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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역자들에게 구할 것 (고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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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들에게 구할 것 (고전 4:1-5)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1. 시작하는 말 

지식이 많든 적든 간에,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보잘것없는 사람은 남에게서 비난을 받으면, 즉시 맞받아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의 위대한 일꾼들은 비난을 들으면, 그 비난을 계기삼아 놀라운 진리를 설파하곤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주님과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기에도 세월이 짧은데, 아볼로파니 바울파니 게바파니 그리스도파니 하면서 다른 파가 추종하는 교역자들을 비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의 사도권이 가짜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런 교인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도리어 그들에게 교역자의 신분을 가르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교역자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교역자에 대한 바른 태도와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일꾼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교역자들 

바울 사도는 교인들에게 마땅히 자신과 아볼로와 게바 곧 베드로 등의 교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 사도가 사용한 “일꾼”의 헬라어인 휘페레타스(ὑπηρέτας)는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사람’, 또는 ‘머슴이나 종 중에서도 가장 천하고 낮은 층에 속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종이나 머슴이 주인만을 위해서 일하고, 주인에 의해서 살거나 죽는 것처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일하고, 그 주님에 의해서 살거나 죽는 주님의 종 중 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교역자의 권위는커녕, 자신의 존재가 있으나 없는 자로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감투싸움에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이 있는데, 얼마나 겸손한 자기 이해입니까? 제 의견 하나만 관철되지 않아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은데, 얼마나 놀라운 겸손입니까?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교인들에게 교역자들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비밀,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하신다는 소식인 복음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역자들이 주님의 종 중 종으로서 지극히 겸손하게 감당해야 할 가장 크고 귀한 일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과 멸망의 운명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쌍한 인생들을 영생의 주님께 인도하는 일보다 더 크고 고귀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는 교역자들은 더 이상 낮추려야 낮출 수 없는 데까지 낮춰야만 합니다. 

성 프랜시스의 제자인 한 경건한 수도사가 영안이 열려서 천국 보좌 가운데 빛나는 좌석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누가 저 보좌를 차지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천사가 하나님께서 겸손한 프랜시스에게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너무나 신기해서 스승인 프랜시스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인 프랜시스와 함께 길을 걷게 됐을 때에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프랜시스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제일 악한 사람이다.” 수도사가 “선생님의 말씀이 진실치 못합니다. 세상에 악한이 많은데 어찌 그런 자들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세상에 악한이 적지 않지만, 내가 받은 은혜를 저들이 받았으면 나보다 만 배나 더 주님을 사랑하고 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어찌 저들과 비교할 수 있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 수도사는 프랜시스의 겸손에 그만 탄복하고 말았습니다. 


3. 교역자들에게 요구되는 충성

바울 사도는 교역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충성”의 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는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를 의미합니다. 신뢰, 또는 믿음직하고 착실한 것은 교역자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신뢰할 만한 인격과 실력을 갖춘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는 물론, 죄악으로 멸망 상태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더할 나위 없는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온 인류가 영원토록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주일을 더욱 잘 지키고, 더욱 힘써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주님의 몸인 이 교회의 일을 더욱 잘 감당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영국 어느 교회에서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헌금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간곡한 말씀을 순종하여 온 교인들이 정성을 다해 헌금과 헌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은 안타깝게도 바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하다가 자기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목사님께 “저는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어서 저를 하나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유명한 선교사요, 아프리카 탐험가로서 아프리카 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리빙스턴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때, 맹수의 밥이 되어 순교했습니다. 순교하기 전에, 그가 로마로 압송되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교인들이 구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를 안 그는 로마로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를 맹수에게 주어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르도록 하라.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 그리스도의 순전한 떡이 될 것이다. 오라. 악마의 잔인한 고문도 오직 나로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할 뿐이다. 온 세상인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땅 끝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이 낫다. 만일 그대들이 내 목숨을 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 덕택에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신 모든 일을 위해서 순교자적인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일꾼들에 대한 비난과 최종 판단자

엄밀히 말해서, 교역자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은 마땅히 주님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교역자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충성하는 일꾼들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대개 말이 많고, 남을 잘 헐뜯는 사람들은 충성스럽지 못합니다. 자기 앞가림을 못하니까 자연히 남을 걸고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교회 안팎의 충성스런 일꾼들은 남의 판단이나 비난에 초연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에게서 막중한 사명을 받은 바울 사도의 충성에 대한 판단은 오직 주님만의 고유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의 판단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또한 그 자신도 자신의 충성에 대해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자신의 충성에 대해 판단한다면, 사도로서의 임무 수행에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하겠으나, 그 판단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서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자신의 판단에도 초연할 줄 아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판단하실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그리스도이시자 우리의 궁극적 충성의 대상인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충성에 대한 최종 판단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아무것도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그럴 위치에 있지 않고, 또한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최종 판단, 특히 최종 심판은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 날이 오면, 그리스도께서 겉에 드러난 것 뿐만 아니라, 선악 간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것들까지 밝히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맺음말 

사람들에게는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올바른 판단 근거인 복음에 입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입각해서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교인들 중에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당파심에 입각해서 충성을 다하는 교역자들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역자들과 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과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신경 쓰는 대신에, 최종 판단자이시며 최후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재림 때에, 또는 죽음의 때에 주님의 칭찬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최세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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