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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과 족보에 기록 안 된 왕들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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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다윗이란 사랑함이란 뜻입니다.


다윗의 고향은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 여덟째로 제일 막내입니다.  형들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우람하고 남자답게 생겼기 때문에 모두 왕들감입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일곱 형들을 사랑하고 자랑하지만 다윗은 쫌뺑이 같이 생겼는지, 신앙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 관심이 없고 형들한테도 미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들판에서 늦도록 양을 치고 힘든 일만 합니다. 


미끈하게 생기지 못한 죄로 무시 받고 살지만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사나운 들짐승과 싸우면서 양떼들을 보호하는데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윗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적장 골리앗이 다가오면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욕을 하니 온 산천이 다 울립니다.  지금도 울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평소에는 세상에서 ‘내로라’ 하며 명예 영광을 자랑하던 사울, 그리고 장군들, 그리고 다윗의 형들.  나가서 적장이랑 싸울 줄 알았는데 전부 다 바위 뒤에 숨고, 나무 위에 기어올라가고, 여우굴 속에 숨고, 산돼지 굴속에 숨고, 다람쥐처럼 어디로 숨었는지 흔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숨은게 보입니다.  무슨 배경 뒤에 숨고, 어느 단체 뒤에 숨고, 어느 조직 뒤에 숨고, 자연목숨 끊어질까봐 어디 어디 꼭꼭 숨은 것을 하나님은 못 속이지!


저 짐승 같은 사상을 가진 이방인이 자기의 육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욕하고 무시하고 오는 이것을 어린 다윗이었지만 가만 둘 수가 없었고, 더욱 기가 막히고 한심한 것은 은폐물 뒤에 숨은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위신과 긍지와 체면이 있는 것인데 히브리 사상, 시온주의라는 신앙은 다 어디로 갔는지!  다윗은 그것을 가만히 볼 수가 없습니다. 


사울 왕이 걸쳤던 갑옷 투구 칼 방패를 주지만 어린 다윗의 적성에는 맞지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맞을는지 모르지만 다윗에게는 그런 것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모두 다 팽개치고 냇가에 가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돌을 주워 평소에 양을 지키면서 무서운 맹수들을 잡을 때의 그 믿음실력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실 때에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어린 저것이 나를 믿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야수 같은 저 자에게 덤비다니!’  하나님이 감동이 되십니다.  어린 다윗이 영웅심으로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위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고 짓밟는 저 소리.  짓밟는 육의 사상, 세상사상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짓밟고 있는데 모두 아픈 감각이 없습니다.  영적 감각에 화인을 맞았습니다.  오히려 골리앗 사상과 합세하여 다윗의 진리사상 노선을 짓밟고, 모두 강대상 밑에 엎드려 자기 명예 영광 발판을 삼고 있고, 노후대책에 영웅성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기 속을 왜 모르랴!


오늘날 누가 다윗의 진리신앙의 노선에서 이 무형적 이방 골리앗 사상과 싸우겠느냐?  보여야 싸우던지, 말던지 하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 누가 이 시대에 이 싸움에서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느냐?  영의 귀가 열린 자는 알아들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범죄 후에 통일 이스라엘은 남조와 북조로 나누어집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10지파로서 솔로몬의 직속부하 여로보암이 다스렸고, 남조유다는 두 지파로서 르호보암이 다스렸습니다.  남조유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법궤가 있습니다.  북조에는 없으니까 절기 때나 안식일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백성들이 내려옵니다.  이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여로보암 왕은 북조의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교인 빼앗길까봐 금송아지를 세웁니다.  그리고 시선을, 마음을 전부 그 쪽으로 쏠리게 만들고, 기도를 그 목표에 맞추고, 설교하는 사람의 마음도 강조도 그 목표에 맞추고 그 일이 성공리에 마치도록 총 집중을 시키는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생명이 있고 사람이 점점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격으로 만들어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없는 곳은 인본주의요 세상주의입니다. 


북조는 금송아지를 만들더니 아합 때 가서는 이방나라 바알의 우상을 섬기는 전문가인 이세벨을 제 눈에 보기 좋다고 아내로 데려오고, 남조는 북조를 형제라 하며 왔다 갔다 잘도 돌아다니더니 이세벨의 딸(아달랴)을 남조유다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서로 통혼을 하더니 점차적으로 우상이 감염되어 들어오고 신당을 짓고 하더니 북조는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조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성령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정신 사상적 통혼을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八 1장 8절에 요람 왕과 웃시야 왕 사이에 빠진 왕들이 4명이 있다.


1. 아하시야


여호와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유다지파 여호람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에서 1년을 치리했습니다.(왕하 8:25-9:  29, 대하 22:7-9)  여호세바라는 신앙 좋은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아하시야 왕이 왕으로서 한 일이라고는 우상숭배자 북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단짝이 되어 가지고 이방 아람 왕 하사엘에게 길르앗 라못은 우리 땅이니 내어놓으라고 전쟁을 벌이다가 북조 요람 왕이 상처를 입고 이스르엘 별장으로 가서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남조 아하시야 왕이 그 별장으로 병 문안을 하러 갔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자기 몸 밖의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자들과 단짝이 되면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마침 이 때에 북조 요람 왕의 직속부하 예후장군과 그 외의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엘리사의 생도가 예후를 불러내 가지고 골방으로 데려가서 ‘너는 요람 왕을 치라’고 하며 왕이 되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을 듣고 보니 예후장군이 아합의 대열에서 요람 왕 밑에서 희생 봉사하며 목숨 바쳐가며 충성스럽게 졸병노릇한 것이 어떻게나 분하고 원통한지 그 길로 말을 잡아타고 쏜살같이 요람 왕이 치료받고 있는 이스르엘 별장으로 간 것입니다. 


이스르엘 별장 망대에서 파수꾼이 이것을 발견하고 요람 왕에게 보고를 하니까 요람 왕이 신하들을 한 번 또 한 번, 두 번이나 보냈는데도 돌아오지 않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요람 왕과 아하시야 왕이 직접 나갔습니다.  요람 왕이 ‘평안한 소식이냐’ 하고 물으니까 성이 나서 하는 말이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리요’ 하니까 요람 왕이 ‘반역이다’ 하면서 도망을 하는 것을 예후가 활을 쏘니 염통을 맞아 뚫리고 말았고, 이것을 본 아하시야 왕은 기겁을 하고 ‘오금아 날 살려라’ 도망을 했는데 ‘저 놈도 같은 놈이다’ 하고 예후장군이 죽여 버렸습니다. 


여호람의 시체는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지고 이스르엘에 이르니까 이세벨은 이미 소문을 듣고 머리를 후까시 하고, 눈을 이중으로 칠을 하고, 입술을 그리고, 모기장 옷을 입고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윙크를 보내고 있는데 예후장군이 그 모습에 놀아날 리가 있나?  창문 옆에 섰는 내시를 보고 ‘이세벨을 던져 버려라’ 하니 창 밖으로 떨어졌는데 그 시체는 들개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예후가 사람을 보내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였고,(왕하 10:1-17) 문안 간 아하시야 왕의 형제들도 죽였고, 또 바알의 우상을 섬기는 대회를 열어 가지고 바알의 제사장을 다 죽이고 신당을 쓰레기장 똥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예후장군이 몰랐습니다.  그저 무조건 목숨 바쳐 충성봉사하면 다 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골방에서 선지자의 진리영감의 말을 듣고 영 운동, 육 운동이 분별이 되고 보니 사망운동으로 속고 살아온 것을 알게 돼 그것을 생각하니 원통하고 분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모르고 죽었으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① ‘몸 밖의 것을 먹으러 가자’ 하는 신앙사상운동.

② 정신이 같고 소원 목적이 같고 사상이 같고 질이 같으면 그리고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찾는 자는 자기를 고치기 위해서 갑니다.  그리고 진리노선을 같이 갑니다.  진리가 아닌 자는 세상을 가지러 갑니다.  세상을 찾는 자와 같이 갑니다.  진리인 척 하나 세상이 들어 있는 자는 세상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진리를 이용합니다.  진리를 이용하여 자기가 왕 되고 대우받는 일에 씁니다.  이것은 진리를 이용한 도둑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뺏는 도둑입니다.  착복자입니다.  우리는 깨닫는 쪽쪽 자기 속이 발견되고 자기 속이 고쳐져야 성령님이 잡고 쓰시지 마음이 자꾸 일 잘 하자 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2. 아달랴


여호와는 크심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6년을 치리했습니다.(왕하 11장:1-16)  아하시야 왕의 모친이요, 아달랴는 북조 아합 왕의 딸이요, 이세벨의 딸입니다.  남조 여호람 왕에게 아달랴가 시집온 것입니다.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 왕이 예후장군에게 개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았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옳은데 오히려 손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된 것입니다.(왕하 11: 1, 2, 대하 22:10, 11)


손자들을 죽이고 돌아갈 때에 아하시야 왕의 누이 여호세바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 오빠의 아들 중 요아스를 몰래 안아 가지고 하나님의 전 안에서 6년 동안 숨겨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시켜 길렀습니다.  이 6년 동안에 아달랴는 왕 노릇을 했으나 제사장들의 궐기로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대하 21장 18절에서는 여호람 왕의 아내인 아달랴가 남편의 속을 얼마나 썩였는지, 자기의 어미 이세벨처럼 얼마나 남편을 죄를 짓게 했는지 여호람이 속이 썩어서 창자가 흘러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3. 요아스(왕하 12:1-20, 대하 24:20)


아달랴가 손자들을 죽이고 왕의 씨를 진멸할 때에 어린 요아스는 고모되는 여호세바의 덕택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6년 동안을 하나님의 전에서 길림을 받고 일곱 살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40년간을 치리했습니다. 


악한 할머니가 하나님의 전을 부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을 중수할 마음이 있어서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모세가 광야에서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는 법을 채택하여 돈을 내게 하고, 풍부하게 들어와서 전을 수리하고 전의 기구를 다 장만하고 항상 번제를 드렸습니다. 


늘 이런 신앙의 개혁으로 나가면 좋겠는데 대제사장은 나이가 많아 죽고,(여호야다, 130세) 방백들의 계략에 빠져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니 하나님의 진노가 나라의 전역에 쏟아진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도 왕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죽은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왕을 책망하니까 왕의 명으로 스가랴를 하나님의 전 뜰에서 돌로 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아람군대가 올라와서 방백들을 죽이니 요아스 왕은 성전의 보배로운 모든 기물들을 아람 왕 하사엘에게 다 주고(왕하 12:17, 18) 싸움에서 부상을 당하고 결국 신복들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4. 아마샤(왕하 14:1-6, 대하 25:14, 15)


여호와 기력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이요, 25세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자기 부친의 암살자들을 다 잡아 죽이고 20세 이상 30만 군대를 만들고 또 북조 이스라엘 군대 10만을 100달란트의 은으로 세를 내고 싸움터로 데리고 같이 나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북조 이스라엘의 군대와는 같이 하지 않으니 도로 돌려보내라’ 하니까 ‘그러면 100달란트 되는 은을 미리 주었는데 어떻게 하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다, 염려 말고 싸워라, 승리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냈습니다.  세일자손 일만을 죽이고, 또 일만을 사로잡아 벼랑 꼭대기에서 밀어 뜨려서 몸이 부서져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샤 왕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자손의 우상을 가져다가 자기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고 분향을 하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의 신이 그들을 구했느냐’고 말하니 ‘너는 나 하는 일에 간섭을 하지 말라, 너는 상관없다’ 하고 백성들이 산당을 짓고 그 안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남조 유다 왕 아마샤가 북조 이스라엘 왕에게 ‘우리 같이 만나서 의논 좀 하자’ 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벧세메스에서 싸움이 붙어 남조 아마샤 왕은 패하고 승리자는 성전 기명을 다 가지고 갔고 백성들도 사로 잡혀가고 성벽은 다 헐리고 아마샤 왕 자기도 신하들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온전을 닮자, 주님처럼 자라가자, 진리로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자’고 백 번을 말해도 ‘아멘’ 입니다.  이 소리가 듣기 싫다면 벌써 자기 속에 우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속에 우상이 들어 있는 인도자는

① 자기 속에 있는 우상이 겉으로 나오는데 가견적인 목표를 세워 그것에 성경구절을 인용합니다.

② ‘뭐 특별히 나타나는 해석이 없나’ 하고 자기 목표에, 자기 우상에 성경해석을 써먹습니다. 


九 히스기야(1:9-12, 왕하 18:-20:)


남조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해서 조상들에게 임했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성전과 성전 안의 기구들을 모두 정결케 하고, 반차를 따라서 그 직임을 맡게 하고, 십일조와 그 밖의 예물을 백성들로 내게 하고, 번제와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여러 성읍의 이방의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부숴 버렸습니다.  종교개혁을 하고 예배의 개혁을 단행하고 의지하고 기대던 앗수르 나라를 이제는 기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블레셋을 공격하여 여러 성읍을 공격하고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이것을 알고 앗수르 나라가 북조 이스라엘부터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조유다로 공격해 들어오니 히스기야 왕이 겁이 나서 왕궁의 곳간의 은금을 다 주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전의 기둥에 입힌 금까지 다 벗겨 주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앗수르 랍사게가 올라와서 자기의 소변을 먹으라는 둥, 자기의 똥을 먹으라는 둥 심한 조롱을 다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용기를 얻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앗수르군대 18만 5천명이 죽어 송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산헤립 왕은 아들들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선지자 이사야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는 너의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니 그만 마음이 언짢아지면서 벽을 향해 토라져 가지고 자기 말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것을 다 기억해 주십시오’ 하면서 열심히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 후 선지자 이사야가 나타나서 ‘네가 3일만에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겠고 너의 목숨을 15년간 연장을 시켜 주겠다’ 하니 ‘무슨 징조로 보여주겠습니까’ 하니 ‘해 그림자가 10도 앞으로 가게 하랴, 뒤로 가게 하랴’ 하니 ‘앞으로 가기는 쉬워도 뒤로 가기는 힘드니 뒤로 가게 해 주십시오’ 해서 뒤로 10도를 가게 해 준 것입니다.  10도를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인간 제 보기에 그렇지 하나님의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죽을 병이 들었는데 응답을 받고 갑자기 나았습니다.  이 소문과 함께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히스기야가 죽였다네’ 하는 그 소문도 함께 나갔습니다.  이렇게 되니 바벨론의 부로닥 발단이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만 어깨가 우쭐해 가지고 좋아서 하나님의 하신 일과,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치 않고 마치 자기 힘으로 한 것처럼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능력 있는 부자다’ 하고 바벨론 사자들에게 병기창고와 향품과 금은 보물을 구석구석마다 안 보여준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뭘 보여주었느냐’ 하니 ‘예, 곳간의 금은 보물 병기창고 등 싹 다 보여주었습니다’ 하니 ‘그래?  그것 전부 다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모두 포로로 잡혀가리라’ 하니 ‘아이구 맙소사, 내 당대 때에는 안 잡혀가면 좋겠습니다’(왕하 20:19-) 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아들 므낫세가 12세로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55년간 왕을 해 먹었는데 이 아들이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짓고 바알의 단을 다시 쌓고 아세라 목상을 다시 세우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전 마당에다가 아로새긴 목상을 세우고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점치고 사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고 못되고 악한 짓은 골라 가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이 못되고 악한 아들이 언제 생겼느냐?  기도 후 15년 목숨 연장 받은 그 때에 생긴 것입니다.

 

기도 응답 받아 좋은 것이 뭐냐?

① 얍복강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

② 발람 선지자가 기도 응답받아 좋은 것이 뭐냐?


정직하지 못하고 간사스럽고 이기주의적인 기도, 교만한 기도.  이것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결과를 사건으로 들어내서 하나님 앞에 악한 기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역사로써 밝혀줍니다.  그런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전에다가 세상이라는 우상을 세우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나무숲 속에다 산당을 지어 놓고 제각금 응답을 받는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미움과 진노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롬 1:18, 22, 23, 2:5-8, 엡 5:6-12)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에게 질질 끌려가는 포로가 됩니다.  죄를 짓게 되면 죄에게 포로가 됩니다.  사람은 진리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되겠는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이것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영적 포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 신앙상태의 포로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유가 얼마나 좋은지! 


포로에서 자유롭게 풀어나려면


1. 방향회개

자기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을 하나님의 계시는 천국에다 두는 것.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에 맞추어야, 그리고 그 의사성이 자기 것으로 되어야 바른 회개입니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바른 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바른 회개는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인데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한 채 예수님을 아무리 힘쓰고 애쓰며 믿어 보았댔자 일반 도덕성적인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하나의 종교인밖에 안 됩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입히신 것은 하나의 종교인으로 만들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2. 종별적 회개


방향회개를 바로 해 놓고 하나님의 의사성을 자기의 의사성으로 단일화시켜 나가면 종별적 회개 즉, 활동 하나 고쳐나가는 것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의 신령한 도덕성의 성질을 가진 도덕성입니다.


방향회개가 바로 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 사회적 도덕적인 개념에서 나온 그 마음, 그 생각, 그 기준으로 행동 몇 가지 고쳤다고 해도 그것은 방향회개가 아닙니다.  종별적 회개만 알고 방향회개를 모르면 회개가 안 된 것이고, 결국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으로 사람이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노아홍수에 죽은 사람들의 신앙사상, 소돔 고모라의 신앙사상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공공연히 교회 안에서 방향회개가 되지 않은 설교를 많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내적 신앙부흥이 아닌 하나의 종교적인 부흥이 크게 일어나는 이것은 방향회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식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분초를 다투어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본질적인 신앙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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