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도우라 (시 3:1-8)

첨부 1


자녀를 도우라 (시 3:1-8)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꼽으라 한다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자녀 문제일 것입니다. 세상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 자녀의 존재와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닫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모두들 잠든 새벽 세시 나는 옥상에 올라갔죠. 하얀 색 십자가 붉은 색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조용한 교정이, 어두운 교실이,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 했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두세요. 모두들 잠든 새벽 세시 나는 옥상에 올라갔죠. 하얀 색 십자가, 붉은 빛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내일 아침이면 아무도 다시는 나를..... 나를......"  

이 노래는 청소년 문제, 특히 집단 따돌림 현상을 반영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노래가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 노래에 공감을 합니다. 자신들의 마음을 엽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자신의 인생을 밝혀주는 공부가 짐이 되고 함께 웃고 놀아야 할 친구가 적이 됩니다. 마음을 열고 기대어야 할 부모가 두렵습니다. 사단은 그들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누구에게도움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생명을 맡기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이 사단의 공격에 쓰러집니다. 그래서 심하면 자살까지 합니다. 
곳곳에 어느 시대보다 잘 만든 공원이 있지만 비어있는 것이 현실이고 불량배들이 방황하는 장소가 되갑니다. 

명동 지하상가 끝 부분에 있는 동그란 휴식공간을 낮에 가보십시요. 가방을 가지고 그곳에서 자고 있는 학생들, 고개를 제끼고 오는 사람을 흘겨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나의 아이는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가면서 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도망가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이 때 다윗을 도와주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당한 위기에서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쁘게 일하고 있어도 자녀가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사를 제치고 물에서 꺼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의 도움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의 자녀들을 도울 수 있는 무엇입니까? 
방법은 

1) 첫째 그들의 상황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1절에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여러분 자녀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로서 자녀의 영적 지도를 그려봐야 합니다. 영적 시간표를 만들어봐야 합니다. 자녀가 하루를 살 동안 영적인 영향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십시요.  

때때로 훌륭한 가정의 자녀가 타락한 경우나, 이해가 안되는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불량한 사람의 유혹, 이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평가와 비판만 받았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여 용납과 인정에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용납해 주고 인정해 주는 대상에게 맹목적으로 끌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요즘은 점점 조건적인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2학년 여학생의 편지입니다. 

"강아지라도 붙들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갔다 오는 길에 마을 오빠들이 나를 불렀습니다. 내 평생에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불러 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오빠들이 불량배라고 욕먹는 오빠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오빠들을 따라갔습니다. 나를 예쁘다고 칭찬하는 말에 나는 공주가 된듯하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한 학생이 쓴 편지입니다. 외롭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자기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면 그 곳이 어느 곳이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힘들지? 어렵지? 얼마나 고생이냐?"하는 따뜻한 말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체가 바로 가장 귀한 자녀 교육입니다. 바로 자녀의 형편을 알아주는 시작입니다. 
 

2) 그리고 자녀의 영적 삶을 안내해줘야 합니다. 

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를 보면 
다윗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세상에 보내시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영적 삶을 안내해주셨습니다. 
바로 광야였습니다. 

훈련조교는 마귀였고 훈련교관은 성령이며 훈련장소는 광야였습니다. 
그 곳에서 재물에 대해 말씀에 대해, 허영심과 권력에 대해 안내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육신의 부모님의 역할만이 아닌 영적인 삶을 안내해줘야 합니다. 

저의 고향은 전라도 익산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아버지 직장이 고창 해리라는 산골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은 해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전학했습니다. 어머니도 그 곳에 가셨고 저는 형과 할머니와 익산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중학생 때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사춘기를 지내기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곤 겨울 방학 때 해리에 가서 지냈습니다. 그 때 제가 잊을 수 없는 어머니 모습이 있습니다. 시골에 교회가 있었는데 오솔길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바닥은 마루바닥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눈이 그렇게 쌓여도 마루바닥에서 홀로 기도하며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붉은색 쇄타에다 검정색 털옷을 입고 눈길의 새벽길을 오르시고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한 편의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기도로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했어도 그 때 제가 신학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항상 저에게 하신 말씀은 기도 중에 하나님께 음성을 들었는데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들으셨다고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께 부르짖으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그 안내를 부모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영적인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을 자녀에게 해주고 있습니까? 그 말 한마디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아십니까? 평생을 이끕니다. 
 

3) 그래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8절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는 말씀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줘야 합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 두 아들 중에 야곱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겼다고 비참하게 울부짖습니다. 

"내 아버지여, 나에게도 축복하소서, 나에게도 축복하소서"  

그만큼 중요했다는 말입니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은 에서가 다 물려받았지만 결국 야곱이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성경은 부모의 역할이 단순히 자녀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공부시키고 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녀를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자녀를 축복하며 기르고 있습니까? 
여러분 육적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영적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들을 보며 아버지 나에게 축복해 주세요. 어머니 나에게 축복하소서 하며 에서처럼 울부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심령이 혹시 에서처럼 울부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로부터 충분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자녀에게 야단을 많이 칩니다. 아이들은 축복은 적게 받고 야단은 많이 받습니다. 그것도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단으로 사람이 크게 되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야단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야단은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육신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 치고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갈 5:1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죄도 저절로 나옵니다. 욕도 저절로 나옵니다. 운전하도 자동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저절로 욕이 나오지요. 화도 저절로 나옵니다. 화를 기도하는 것처럼 하루에 5시면 피곤해도 일어나서 화를 1시간 내야겠다 하십니까? 안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축복은 저절로 될 것 같은데,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축복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실제로 자녀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불쌍한 아이로 키웁니다. 우리 자녀들은 불쌍하게 큽니다. 너무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자라요.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라면 믿음이 없어서 못합니다. 쑥스러워 합니다.  

한 청년이 세 번 약혼을 했다가 다 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관계가 이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깊은 좌절에 빠졌는데,그 때 전도되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과 상담하다가 자기 문제의 원인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너무 엄격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강한 군인이 되기를 강요하였고, 한 마디도 칭찬이나 격려가 없었습니다. 칭찬이 아들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하고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아버지께서 갑작스런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병원 복도에서 비통하게 울부짖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퍼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더욱 슬펐던 것은 아버지에게 축복 받을 기회를 영원히 놓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축복받지 못한 아들로 키우시고 있지는 않습니까? 

칭찬이나 축복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나오는 칭찬이나 축복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 했거나 어떤 일에 성공하였을 때, 좋아하고 칭찬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잘했을 때만 칭찬하고 좋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마음을 왜곡시킵니다.  

한 아이는 무척 까다로운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100점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이 아이는 처음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 아이는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성적이 좋을 때만 아버지의 칭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 갔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특한 아들입니까? 그러나 그가 결혼한 후 가정이 깨어졌습니다. 그는 사람과 즐겁게 사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는 일 중독증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나 자녀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나 결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잘못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는 대부분 이렇게 키웁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조건없는 부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했다고 느낄때, 안아주고, 격려하고, 더욱 사랑함을 표현하는 부모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자녀에게 좌절하고 실망하셨습니까? 부모 자신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는 눈, 믿음의 눈이 열리면 부모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녀를 축복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4살에 말을 하고, 7살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여러분의 자녀가 늦도록 글을 모르면 아인슈타인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뉴턴은 초등학교 성적이 꼴찌였습니다. 에디슨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같이 둔한 아이는 처음 본다"(너같은 돌대가리는 처음 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자녀가 조금 부족할 때에도 축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기 자식은 다 천재로 보인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어린이는 다 천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부모는 그것을 보고 눈을 열어 축복해야 합니다. 천재를 천재로 키우십시요. 천재를 천재로 대우해주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향한 믿음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은 내가 잘해야만 좋아하고 축복한다는 조건적인 기쁨과 축복을 하면 자녀는 망칩니다. 마음이 왜곡됩니다. 

이들에게 마귀가 거짓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포장하며 오면 다 넘어갑니다. 
제대로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들을 신체적인 접촉을 통하여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창27:26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아이들을 안으면서 축복하십시요. 갓난 아이를 만져주지 않고 기르면 생명이 위독합니다. 2차대전후 유럽에서 전쟁고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만져주지 않으니까 사망률이 놓았습니다. 그러나 입양되어 만져주며 자란 아이들은 살았습니다. 연구보고입니다. 

막 10 : 13 -16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다 성장한 자녀라도 만져주고 안아주십시요. 안기가 쑥스러우면 잘 때라도 안아주십시요. 손을 잡으십시요. 
중요한 것은 자녀를 축복하려면 무엇보다 부모가 먼저 복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축복을 받고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축복을 해 주려도 줄 축복이 없습니다. 어려웠던 시대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잘 살게 되었어요. 그러나 흘러갈 축복이 없어요. 

여러분 이것이 가문을 축복 없는 가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자라지 못한 자녀는 그가 부모가 되어서도 자녀에게 줄 축복이 없어요. 이것은 자손대대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만나 가문의 흐름을 축복의 통로를 바꿔내지 않으면 그는 그 자체로도 죄입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자녀는 부모가 되어도 자녀에게 축복해줍니다. 그래서 그 가문이 축복받는 것입니다.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의 오토다께 히로타다씨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를 받은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이 첫 상봉을 합니다. 그러나 산모는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오토다께씨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편안하게 키워졌기 때문입니다.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가 없다.' 그것 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야구, 축구, 수영, 컴퓨터, 붓글씨, 모든 것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오토다께씨는 말합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입니다." 그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책 표지 사진을 보면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요. 

사지 절단 장애인이면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입니다. 

1889년 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사교 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을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였습니다. 1933년에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같은 해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즈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행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모두가 교회 생활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매일 저녁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입니다. 

1944년 이 사람은 11개월에 걸쳐 양측의 총 지휘관으로 전토에서 대면하였습니다. 패전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대통령까지 지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세계가 애석해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부모가 달랐던 것입니다. 

축복은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 매우 중요한 선물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다윗이 힘들고 지칠 때 그를 도와 주셨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가정에서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집안에서 거룩한 자리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기도방석을 하나씩 만들어주십시요. 깨끗하고 예쁜 것을 사용해서 그 방석은 기도할 때만 쓰도록 하십시요. 학교같다가 돌아와서 기도 시간이 되면 방석을 꺼내주십시요. 

또한 가정중보게시판을 만드십시요. 서로 말하기 힘들게 바쁩니다. 또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시판을 사서 그곳에 자기의 기도제목을 적고 다니게 합니다. 

또한 기도의 제목을 부모는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기도의 범위만큼 사람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조국, 세계로 기도 확장해야 합니다. 
 

결론 

여러분 부모는 자녀를 도와야 합니다. 자녀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영적으로 안내해줘야 합니다. 특히 부모는 자녀를 축복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해주려면 내가 축복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시간 주님께 기도하십시요. "주님 저도 아버지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부모님도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받은 축복이 없습니다. 자녀를 축복해주고 싶어도 내가 축복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축복을 이시간 받았습니다. 주님의 축복과 사랑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아버지 어머니 되게 하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