암 권세를 깨트리고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부활의 산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여러분의 가문이 부활 소식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가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잠시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하시옵소서. 서론에 매여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옵시며, 영원한 본론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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