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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시 112:1-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은혜로운 가정의 달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기와 분쟁과 질투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 씻어나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 옆에 있는 분의 손목을 꼭 잡고 인사하십시다.
"사랑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인사하십시다.
"저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과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차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기다리지 마시고 그 사랑과 그 행복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에 목말라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미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사랑의 날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삶의 주제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이 없는 감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집안은 어렵습니다.  사랑이 없는 개인은 고독하고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생기입니다.  모든 생명체에 사랑이 들어가면 생기가 일어납니다.  사랑은 산소입니다.  모든 생명체에 산소만 호흡하면 다 살아납니다.  사랑은 접촉입니다.  사랑으로 정복하지 못할 것은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사랑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삽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사랑을 못 받으면 금방 죽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무너지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돈이나 감투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주제가 된다면 인생은 헛되고 헛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감투라고 하는 것은 아침의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도 아침의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돌고 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흐뭇한 표정이 무엇이겠습니까?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마는 저희가 자랄 때는 너무나 쉽게 보았던 모습입니다.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아무 데서나 그냥 젖을 턱 내놓는 어머니의 모습.  이것은 이 땅의 어머니만이 갖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젖을 먹이면 아기는 마치 레이더처럼 찾아갑니다.  사랑과 피부의 그 아름다운 접촉을 어머니와 아이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지금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도 이 아이를 가슴으로 안고 키웠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어린 시절에 당연히 경험해야 할 어머니와의 피부접촉의 근원적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폭력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일수록 대단히 신경질적이라고 합니다.

어느 동물학자가 10년 동안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원숭이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딱 떼어서 원숭이 엄마하고 접촉을 못하도록 하고 키웠습니다.  하나는 엄마가 젖을 주고, 하나는 우윳병을 먹이면서 인간이 있는 힘을 다 쏟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2년 후에 엄마와 사랑의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자란 원숭이는 성격이 대단히 난폭하고, 이기적이었습니다.  밤에 자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놀 줄도 모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놈이 자라서 엄마가 되었는데 그 자식을 얼마나 학대하는지 키울 줄도 모르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흐뭇한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남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십시오.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기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주님이 나를 만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상처 난 자국을 만지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분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보이시는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속에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분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과 가족과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사랑을 터뜨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하게 권면합니다.  지금 있는 그 모습 그대로 한 번 뜨겁게 사랑해 보십시오.  미치도록 사랑해 보십시오.  이 땅에 사랑하는 날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날보다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당신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면 당신의 가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면 섬기는 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가라지처럼 자리잡고 있는 모든 미움과 질투와 낭패와 시기들을 다 버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철철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들에게는 사랑할 날들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날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항상 기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구원을 위하여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위하여 하나님 밖에서 잠시 재미있고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있는 면이 있어서 그것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불편하다고 하여도 그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면 안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주신 축복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정과 가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편 128편에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도 보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가정과 가족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1-4)

오늘 본문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부터 3절까지 다시 한 번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길을 걷는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주시고 싶어하시는 대표적인 복은 행복한 가정과 가족입니다.  특별히 자손의 형통함과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입니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을 오늘 본문 시편 112편에는 노골적으로 부와 재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어려움의 원인을 신앙의 부족 때문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가 세상에서도 부요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잘못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다가 혹시 잠시 동안이라도 가난해 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세상에서도 왜곡되지 않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정말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자들의 가정과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늘 행복한 가정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집안에 몇 분 간격으로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야곱은 어떻게든지 장자에게 내리는 복을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형이 어느 날 밖에서 사냥을 해 가지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미 동생이 만든 별미를 먹고 동생에게 모든 복을 다 빌어 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거룩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네가 가는 길에 복을 내리시고…."

이미 축복이 끝났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형 에서가 통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처절하게 절규합니다.
"아버지! 내게도 복을 빌어주세요.  아버지! 내 동생에게 빌었던 그 복을 나에게도 빌어 주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방성대곡을 하며 절규하는 이 기도는 정말 성경에 나오는 기도 중에 제일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런 기도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 이 시대가 선대의 복을 잃어버린 현대판 에서의 절규를 가는 곳마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 없는 식민지 국가로 전쟁의 잿더미 위에 있던 이 나라가 어떻게 오늘의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까?  선대들의 눈물의 기도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구석구석을 가보면 선대들의 복을 잃어버린 바로 현대판 에서들의 절규가 골목마다 집집마다 가정마다 자녀들마다 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모든 자녀들 속에 하늘의 첫 축복의 젖줄을 터트리려고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대의 복을 잃어버린 현대판 에서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자녀들 앞에서 믿음의 부모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과 사명에 붙잡혀 거룩한 영적 변화를 주도하는 믿음의 부모가 되십시오.  믿음의 부모 앞에는 변화는 꼭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부모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미래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무서운 감지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은 볼 수 없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의 영감이 철철 넘쳐서 내 자손들과 내 가문 앞에 일어나는 그 미래에 대한 감지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부모는 신나는 믿음의 비전을 제시할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이 내 속에 나타나는 상상력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만드십시오.  각본을 만드십시오.  놀라운 기대감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십시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하여 너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혼자 사는 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해서는 너무 서툽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서툴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불편합니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있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병적으로 지나쳐서 사랑하는 자녀들하고도 함께 사는 것에 대하여 불편해 합니다.  부부도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 합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잘 사는 법의 반대말은 혼자 잘 사는 법입니다.  이것은 개인 이기주의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와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알아서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맛보게 된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 교우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도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100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요?  일등은 그럭저럭 삽니다.  이등은 마지못해 삽니다.  삼등은 무엇이겠습니까?  "죽지 못해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등 가는 소원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그 행복을 찾아서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정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쟁 같은 삶을 삽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공부합니다.  그 과정과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놀아야만 할 어린 아이 때부터 가방을 들고 이 학원 저 학원을 뛰어 다녀야만 합니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전쟁은 대학을 가도 끝나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또 전쟁하듯 돈을 법니다.  목숨을 걸고 돈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법 돈을 법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불행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성공한 사람도,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막상 알고 보면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만 확인해 보면 쉽게 아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확인을 좀처럼 하지 않고 돈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돈버는 일에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온 인생을 돈에 걸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재벌 백 명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아니 세계의 재벌 백 명에게 똑 같은 것을 물어 보십시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무슨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대답을 할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게 사는 법이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깨닫고 몸에 익혀 그 법에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법을 모릅니다.  그 법에 서툽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은 행복에 서툽니다.  반면에 불행에는 유능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행복하게 잘 사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과 구원의 길과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행복과 구원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한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답답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잠도 안 자고 어떤 때는 밥도 안 먹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보면 그 법을 몰라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음으로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과 똑 같아 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헛된 일에 분주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이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법을 성경에서 찾으시고, 배우시고, 몸에 익혀 그대로 한 번 살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하나님의 소원대로 좀 행복하게 사십시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온 지면으로 흩어져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삶을 살지 말고, 오순절날 성령 받은 사람들처럼 함께 모여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죄가 있는 곳에는 이기주의와 흩어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함께 하나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랑하는 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아는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노래로도 부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이 자기의 말씀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 참지 않습니다.  온유하지 않습니다.  무례합니다.  그리고 매사가 폭력적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이기적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 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잃습니다.

저는 사랑이 무례하지 않을 때 깊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禮)를 모름으로 불행해 집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함께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사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외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의하면 아래 사람이 위의 사람에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아래 사람과 위의 사람이 모두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의 없는 아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는 예의 없는 위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강해지고 부해지면 대개 교만해 집니다.  사람이 높아지면 대개 교만해 집니다.  교만해 질 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현상은 무례해 지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기분 나쁘게 합니다.  가정서 강자는 대개 남편과 부모입니다.  아내와 자식은 대부분의 경우 약자입니다.  가정에 있어서 강자인 남편과 부모가 대부분 무례합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기분 나쁘게 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기다려 줄 줄 모릅니다.  그리고 함부로 소리를 지릅니다.  때로는 폭력도 행사합니다.  성경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과 정 반대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평범한 말씀 같지만 사실은 비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들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식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입니다.  지혜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입니다.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즉 계명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에서 지혜를 얻어 그 지혜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복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 백 날을 다녀봐야 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입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에 경외감을 가지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려고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가정과 가족에 대한 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이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를 섬기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사철에 봄바람이 불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잘 믿고 그 계명들을 즐거워함으로써 여러분들의 모든 가정이 강건해지고 행복해 지는 복이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 가정의 달에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축복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향한 가문의 어떤 축복의 통로입니다.  자녀를 꼭 껴안고 손을 얹고 입으로 복을 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반대로 저주도 부모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저주라고 하는 말은 '카를라게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입으로 헐뜯다", "입으로 욕하다"는 뜻입니다.

부모 되신 분들은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가족간에 절대로 입으로 서로를 헐뜯으면 안됩니다.  입으로 욕을 하면 안됩니다.  저주란 말은 입으로 헐뜯고, 입으로 무너뜨리고, 입으로 욕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그 혀에 있다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두고 이렇게 맹세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아주 무서운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꼭 껴안고 손을 얹어서 안수하며 포옹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이 가정의 달에 아무리 마음 상할 일이 있고, 아무리 어리석은 일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여러분!  피차에 욕하지 마십시오.  피차에 헐뜯지 마십시오.  피차에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 자녀들 위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의 결박을 풀 수 있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 자녀들 위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책임도 부모에게 있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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