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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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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우리가 본문을 중심하여 앞서 된 일을 보면 성육신 하신 예수께서 헤롯의 핍박을 만나 하나님의 지시로 애굽으로 가셨다가 헤롯이 죽은 후에 또 하나님의 지시로 나사렛 동리에서 사시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세례요한이 요단강 근처 광야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하는 이것을 계시사상적으로 보면 유대의 임금은 주님이신데 주님이 아닌 딴 것이 유대임금 노릇을 하고 있고, 주님은 저 시골구석에 가서 살고, 말하자면 온 교회가, 사람들이 세상을 임금으로 삼고 주님은 모두 다 무시하는 시골 저 촌구석에 내팽개치고 살 그 때에 주님이 보내신 종이 온다는 말입니다. 진리의 종들은 그 때에 외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운동을 하게 한 것은 예수님을 잘 영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특별한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 초림으로 오시기 직전 마지막 선지자요, 하나님의 신실한 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예수님 재림직전에 이런 신실하고 충성된 종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특별한 신경을 쓰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예언된 선지자가 어디에 있느냐? 선지자는 광야에서 삽니다. 세례요한은 주의 종들의 계시모형입니다. 주의 종인지 아닌지, 하나님의 보내신 종인지 아닌지,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인지 아닌지 세례요한의 정신 사상을 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언된 선지자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는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란 어떤 곳이냐? 광야에는 집도 없고, 낮에는 불볕 밤에는 추위, 독사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를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광야 같은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히 살 영존처가 아닙니다. 이렇게 무섭고 위험한 곳에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 광야에 왜 왔느냐? 이 광야에 왜 사느냐? 어떤 모습이냐?

 

옷은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공해로 장만해 주신 순 자연산 입니다. 그러나 헤롯 왕궁의 식탁에는 선민 이스라엘이 피와 땀을 흘려 낸 세금으로 장만한 기름진 고기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왕궁에서 왕족들이, 귀족들이 입는 늘어뜨린 자색 옷을 입은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입은 것처럼 광야에서 생활하기에 안성맞춤의 옷입니다. 세례요한은 노후대책 세워 놓은 것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무슨 백으로 저렇게 사는지!

 

광야에서 왜 사느냐? 광야에 왜 왔느냐?

 

. 소리노릇 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소리? , 그야 주님이 보냈으니 주님의 소리지! 소리는 상대 속에 주님의 의사전달만 해 놓고는 사라집니다. 오늘날 자기가 주님의 능력 있는 종이라 하면서 자기 소리만, 세상소리만 남겨 놓는 마귀가 보낸 거짓 종들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길에 밟히는 게 거짓 종들입니다.

 

말속에 말이 있고, 말속에 의사전달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말하는 소리 속의 그 말이 누구의 말이냐? 자기 말이냐, 남의 말이냐? 성경구절 열심히 이용을 한다만 저 소리 속에 천국을 자랑하는 말이냐, 세상을 자랑하는 말이냐? 세상의 것을 이루고 가라는 말이냐, 주님의 정신 사상이 들어 있는 말이냐? 저 소리 속에는 임시적인 것을 가지라는 말이냐, 영원한 것을 가지라는 말이냐? 저 사람 속에 누가 들어서 저 말을 하느냐, 누가 저 사람 속에서 나팔을 불고 있느냐?’ 주의 종들은 소리노릇만 하고 가야 되고, 듣는 자들은 소리분별을 잘 해야 속지 않습니다.

 

. 회개하라.

 

선지자의 소리를 듣고 회개하려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회개란 정신 사상 소원 목적 취미 간구성 모두를 방향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첫째는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

 

둘째는 몸만 간다고 할 것이 아니라 애굽을 좋아하는 성질을 뽑고 하나님 말씀을 넣는 것입니다.

 

이래야 회개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선적으로 할 일은 선지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는 회개를 하지 못합니다. 회개가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들어야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으로 시내산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기 위해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으로 시내광야로 나가게 한 것입니다.

 

시내산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를 바로 하는 사람은 소원 목적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으나, 바른 회개를 모르는 사람들은 광야로 나왔어도 하나님 말씀을 듣기는 늘 들으면서도 애굽의 부엌에서 부추 넣고 고추장에 비빔밥 말아먹던 생각만 하고, 현실에 대해 원망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바람을 넣고. 이것은 바른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분노로 땅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상 애굽을 그리워하는 정신 사상을 가지고는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선지자는 광야에서 외치니까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면 광야로 나가야 하는데 광야로 나가려면 도시를 등져야 할 것이 아닌가? 도시에 있는 집도 사업도 인간도 인정도 등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회개의 사상이 바로 잡히지 않습니다.

 

신학적 용어로 기본회개중복회개라는 말이 있는데 보통 알기로는 예수 믿는 것을 기본회개로 말하고, 중복적 회개는 일반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 종교활동 잘못한 것을 용서받는 기도를 하면서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게 고쳐나가는 것을 중복회개라고 보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잘못하면 평생 동안 자기는 회개했다고 하나 회개치 않고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회개는 인간이 하는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세상에서 사는 자기의 소원 목적 정신 사상이, 이해타산 평가성이 영원 궁극적 신령계에다 두었으면, 그리고 현실에서 그와 같은 정신으로 산다면 이는 회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도 혹 살다가 행동적으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예수 믿으면서 믿는 목적이 세상의 것이고 세상에 있는 것이란다면, 예를 들면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 되는 것이란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회개가 안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 채 회개를 다 했다고 생각을 하며 살다가 행동적으로 잘못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즉, 종교생활이라든지 일반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이것을 회개하는 것을 중복회개로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회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회개도 고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신앙의 성장은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신앙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회개가 바로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니 자기의 일생, 삶의 소원 목적을 영원 궁극적인 천국에다 두고 진리신앙 노선으로 가야 합니다. 이 진리신앙 노선으로 가다보면 종교생활이나 일반 도덕적인 면에서 잘못한 것은 바로 고쳐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선지자의 말을 듣고 고치는 것과, 애굽에서 바로 왕의 말을 듣고 고치는 것과는 그 정신 사상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 소원 목적을 향한 상태에서 종교생활 잘못한 것, 일반 도덕적 행동을 잘못한 것을 아무리 회개하고 고쳐도 신앙성장은 없고,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고,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바로 된 사람은 어디서든지 광야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장사를 하면서도 광야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광야교회로 말한다면 회개란 이스라엘이 몸과 마음과 정신 소원 목적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자고 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꼭 광야로 나가야 만이 됩니까? 헤롯의 궁궐에서 잔치벌이고 풍악을 울리고 무녀를 춤을 추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고 회개시키면 안 되는 겁니까? 오늘날 교회들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는커녕 애굽세상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는 거짓 종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압니다. 계시록에 광야에서 붉은 빛 짐승을 탄 음녀, 물위에 앉은 음녀 모두 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회개는 광야에서 바로 되어야 선지자의 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들을 수 있고, 회개가 바로 되어야 하늘의 만나를 먹을 수가 있고, 회개가 바로 되어야 불기둥 구름기둥 즉,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세례를 받으려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물세례를 하나의 종교의식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물세례의 그 정신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좋아하던 것을 다 정리하고, 끊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살겠다는 결심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세상을 품고 세상을 쳐다보면서 세례를 받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각오와 결심이 서겠습니까? 마음속에 세상소원 목적,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세례를 주는 자가 어떻게 세례를 줄 수가 있겠습니까? 선지자가 광야에 있는 것도, 광야에서 세례를 주는 것도 세상과 세상의 것을 완전히 끊고 받으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광야에는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이 도시에서처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광야에는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선지자 말씀 듣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순종하고 가는데 무리들은 애굽의 10가지 재앙이 무서워서 남 따라 엉겁결에 광야로 나오긴 나왔는데 하늘의 만나가 맛이 없고 시내산 말씀이 듣기가 싫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물든 자들은 불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 선지자는 광야에서 외칩니다.

 

왜 광야에서 외치느냐? 나에게 광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건설된 이 세상은 불에 타질 것입니다.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 속에 있으면 아니 됩니다. 소원 목적적으로 천국을 향해 가야 됩니다. 신앙이 없는 롯이었지만 억지로라도 광야로 나갔기 때문에 유황불을 맞지 않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군대가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들랑 산으로 올라가라광야는 주만 바라보나이다’ ‘산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의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라 입니다. 해를 입은 여자는 품에 안은 아이를 죽이지 않으려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선지자 만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세례 받지 못하면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주님의 길은 주님이 오시는 길입니다. 첩경이라는 말은 지름길이란 뜻이요, 평탄은 순조로운 것을 말함입니다. 돌 같은 죄악의 마음, 쿡쿡 찌르는 가시밭 같은 마음, 인간 제멋대로 가는 꼬불꼬불한 마음. 이런 마음, 이런 성질이 없는 아스팔트 지름길처럼 회개가 된 잘 닦여진 마음입니다. 주님을 잘 영접하고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이 참 좋은데 예수 잘 믿겠다 생각을 하고 전도를 해 보면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통할 것 같아서 진리이치의 말을 하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실컨 들었는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엉뚱한 딴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마다 세상을 지향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인 줄 모르고 자기는 사람 좋은 사람인 줄만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향하고 세상을 소원 목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던, 안 다니던 모두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를 믿되 자기 소원, 자기 주관성으로 믿는 것이지 예수님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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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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