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증거와 의미 그리고 우리의 사명 (마 28:1-20)

첨부 1


부활의 증거와 의미 그리고 우리의 사명 (마 28:1-20)


어느 교회 목사님이 주보에 부활 찬송을 많이 넣어서 인쇄소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기독교인인 인쇄소 직원이 주보 원고를 받아 보고는 "이번 주일이 부활 주일도 아닌데, 부활절 찬송을 여기 넣습니까?" 하면서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대답하시기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주일 예배가 부활절 예배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활절 아침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진 분기점입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인들은 안식일, 즉 토요일에 예배드렸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을 계기로 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에게는 사실 매주일이 부활주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 값을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소원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아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로마 군병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혹시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다가 감추어 놓고 예수가 부활했다 라고 소문을 퍼트리면 어쩌나 하여 말입니다.

그렇지만 무덤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사람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는지 몰라도 주님의 부활은 막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누가복음 18:33절에서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 나리라”하신 것처럼 다시 사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죄짐을 홀로 지시고 그 사망의 권세에 의해 잠시 무덤에 계셨으나 하나님의 능하신 팔이 그를 무덤에서 다시 일으키신 것입니다. (행2:24)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실 때에 사방에 큰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땅들이 흔들렸고 하늘에서 번개같은 형상을 한 천사들이 내려와 막아 놓은 무덤 돌문을 밀어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창졸 간에 파수꾼들이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놀라고 무섭고 두려워서 떨며 죽은 사람들처럼 되었다고 마태복음 28: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조작되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해 세워 둔 파수꾼들이 반대로 부활을 목격하는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써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자 하여도 하나님의 지혜를 능가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부인할 때 기독교 신앙은 허구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누구에 의해 꾸며진 이야기도, 만들어진 이야기도 아닌 그리고 허무맹랑한 전설도 아닌 분명히 그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반론을 말합니다.
특히 예수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탄의 추종자들은 옛날이나 지금도 마귀의 거짓된 지혜를 이용하여 예수의 부활 사실을 은폐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온 천하에 퍼지자 예수를 죽인 일에 앞장섰던 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우리 옛 속담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부활의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한 파수꾼들을 돈으로 매수하였습니다. (마28:11-15) 그리고 각종 거짓말로 자신들의 행한, 일에 대한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론들이 생겨났습니다. 

1. 부활에 대한 거짓된 이론들

① 도적설을 퍼트렸습니다. 
도적설은 파수군들이 잘 때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처가 어딘가에 숨기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이 파수군을 돈으로 매수하여 퍼뜨린 거짓말입니다. 

매수 당한 파수꾼들은 민간에 다니면서 예수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밤에 잘 때 제자들이 훔쳐 갔다 라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마28:12-13) 그러나 도적설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십자가에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았을 때도 달아났던 그들이 시체하나 구하려고 로마 정부의 군사들이 지키고 빌라도 총독이 인봉한 무덤에 접근 할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로마 제국의 힘에 도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유대인들이 파순군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정치적으로 보호하여 주면서 거짓말을 하도록 해서 만들어진 루머입니다. 
자기들이 잘 때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처 갔다고 말한 파수군들의 말도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죄수를 지키던 간수가 죄수를 놓쳤을 경우 죄수 대신 그 간수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16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다 잠들어 있을 수 있었을까요?

② 기절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해 있다가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엄격한 군대의 법칙에 따라 로마 군인이 확인하였고 백부장이 빌라도 총독에게 보고하였으며 총독이 인정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운명하시고 나서 군병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더니 물과 피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몸에서 물이 나오는 경우는 큰 고통으로 사망한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는 경우라고 합니다. 

③ 타묘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본게 아니라 다른 빈 무덤을 잘 못보고 시체가 없으니까 부활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제자들에게나 그의 적들에게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평소에 죽었다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말을 잊었어도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잊지 않고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처 갈 것을 염려하여 파수군까지 세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빈 무덤을 가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렇게 예수의 부활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예수의 진짜 시체를 공개하여 제자들의 부활전파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산헤드린 공회와 제사장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하자 그들을 잡아다가 위협하고 협박은 했어도 예수의 진짜 시체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④ 환상설과 유령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것은 실제로 부활한 예수가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그의 환상을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가 유령처럼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느 누구에 의해 꾸며진 이야기도, 만들어진 이야기도 아닌 그리고 허무맹랑한 전설도 아닌 분명히 그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2. 부활의 증거

① 부활 후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세 번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가셨습니다. 유월절에는 약 26 만여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에 운집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군중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공언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당시 사람들의 화제와 관심거리였을 것입니다. 정말 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날 것인가? 

만일 예수님이 살아나지 않았다면 예루살렘에서 예수 자신이 살아날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비웃고 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후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살아났다고 증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베드로가 군증에게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다. 그 날 3000명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며칠 후 또 다시 5000명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제자가 되었다. 만일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닌데 베드로가 거짓을 말했다면 당시 3000명, 5000명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최면에 걸렸거나 베드로는 아주 기발한 거짓말쟁이 아니면 사기꾼이었을 것이다.

마20:17-19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한 부활에 대한 분명한 선언은 얼마 후 드러날 일이기 때문에 만일 부활의 예언이 빗나갔다면 예수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② 사도들의 생애가 증거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 부활 전에는 용기 없고 믿음 약한 겁쟁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부터는 그들의 태도는 돌변하였습니다. 그렇게 두렵던 죽음이 두렵지 안았습니다. 오히려 기꺼이 부활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만약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고 제자들이 조작해 낸 것이라면 자기들이 조작한 거짓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습니까?

③ 주일 제도가 증거 합니다.
오늘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안식일을 폐지하고 주님이 부활한 날인 일요일을 주의 날 즉 주일로 부르면서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④ 교회 자체가 주님 부활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초롤 세워졌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12제자들 선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부활의 증거입니다. 

3. 부활의 의미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구원의 완성입니다. 롬4: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으로 운명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내가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의 완성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수 천년 동안 죄에 억눌려 살아오며 온갖 슬픔과 좌절을 맛보며, 한숨 짖고 살아온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위대한 축복의 선언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엔진에 오일을 공급해 주는 호스가 낡아서 그만 윤활유가 다 새 버린 것입니다. 엔진이 형편없이 망가져서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1급 자동차 정비공장으로 끌어다가 수리를 의뢰했습니다. 이틀 후 연락이 왔습니다. 다 고쳤다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의 도움으로 수리비를 지급하고 차를 인수하러 갔을때 정비 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는 더 이상 고장난 차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사의 다 고쳤다는 말을 믿고 자동차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꼼짝도 않던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 고쳤다는 기사의 말이 증명된 것입니다. 
정비기사는 고장난 구석구석을 손으로 만져서 수리한 후 다 고쳤다고 선언했습니다. 다 고친 후와 그 전과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 그 고통의 현장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같은 인간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입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이며 입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살아 나셨고 그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자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4. 부활을 믿는 자의 사명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현장에서 당황하고 놀라는 여인들에게 그 천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엇던 곳이니라” 
“놀라지 말라 그는 다시 사셨느니라“
“그가 살아나셨다” 라는 말은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신 말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대 선언인 것입니다. 이 한 마디로 교회가 생겼고,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무수한 순교자, 수 많은 사회 사업가, 양심적인 정치가 헌신적인 교육가 등이 배출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덤 속에 묻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마 28:7절에서도 무덤에 찾아갔던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라고 했고 마 28:10절에서는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왜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갈릴리는 인간 삶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픔도 있었습니다. 질병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과 인간의 모든 아픔과 갈등도 있는 곳입니다.
모든 사악함과 더러움도 함께 존재하는 곳이 갈릴리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는 예루살렘과는 달랐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메시아를 못 박지는 아니했습니다. 즉 예수를 거부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믿는 다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뉴질랜드의 한 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소녀 시절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극도의 좌절에 빠져 있을 때에 이번에는 균이 두 손으로 감염이 되어 부득이 두 팔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뚱이만 남은 고깃덩어리” 이런 경우 살 소망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어느 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예수 부활의 말씀을 듣는 순간 비참한 역경과 흑암 속에 있던 그에게 한줄기 빛으로 그에게 다가오신 분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발견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팔을 잘라 내고 남은 자리에 연필을 붙들어 매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소개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간증과 고백이 담긴 편지를 썼습니다. 일 년이면 수백 통의 편지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부인의 이야기를 역경을 이기는 법 삶에 승리하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손가락 하나만 잘려도 곧바로 실망과 좌절에 빠져 버리고 삶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친구에게 섭섭한 소리 한번만 들어도 배신감에 견디지 못해 합니다. 작은 질병도 이기지 못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도 못 참고 인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이 당한 일은 가볍게 보지만 자기가 당한 일은 무겁게 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새로운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 4:33절에 보면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직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부활의 예수가 나타나도록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자고 하신 곳이 바로 갈릴리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로 갑시다. 갈릴리에서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부활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부활을 증거 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