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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 (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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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 (빌 4:8-9)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도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나름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게을러서, 행복을 위하여 마땅히 치루어야 할 노력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위하여 정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룬 사람들 중에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가장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뜻밖에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때문에 행복을 위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눕는 수고를 하지만 정작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이 주는 고통과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부요하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가난은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요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참 가난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때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때 태어났습니다. 집에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전화가 있는 사람들이 부자였습니다. 우리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새마을 운동을 하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노래는 하도 들어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초가집도 고치고 마을길도 넓히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새마을 운동을 성공하였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선진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드디어 돌파하였고, 구매력과 실질생활을 감안한 국민소득은 3만 불이 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졸업하여 받는 초봉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의 개발도상국가들과 후진국들의 꿈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50년 만에 국민소득이 250배나 늘어난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난은 불행이었는데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 곧 행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서히 그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들도 여전히 불행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과 출세가 나쁜 것은 아닌데 성공하고 출세했다고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고 죽어라고 고생하고 노력하여 막상 성공하고 보니, 출세하고 보니 생각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편견일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행복과는 별로 상관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 버는 것과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만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돈 버는 것과 성공과 출세를 무조건 우습게 여기고 죄악시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그것은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 버는 것과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행복 하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언제 사람은 행복할까요? 이제 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은 돈이 많을 때 행복한 게 아닙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사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사람은 행복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행복은 그 때 뿐입니다.

아내와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양가의 반대가 심했었습니다. 그것을 뚫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리만큼 캄캄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옥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양가의 허락을 받아 결혼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시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꿈꾸던 내일이 오늘 속에 녹아 오늘과 내일이 내게는 한 날.
당신으로 인하여 꿈꾸던 내일이 오늘 속에 녹아 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신의 하루를 삽니다.

꿈은 삶. 삶은 꿈.
그리하여 나는 이 낮에도 당신을 꿈꿉니다 그려.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 참 행복했었습니다. 편지를 쓰다가 ‘편지’라는 제목의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진실이고파 아름답고파
썼다간 구기고 썼다간 구기고
마음 같이 써진 편지 마무리하다 그만 잘못 써진 글씨 하나
그냥 죽죽 두 줄 그러 지워버리고 계속 쓰면 될 것을
다시 손 씻고 와 처음부터 쓰는 편지 당신께 쓰는 편지.

이제 우리부부도 60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의 그 무엇을 얻는다고 하여도 저는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아직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뇨도 오래 되었고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 쪽 신장이 절반 밖에 생겨나지 않아 저를 늘 담당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그것을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열심히 걷고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더 많아져서 더 이상 지금처럼 걸을 수가 없게 되면 저는 아마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는 건강을 잃어서 나 혼자의 힘과 의지로만 활동하고 생활 할 수 없을 때를 상상합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힘이 되어 줄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냥 세상적으로 볼 때 초라하고 무력한 늙은이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그때도 과연 내 아이들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존경해 줄 수 있을까?를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저는 그 때 제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도 행복하지만 그것을 잃으면 죽는 것처럼, 불행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더 사랑받고 더 귀히 여김을 받고 더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몇 년 안 있으면 은퇴를 하게 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꿈꾸어 왔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제법 큰 교회의 목사입니다. 저는 제법 큰일을 하고 있는 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제법 구체적인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관심은, 제 욕심은 그 모든 것들이 다 없어졌을 때에 있습니다. 그 때에도 사람들에게, 교인들에게, 함께 동역했던 직원들과 교역자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목사일 수 있을까?를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저는 그 때에도 사람들과, 교인들과, 함께 사역했던 직원들과 교역자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행복할 겁니다. 죽을 만큼 행복할겁니다. 제 욕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무엇에든지 사랑 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할 만 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사랑받고 끝까지 칭찬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 소원은 그런 사람이 되는데 있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칭찬 받지는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한다고 사랑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과 사랑을 포기하고 그 댓가로 성공하고 출세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성공했으나 욕을 먹고 출세했으나 사랑받지 못해 외로운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짦은 본문 말씀 속에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고 어떻게 살면 칭찬 받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라. 무엇에든지 경건하라. 무엇에든지 옳아라. 무엇에든지 정결하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모든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여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받는 삶, 칭찬 받는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여 주고 있습니다. 부자만 되기 위하여, 성공하고 출세하는 삶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살면 불행해진다, 그렇게 살면 외로워진다, 그렇게 살다보면 비참해 진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이라고 하는 사람이 ‘소유냐 삶이냐?’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에릭 프롬은 그 책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유형의 인간 즉 having mode의 인간이고 또 하나는 존재형의 인간 즉 being mode의 인간입니다. having mode의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to have 즉 소유에 두고 사는 사람이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to be 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자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상에 욥처럼 의롭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 사탄이 하나님께 의의를 제기합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소유를 산처럼 둘러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탄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욥이 많은 것을 소유한 부자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욥의 존재 자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은 욥을 소유형의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하나님은 욥을 존재형의 인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밝혀내기 위하여 시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시험의 결과 욥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존재형의 인간임이 밝혀졌습니다. 산울처럼 그를 두르고 있던 엄청난 소유가 다 무너졌을 때에도 욥은 여전히 하나님이 말씀하던 그 사람 그대로였습니다. 욥은 성공하였습니다. 욥을 끝까지 승리케 한 것은 소유와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사람 됨이었습니다.

우리는 생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삶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지면 행복해 질 줄 생각합니다. 넓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호의호식하고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집과 차를 사기 위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며 삽니다. 그것을 위하여 전력하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잊어버립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1/3 이상의 부모들이 자녀와의 대화가 불가능하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자식과 대화가 가능한 부모는 그렇게 많지 않을꺼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식과 대화를 할 수 없는 부모가 1/3을 퍽 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돈과 출세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친구를 잃었습니다. 동료를 잃었습니다. 딴에 정신을 팔며 바보같이 살다가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 지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동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경쟁상대일 뿐입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될 때에는 친구 같지만 그 이익의 관계가 끝나거나 끊어지게 되면 그 자리에서 돌아서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돈 전대를 가지고 있어야만 자식들이 찾아온다고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은퇴를 한 후에 절대로 퇴직금이나 재산을 미리 자녀들에게 주지 말라고 이야기 해 줍니다. 자식들도 부모에게 더 이상 받을 것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실일는지 모릅니다. 아니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잘못 산겁니다. 우리가 크게 실수 한 겁니다.

끝까지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끝까지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무엇에든지 참되고, 옳고 경건하고 정결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배우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믿어집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정말로 잘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보면 돈과 성공과 출세를 혹 잃어버릴 수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돈과 세상적인 성공을 언제나 잃어버리는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결국 사람을 얻습니다. 사랑과 칭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간증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001년 6월 첫 토요일 경희대에서 청년들 집회를 한 후 아내에게 동안교회를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청년들 전도집회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보면 어떨까라고 물었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정말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당신 참 훌륭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아내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았을 때 저는 천하를 다 얻은 것보다 기뻤습니다.

99년도에 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중에 하나인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을 쓰고 각오했던 바이지만 참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받은 상이 컸습니다. 그 상을 그 책의 에필로그에 적었습니다. 그 에필로그 중 한 부분을 여러분들에게 간증하고 싶습니다.

<6년 전 교회 개혁의 문제를 처음 생각했을 때 너무 힘들고 어렵게 느껴져서 할 수만 있으면 모른 척하고 회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도망갈 수 없었다. 힘든 싸움을 나름대로 싸워야만 했다. 여러 번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고비를 잘 넘기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언제 이 싸움이 끝이 날는지 그것도 잘 알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일이라는 확신이 바뀌지 않는 한 나는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월요일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내려가 ‘크리스천 베이직’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다. 나의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한동대의 3학년과 2학년인데 두 아이가 다 내 과목을 듣는다. 

외부에서 많은 압력을 받아서 아주 힘들었던 주간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올라왔더니 컴퓨터 메일에 큰 아이가 보낸 편지가 올라와 있었다. “저 00입니다. 오늘 강의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아버지의 치열한 삶의 투쟁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버지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올라가시는 길 안전하도록 기도할께요. 몸 조심하시구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상은 이미 다 받았다. 더 이상 바랄 상이 없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 내 아들이 나의 이 싸움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치열한 삶의 투쟁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됐다. 그러면 됐다. 누가 뭐라든 난 이젠 아무 상관없다. 이 이상의 상은 없다. 상은 다 받았다. 이제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면 된다. 이제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된다. 나는 내 아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치열한 투쟁’이라고 인정해 준 그 근사한 싸움에 정말 내 생명을 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임파서블한 미션이라고 하는 일에 믿음으로 도전하여 탈북자들을 위한 공장을 세우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여 신문에 크게 기사가 났을 때 둘째 아이가 그 기사를 스크랩하여 자기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 또한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참 행복했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여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예수를 위하여 늘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했었습니다. 아이의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지열아 아버지 죽거든 아버지 묘비에 적어주렴.”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늙어서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인간적으로 볼 때 나약하고 초라한 정말 늙은이가 되었을 때에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정말 예수를 잘 믿고 싶습니다.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며 무엇에든지 참되고, 무엇에든지 옳고, 무엇에든지 경건하고, 무엇에든지 정결한 사람이 되어 끝까지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복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런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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