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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포도주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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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도주

(요2:1-1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런 기적들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 기적을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조차 이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기쁨”을 성령의 한 열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구절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쁨을 특징으로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기쁨은 세상에서도 능히 얻을 수 있는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기쁨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특징지었던 유익하고 영원하고 신령한 기쁨입니다. 

저는 이 시간 다루어야 할 본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통해 기쁨을 얻었던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유는 우리도 그 기적을 체험할 때 그 기적 체험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의 충만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기쁨 가운데로 인도하는 신령한 기적들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전제되어야 할, 실천 되어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시간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1.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혼인집 하면 기쁨이 충만하고 떠들썩하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만 그 당시 이스라엘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좋은 날 기쁨의 축하연 시간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잔치를 벌인 집에서 포도주는 빼놓을 수 없는 제일 중요한 음식입니다. 이것의 부족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모자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주인은 의식하지 못했는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잔칫집에 이미 와있던-(1절)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마리아가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의 혼란과 손님들의 실망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포도주가 모자랐다는 기록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연회장까지 두어 준비했던 혼인 잔칫집에 가장 중요한 음식인 포도주가 모자랐다고 하는 것은 인생들이 준비한 모든 것은 그들이 아무리 많이 준비하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이고 풍요로운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인이 아닌 마리아가 발견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은 신앙이 있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자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문제가 되도록 변질, 변형되었고, 우리는 싫던 좋던 문제가 많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에게도 문제는 찾아옵니다. 오히려 더 많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문제들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축복이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문제들이 우리에게 올 때 그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문제가 나에게 기도를 하라는 목적으로 주신 것인지,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것인지, 나를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해 주신 것인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인지 바로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목적을 바로 알아야 기도를 하든지, 회개를 하든지, 인내를 하든지, 감사를 하든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내 사랑하는 부모, 남편이나 아내, 자녀, 일가친척이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거나, 식구들이나 개인에 건강에 큰 이상이 있거나, 가정에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문제 등 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므로 관심을 갖고 우리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 자주 저에게, 목사님! 제가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게 되면 저는 책임감을 갖고 그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저는 그 기도제목에 대해서 내 기도처럼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공적인 기도의 자리에서 정작 그 어려움을 당한 그 사람을 만나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의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보다는 그 사람이 문제 앞에서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더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잔치집 주인과 마리아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안타까워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은 어려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54하지만 마리아는 심각성을 바로 인식했고 그 문제 앞에서 취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그 문제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은 문제 앞에서도 불평하지 않도록 합니다. 낙심하지 않도록 합니다. 위축되지 않도록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요 2:3)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마리아는 주인에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옆집으로 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찾아가야 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사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가 기도할 제목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기도해야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먹는 것보다, 활동하는 것보다, 숨 쉬는 호흡이 우선되는 것은 호흡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보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 다 중요한 것이지만 기도가 제일 앞서 가야 하는 것은 기도는 영적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정확히 이 사실을 알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문제 해결과 사는 비결을 정확히 알고 첫발을 디딘 것입니다.

(요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라는 표현은 상당히 어색할 뿐 아니라 무례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여자여’로 해석 된 ‘귀나이’는 ‘귀네’의 호격으로 책망이나 낮춤말이 아니라 오히려 이 단어는 그리스에서 왕이 왕후를 부를 때, 혹은 자기 아내를 사랑스레 부를 때 사용된 존칭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라는 칭호를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부를 때도 사용하셨습니다.(요19:26)

주님께서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며 즉각적인 응답을 미루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대답이 있었음에도 마리아는 낙심하지 않고 5절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님을 통해 한 번도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도 아닌 상황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예수님께 부탁한 것도 대단한 믿음인데, 정중히 그 요구를 거절당한 상황에서도 하인들에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예수님께서 관여만 하신다면 능히 그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불가능을 신앙으로 이겨낸 마리아의 위대한 결단이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 앞에서도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쉽게 범하는 죄 중 하나는,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기도의 응답이 더디거나, 문제의 해결이 없으면 기도를 곧 포기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하나님은 유한하고, 제한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고 우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계시는 전능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이 구하는 기도라면 100% 응답된다는 확신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겠습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임종을 앞둔 성도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심방을 가서는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성도를 붙잡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병실을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식구들을 만나자 장례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지 말았던가,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으면 퇴원수속 준비를 하라고 했어야 하는데, 살려달라고 기도하고는 뒤돌아서서 장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자기가 기도하고도 그 기도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눅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였으며, 그 기도 후에는 응답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던 자였습니다.

마 8장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라고 하며 중풍병에 걸린 하인이 그 병에서 낳기를 원했던 백부장이 그랬습니다.

마 9장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고 믿었던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그랬습니다.

또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외이다” 라고 외쳤던 두 소경이 그랬습니다.

마15장에 “옳소이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매달렸던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기도했던 성경의 인물들과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은 기도도 많이 했지만 모두가 다 믿음을 갖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믿음은 공적인 사역을 감당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여자여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거절하셨던 예수님께서 그 뜻을 돌이켜 귀한 능력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3.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 귀한 뜻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은

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여기에 쓰인 ‘채우라’의 헬라어 ‘게미사태’는 “가득 채운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비어있는 두 세통(한 통-8갤론 반 / 두세 통-약 20갤론:70~100리터) 드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되 아귀까지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연회장’ - ‘아르키트리 클리노스’는 ‘아르케’(권세자)와 ‘트리클리노’(시중드는 사람들을 위한 세 개의 탁자가 놓여 있는 방)의 합성어. 즉 시중드는 사람들의 총책임자를 의미하는 호칭.

이 두 가지의 명령은 당시의 모든 정황에 비추어 봤을 때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올 사람들은 거의 다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데, 포도주를 구하러 숨 가쁘게 뛰어 다녀도 모자랄 판에 손님들이 잔칫집에 들어오며 정결례를 치룰 때에나 필요한 손 씻을 물을 담아놓는 항아리에 다시 물을 채우라는 명령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분명히 조금 전에 자신들이 갖다 부운 물을 포도주가 모자라 낭패를 당하는, 아니 그런 사실을 혹시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한창 흥에 겨워있는 그들에게 술 대신 물을 갖다 주었을 때 쏟아질 비난과 질책이 예견되는 상황을 아는 그들이었기에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명령 역시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8절 하반절에 “갖다 주었더니” 그랬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기적은 기도 없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인간의 계산이 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불신앙의 자리에, 불순종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무조건적인 순종은 결국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물이 포주가 되는 불가능이 가능이 되었던, 땅엣 것이 하늘의 것으로 바뀌는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값진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6장에서 노아는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120년동안 산위에서 온 재산과 시간을 들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크기의 배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 14장에서 모세는 뒤쫓아 오는 애굽 군대의 위협과 앞에 홍해바다의 위협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다 위로 손을 내 밀었고 하나님의 기적은 바다를 갈라 바다로 마른 땅 같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수 3장에서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요단강이라는 문제를 만난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제사장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는 명령 앞에서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발을 물에 담갔고 그 결과 하나님의 기적은 요단강을 갈랐습니다.  

수 6장에서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되 제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을 돌라”는 말씀이 임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삼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그런 믿음으로 골리앗을 통쾌하게 쓰러트리는 승리를 하였습니다.

왕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 앞에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풍요의 복을 얻었습니다.

히11장은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기록이 나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모세. 32절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8절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불가능을 기도와 믿음과 순종으로 가능케 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고 따라가야 할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4.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와 같이 문제의 바른 인식, 믿음의 기도, 말씀의 순종은 우리가 그토록 필요로 하는 하늘의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그러한 기적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여건이 변화됩니다.

포도주와 물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맛이 달라집니다. 향이 달라집니다. 효능이 달라집니다. 가치가 달라집니다. 또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잔칫집 대문 바깥에 놓여있는 돌 항아리에 담겨져 있었으나 이제는 당당히 잔칫집 마당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주인공으로 변화되어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운 문제가 있다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바로 나를 주인공으로 삼으려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것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만 있었던 기적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기적도 아닌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을 사랑하며, 그 분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그 놀라운 기적들이 나와 내 가정과 내 사업장에 충만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문제 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여 지금도 안타깝게 기도하고 계시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늘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그 동안 기적이 안 일어났고,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이 없었던 것은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본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기억하고 이 말씀대로 실천하므로 하늘의 위대한 기적들을 걸머지시고 그 축복의 기적들을 가지고 주께 영광돌리고,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기적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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