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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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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회개의 물세례, 세상을 향한 소원목적에서 천국으로 향한 목적을 가지는 것. 주님이 주시는 세례는 성령과 같은 불로 세례를 주심인데 완전히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겁니다.

 

사실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았고 제자에서 사도의 사역을 한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는 항상 동반하심인데 진리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사람이 내적 변화를 받아 세상으로 향하던 삶을 완전히 천국 쪽으로 변화를 받는 것.

하나님 말씀을 이치로 바로 깨달아 진리이치의 사람으로 충만케 되는 것.

이렇게 성령세례는 진리와 영감으로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

불세례는 또 한 뜻은 하나님께서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깨닫게 하는데도 교만해서 도무지 만들어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며 살 때에 내적으로 회개를 시키려고 사건의 몽둥이를 들고 와서 불맛을 단단히 보여주는 것도 불세례입니다.

 

기도하다 등짝이 뜨거운 것만 불세례라고 알면 안 됩니다. 밥 몇 끼 굶어도 속에서 열이 올라옵니다. 이것을 성령의 불이라고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하시는 일과 세례요한 자기가 하는 일과 비교를 하면 세례요한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종들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실 때 신실한 종들의 말씀을 우습게 여겨 주님이 직접 하실 그 때는 말이 필요치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민감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키는 까불리게 해서 바람을 일으켜 알곡과 껍데기를 갈라내는 기구입니다. 타작은 두들겨 곡식을 터는 것이고. 타작을 하게 되면 알곡은 툭툭 잘 불거집니다. 그러나 껍데기는 죽어라고 두들겨도 알곡과 함께 있어 가지고 타작이 안 됩니다. ? 껍데기뿐이니까! 자꾸 두들겼다가는 알곡도 자꾸 깨지고 가루가 될 정도입니다. 쭉정이는 아무리 부서져도 알곡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혼합된 이것을 어떻게 골라내느냐 하면 기분 좋은 바람이 슬슬 불면 쭉정이는 마음이 들숭날숭, 히프가 들썩들썩 하더니 그만 그 바람에 휙 날려갑니다. 알곡은 키로서 바람을 일으켜도 주인 품안으로 들어왔으면 들어왔지 쭉정이 따라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키질할 때 크게 잘 영글어진 알곡은 주인에게 바짝 들어오고, 좀 덜 영글어진 것은 중간쯤 있고, 알곡인지 껍데기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는 키의 끝에 가서 툭 떨어집니다. 그것은 재수가 나쁘면 불 속으로 태워지고 재수가 좋으면 창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잘 믿는 척 해도 바람이 슬슬 불면 자기 된 대로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은 추수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타작.

지역적인 타작.

종말적인 타작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타작은 개인적인 불행한 사건, 징계, 재앙.

지역적인 타작은 교회의 수난, 또는 전쟁의 사건, 또는 자연재해.

종말적인 타작은 하나님의 대국적인 시대 전체적인 큰 사건.

 

타작이 될 때까지는 수많은 농부의 수고가 들어 있고, 하늘로부터 비와 햇빛 바람 등의 역할과 기다림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으로 말한다면 생명의 말씀의 씨앗을 심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있었고, 종들의 진리이치의 가르침이 있었고,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여기에서 깨닫고 성장하고 연단을 받고 알곡이 되는 그런 성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인은 예수를 수십 년 동안 믿어도 여전히 세상으로 기울어져서 자기 편리주의로 믿고, 이방 종교인들처럼 풍속 습관은 다 따르고 종교적 유행바람도 따르고 도무지 신앙정신적 사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쭉정이요 껍데기입니다.

 

타작으로 두들길 때에는 얻어맞으니 아프고 고통이고 하니까 아이구, 하나님 잘 믿겠습니다하지. 아프니까 징계인 줄 알지. 하지만 시대적 종교적 유행바람을 슬슬 일으키면 그것이 자기의 신앙을 들추어내고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는 바람인 줄 전혀 모르고 자기는 바람을 타고 기분이 좋아서 까불까불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 꼴을 보고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하나님 앞에 예배 보는 날 변명이 많아진다고 하는 것은 내가 세상바람에 날려 가는 껍데기가 아닌가생각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이어지는 첫 단계입니다. 물론 마지막 심판 때에도 쭉정이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많으니 회개를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선지자가 하신 말씀이니 오늘날 교회의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고, 따르는 교인들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느낌의 존재입니다. 자연계의 법칙을 왜 보여주느냐? ‘인간아, 너는 자유성을 가졌고 심판성을 가진 존재이다. 신앙 인격적 사상적 좋은 열매를 맺겠느냐, 나쁜 열매를 맺겠느냐? 개인적 지역적 종말적인 심판이 있는 존재임을 알아라!’

 

좋은 열매는 세상의 바람을 타지 않습니다

 

3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 때에

 

이런 가르침을 속화된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그 때에 먼 길을 걸어서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오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예수께서 죄가 있어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준비로써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의도성을 모르고 지극히 높으신 당신에게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예수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받다니 말이 됩니까라며 말렸던 것입니다. ‘아니다, 세례란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합당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식이다!’ 하나님의 인정이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는 이것을 보고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옳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신앙정신 사상에서 나온 세례의 정신 사상이 하나님 앞에 옳다는 것. 세례 주는 정신이 옳고, 세례를 받는 정신이 옳고. 우리는 그 정신 사상으로 세례를 주고, 세례를 받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단체,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한 세례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세례요한이 주는 그 정신 바탕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입니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 그 정신 바탕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 단순한 의식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실속적인 아들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법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의를 성품적으로 이루는 것은 실속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영능의 실력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계시해 주기 위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사실 세상으로 향한 그 정신 사상 그대로를 가지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합당한 의식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높고 낮은 지위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받아야 할 신앙사상입니다.

 

교인들 중에 세례를 받자하면 자기에게 물질의 부담성이, 짐이 맡겨질까봐 천리만리 도망을 잘 가고, 춤추고 뛰고 하는 귀신들의 집회는 잘 찾아가고 안수를 받으러 좇아다니는 교인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6, 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선언이 내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늘이 열렸으니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 하늘나라가 어떤 세계라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전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근심 걱정 고통이 없고 죽음이 없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의 세계다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모르면 안 됩니다. 모르면 단일성으로 사람 만들어지는 것을 모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치를 모르면 그만 속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으니 하나님의 본질의 온유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온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온유는 일반적으로 유순한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아무리 일반적으로 유순해도 하나님을 안 믿고, 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진리이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축복 받아라하면 손을 벌리나, ‘너를 고치자하면 그만 싹 오므라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의사의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고칠 수가 없으니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성경을 모르고 자기가 사람이 안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사람 만들어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주관적으로 세상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악령이지! 주님의 일은 성령의 일입니다. 주님의 일을 모르면 귀신의 난장판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아들이라, 내 기뻐하는 자라했으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무엇을 못 주겠느냐? 아들이 기쁘니 그 말입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능력권, 하나님의 영광권, 하나님의 누림권 활용권 사용권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든지 가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를 이루십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우리도 그 주님의 정신 사상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타의 성화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닮는 일을 하고, 마귀의 자녀들은 세상을 닮는 일을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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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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