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마 19:13-15)

첨부 1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마 19:13-15)
 
젊었으면... ’, 어린 아이라고 하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미성숙한 것, 아직은 좀 모자란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순수함, 깨끗함일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 댁에 손님들이 와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인 엄마가 6살 된 딸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식사기도를 네가 한번 해볼래?” 그러자 어린 딸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엄마, 난 기도할 줄 모르잖아”, “그냥 엄마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그러자 딸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맛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 집에 귀찮은 손님들이 많이 올까요? 앞으로는 안 오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에게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3절)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 ”, 예수님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 말씀에 갈급해 듣고자 하는 사람들, 바리새인들,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부모들이 있었습니다. 

1.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부모들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자기의 자녀들이 예수님께 안수를 받고, 기도를 받게 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 저는 제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하며 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사랑스럽습니다. 지난 주 중에 깨닫게 된 것인데, 자식이 타고 가는 자동차도 예뻐 보이더라고요. 둘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데, 평소에 걸음걸이도 천천히 느긋하게 걷는 놈이 자전거는 쌩 하고 달리더라고요. 그 모습도 흐뭇하더라고요. 

여러분 표정이 좀 심하다는 표정이네요. 자식 자랑하거나 가족을 너무 앞세우면 불출이 중에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제가 그런가 봅니다. 사실 자식은 그저 건강하기만 해도 감사해요. 여러분, 자식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데 그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대해서는 각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린 아이들이 이리 뛰며 저리 뛰며 소리를 지르고 다니니까 예배가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안내위원 한 사람이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편안한 예배, 질서있는 예배를 위해서 아이들을 잘 살펴주실 수 없나요? 아이들은 되도록 아이들 반에서 교육을 받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성경도 모르십니까?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제자들이 그것을 막았더니,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모르십니까?”, 성경에 있는 내용을 말하며 답변하는데 안내위원은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아는 것이 병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어른과 동일한 인격체로 여기는 태도가 교회 안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도 질서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 찾아온 이 부모들은 ‘내 아이를 예수님께 안수를 받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 자식을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아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가치관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아침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학원에 맡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한테 부모들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치맛바람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 아닙니까? 우리 어른들은 다 압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 그래서 다 교육의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교육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더 나아가서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가치관을 서슴없이 심어 줍니다. “너는 뒤지면 안 된다. 좀 그릇된 방법으로라도 앞서야 한다. 이겨야 해” 하면서 몰아댑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경쟁 사회의 구성원으로만 키웁니다. 

오늘 본문의 부모들은 예수님 앞에 자기 자식들을 데려왔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그런데 제자들이 막습니다. 아이들은 안 된다고... 그래도 그것을 무릅쓰고 예수님 앞으로 데려오려고 합니다. 기도 받게 하고 싶었음. 순전히 자식들을 위해서입니다. 


2. 자녀들이 예수님과 만나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부모 

오늘 말씀에서 이 부모들에게서 배울 점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자기 자녀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예수님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국인들의 신앙의식 조사 보고서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결과가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19세이하가 43.3%, 20~24세:14%, 25~29세:10.7%, 30~39세:18.3%, 40세이상:14.6%, - 우리 가운데 절반은 19살 되기 전에 믿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30~39세가 좀 많은 편인 것은 ‘결혼한 후에 예수 믿는 아내 때문에 남편들이 교회에 많이 끌려 나오기 때문’으로 평가됩니다. 종합적으로 40세 이전이 도합 85.3%입니다. 

이 말은 30세가 넘으면 믿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젊고 어린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 학교, 교회에 대한 기억들 중에 ‘교회’에 대한 기억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영향입니다. 제가 3~5살 때, 어머님이 찬송을 자주 불러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님은 시집오시기 전, 고향 교회(이천의 대월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낮에 낮잠을 자다가 깨면 어머니가 나를 위해 찬송을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 찬송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주일학교 시절, 주일 오후예배에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저녁을 안 주셨습니다. 교회에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밥을 굶으니까.... 나 역시 교회가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예수님 만나는 신앙 체험을 하게 되어서 이렇게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감격과 추억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옛날 우리가 찬송 속에서, 기도 속에서 배웠던 그 신앙을 우리의 자녀에게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그 열심의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바치면, 십분의 일만 아이들에게 믿음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투자를 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저는 예배시간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배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데, 아이들은 울기 마련이고, 떠들기 마련입니다. 어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데리고 옵니다. 좀 시끄러워도 아이와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 좋습니다. 괜찮아요. 아이들은 울고 떠드는 거에요(다른 분들 표정 변함. 목사님이 저렇게 허락하셨으니 예배시간 시끄러워지는 것 아니야? 예배위원들 표정... ). 

예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좀 불편할 수도 있어요. 부모들이 조심스럽게 잘 챙기면 됩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그런 분위기에서 자랄 때 그 아이들의 믿음도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3.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14~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이 내어 쫓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먼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막지 마시고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여러분의 자녀가 만나게 되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교회 학교에 아이들을 잘 보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은혜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이들을 맡고 있는 교회 선생님들을 존경해 주십시오. 초대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주면 더욱 좋고.... 그 선생님들이 여러분의 자녀의 영혼 문제를 책임지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 분들입니까? 교회는 어린아이들의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찬양하고, 기뻐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순진하고 솔직하고 단순한 어린아이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이란 심령이 가난한 모습의 한 형태입니다. 

지난 주간에 충북 연회에 참석하면서 이것 저것 조직과 행정에 관한 일들을 접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 ‘더욱 순수한 믿음으로 사역을 하자, 예수님의 마음에 집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우리 교회에 어린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전도자 D.L. 무디는 전도자가 되기 전에 교회학교 교사였습니다. 그가 전도 훈련을 받을 때였습니다. 훈련받고 나가서 전도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무디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저는 오늘 두 사람 반을 전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 하다가 한 사람이 곧, “알겠습니다. 어른 두 사람, 어린이 한 사람을 전도하셨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아니요, 반대입니다. 어린이 두 명과 어른 한 명을 전도했습니다.”, “아니, 왜? ... ”, “어른은 벌써 인생을 절반 이상 살았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구원한다는 것은 그의 일생을 구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진지한 이야기입니까?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리는 유아세례를 거행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세례를 많이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늘 이 뜻 깊은 주일에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내 가치관을 따라’ 살기보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백하면서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고, 기쁨과 찬양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여러분과 가정에 이러한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