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하나님 경외와 웃어른 공경 (레 19:32)

첨부 1


하나님 경외와 웃어른 공경 (레 19:32)

  

구한말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 중에 캐나다 출신 게일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에서 노인으로 살고 싶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연장자를 존경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목격한 선교사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런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수년 전 유엔아동기금(UNICEF)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17개국 청소년 1만 73명을 대상으로 어른 존경도에 대한 면접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항목에 한국의 청소년들이 그렇다고 응답한 수치는 13%로 17개국 중 꼴찌였습니다. 17개국 평균이 72%인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뭔가 잘못된 조사라고 믿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최근 존속 범죄(폭행, 폭력, 살인)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을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인터넷에 유포되었던 ‘지하철 패륜녀’ 동영상은 가위 엽기적입니다. 10대 여학생이 60대 여성과 몸싸움을 하면서 막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전동차 안에서 수십 명의 승객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뜯어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이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동방예의지국’이 이제는 ‘동방무례지국’으로 전락해 가는 게 아닌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넘었네, 앞으로 4만 불이 될 거네 하고 자랑하면 뭣합니까? 이대로 방치되면 개인이나 가정이 불행해지고, 사회와 국가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정신을 차리고 부모 공경과 어른 공경의 윤리의식을 고취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부모 공경과 어른 공경을 더욱 성실히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신앙과 윤리의 연관성 : 믿음과 행위는 하나 

구체적으로 웃어른 공경에 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신앙과 윤리의 연관성에 관해 알아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뤄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습니다.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윤리가 요구됩니다. 윤리가 무엇입니까?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행할 도리입니다. 윤리가 없는 신앙은 헛것입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과 행위는 하나라는 겁니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입니다. 만일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그에 따른 행위가 따라오지 못하면 표리부동한 가짜 신앙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요일4:20에 그 연관성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기독교 윤리를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함하고 있는 게 바로 십계명(출애굽기 20장, 신명기 5장)입니다. 십계명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계명~4계명, 그리고 5계명~10계명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서 지킬 계명입니다. 그래서 대신계명(對神誡命)이라 부릅니다.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어서 지킬 계명으로 대인계명(對人誡命)이라 부릅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은 제5계명이니까 대인계명 중 첫 번째입니다. 대인계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올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여기서 부모라고 되어 있지만, 모든 웃어른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기독교 윤리를 실천해야 되고, 그 중에서 인간관계 속에서는 부모 공경과 웃어른 공경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웃어른은 부모에서부터 연장자, 그리고 지도자 등 하나님께서 내 위에 세우신 모든 분들을 가리킵니다. 

[2] 하나님 경외와 웃어른 공경 : 부모, 연장자, 지도자 

오늘 본문은 제5계명을 풀이해 놓은 말씀이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신앙이 있다면, 당연히 웃어른 공경으로 이어져야 됨을 증거합니다. 레19: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센 머리, 노인은 부모를 포함해서 모든 웃어른을 가리킵니다. 연장자와 모든 차원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과 직결됩니다. 특히 맨 뒤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덧붙인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중대한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곧 불신앙이요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일입니다. 딤전5:4,8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부모 공경, 그리고 친족이나 웃어른 공경은 인간이라면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할 일이라는 겁니다. 이 당연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벧전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웃어른을 공경하고, 동년배인 형제를 사랑하고, 지도자를 공경하라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연장자를 공경하고, 영적 지도자들을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여기서 장로는 장로들을 포함해서 교역자와 기타 직분자들을 포함합니다. 교회 생활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모든 분들을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모든 웃어른을 공경해야 합니다. 한 살이라도 더 잡수신 분들, 어떤 차원이든 내 위에 계신 분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품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 발전이 덜 된 게 문제가 아닙니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게 문제입니다. 옛날 유교문화에서도 지키던 것을 기독교 인구가 20%에 달하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패륜이 만연되고 있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이대로 방치되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소망이 없습니다. 

[3] 웃어른 공경의 방법 : 감사, 존경, 순종, 섬김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웃어른을 공경해야 할까요? 감사하고, 존경하고, 순종하며 섬겨 드려야 합니다. 잠23:22,25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공경의 기본은 은혜에 감사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혹은 부모가 해 준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무얼 많이 해줬다고 감사하고 존경하는 게 아닙니다. 부모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최소한 낳아주신 그 한 가지만 해도 큰 것을 해 준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잘 표현했든 잘 표현하지 못했든 엄청난 사랑입니다. 철없는 자식들이 그걸 모를 뿐입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부모 공경에 관한 수기를 공모했습니다. 우수작으로 당선된 글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아버지 죄송해요’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이상한 병이 생겼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지더니 결국 곱사등이 됐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놀립니다. 딸은 늘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딸이 커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신부 입장 때 아버지 손을 붙잡고 들어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남들이 보고 뭐라고 할까 생각하니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결혼식 며칠 전 아버지에게 간청했습니다. 너무 죄송한데 결혼식에 오지 마시라고. 

큰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섭섭한 것보다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결혼식 날까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딸이 아기를 갖게 됐는데 입맛이 없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시골의 아버지는 딸이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장아찌와 김치를 싸갖고 찾아갑니다. 막상 딸네 집 앞에 와서는 망설였습니다. 누구라도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된 겁니다. 그래서 집 앞 가게에 가서 택배 왔다며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장아찌와 김치를 받은 딸은 통곡을 합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한심한 딸입니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아버지를 이제껏 부끄럽게 여겼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여러분, 이런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죠.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부모 공경은 또 순종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상형 문자인 한자로 친(親 어버이 친) 자와 효(孝 효도 효) 자가 생긴 유래라고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5일장이 섰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에 나가 팝니다. 어머니는 이제나 저제나 아들을 기다립니다. 해가 질 무렵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어머니는 동구 밖까지 나갑니다. 멀리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글자가 어버이 친(親) 자라는 겁니다. 한편 아들은 나무를 팔아 그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반찬과 일용품을 사들고 옵니다. 자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뭐하려고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제가 업어드릴게요. 지게 위에 올라타세요.” 이렇게 늙은 어머니를 지게 위에 태우고 오는 아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효도 효(孝)자라는 겁니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주고, 또 주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내게 무얼 해 주셨냐며 불평하기도 하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입니다. 그걸 어떻게 갚겠습니까? 이제 자식으로서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섬겨드려야 합니다. 요즘 경제난으로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핑계입니다. 부모를 섬기는 것은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뭐가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아버지가 상처한 후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합니다. 직장 다녀야죠, 집안 살림 해야죠, 아이들 공부 봐 줘야죠, 1인 3역입니다. 어느 날 밤늦게 반찬거리를 사갖고 귀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이들이 미역국 끓여놓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생일 케이크까지 준비해 놓고. 아버지가 놀라서 말합니다. “아니, 아빠 생일이 음력인데, 너희들이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웃으며 말합니다. “아빠, 휴대폰에 보면 음력도 다 나와요. 거기서 찾아봤어요!”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과 겨우 식사를 마친 후 방에 들어가 혼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내가 그리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울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런 가정이 작은 천국 아니겠습니까? 환경이 어렵지만 이러면 살만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식들이 불효하는 데에는 어른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자식들을 잘 가르치되, 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쑥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해야 됩니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해 주고, 팀플레이를 통해서라도 부모의 은혜를 자식들에게 인식시켜 줘야 합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됐던 초등학생의 동시가 많은 아버지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놀라주지 못하는 사정도 모르고 철부지 아이가 이걸 동시라고 쓴 겁니다. 아니, 엄마는 뭐하고? 아이에게 아빠가 수고하고 애쓰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부교역자로 있던 교회의 젊은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평소 마음속으로 귀하다고 생각했던 분인데,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가만히 보니까 아이가 은근히 할머니를 무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이 집이 누군 것인지 아니? 할머니 집이야. 엄마도 아빠도 너도 할머니에게 잘못 보이면 쫓겨난단 말이야. 그러니까 할머니께 잘 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죠. 홀어머니가 자기를 잘 키워줬으니까 잘 자라서 집을 장만했으니 따지고 보면 할머니 집이죠. 그 후로 아이가 할머니에게 아주 공손히 대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이 됐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효도에 대해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럴 때 자자손손 복된 가문이 될 수 있습니다.

[4] 축복의 약속 : 형통의 복, 장수의 복 

부모와 웃어른을 공경하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축복의 약속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보너스인 셈입니다. 반대로 부모와 웃어른을 무시하면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계명은 바로 제5계명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소홀히 여기는 자에 대해 하나님은 누누이 경고하십니다. 레20: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사도 바울은 제5계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엡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대인계명 중 첫 계명인데, 특별히 약속이 붙어 있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겁니다. 5계명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공수표를 남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옛날 미국 버지니아 주에 한 가난한 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홀어머니는 세탁이나 바느질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며 밤새워 공부했고, 마침내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졸업식장에서 상장과 메달을 받게 된 아들은 어머니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며 졸업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망설입니다. “내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 네게 누가 될 것 같구나. 집에 가져오면 나중에 보지, 뭐.” 그러자 아들은 눈물로 호소합니다. “아니, 어머니! 제가 이렇게 된 게 어머니 덕택인데, 어머니가 안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졸업식장에 간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기둥 뒤에 앉아계셨습니다. 드디어 아들이 상장과 메달을 받는 순서가 됐습니다. 아들이 총장님에게 말합니다. “총장님, 잠깐만요. 연단으로 모실 분이 있습니다.” 아들은 연단 아래로 내려가 기둥 뒤에 숨어 계신 어머니에게 다가가 모시고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우리 어머니입니다! 이 메달은 어머니의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모자를 부러워했습니다. 여러분, 이 착한 아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제28대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입니다. 우리나라 3.1 운동에 영향을 준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분이죠. 하나님은 효도하는 윌슨에게 대통령이 되는 복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고 감사한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14년 어머니날을 제정합니다. 5월 둘째 주일! 지금도 미국에서는 교회에서처럼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지킵니다. 그 후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에 어머니날이 퍼져 나가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는 어머니날로 지키다 아버지들이 데모해서 어버이날이 됐죠. 사실은 이게 맞죠. 아버지는 먹고 놀았나요? 

여러분! 이번 어버이주일은 하루짜리 부모공경과 웃어른 공경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관된 삶의 태도로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마땅한 일일 뿐 아니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이 솔선해서 웃어른을 공경함으로 우리 자신과 자손들, 그리고 온 나라가 새로워지는 귀한 축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