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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축복의 문을 열자 (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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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문을 열자 (룻 1:15-18)   
 
어느 노인 한분이 쓴 시 한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늙은이가 되거들랑 설치지 마시오.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일 랑 아예 하지를 마시오. 그저 그저 남의 일에 칭찬만 하시오. 묻거들랑 가르켜 주기는 해도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시오.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이기려고 하지 마시오. 져주시구려. 어차피 신세질 몸인 것을. 젊은이들에게 꽃을 안겨주고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게 원만히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를 말고 어디서나 언제나 고마워요 하시오. 

돈 돈에 욕심을 버리시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고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오. ‘그 사람 참 좋은 분이었지’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살아있는 동안에 많이 나누어 주시오. 산더미같이 큰 덕을 쌓으시구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은 겉으로 하는 말이고, 정말은 돈을 놓지 마시오. 죽을 때까지 꼭꼭 잡아야 하오. 남들에게 구두쇠 소리는 들을지언정 돈이 있어야 나를 돌보고 모두가 받들어 모셔준다는데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사실이라오.”

아마 이미 들으신 분도 계시지만, 제가 이 시 한편을 제 파일속에 잘 저장해 둔 까닭은 참 연세드신 어르신들 마음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 이 시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어버이 주일인데, 제가 어버이 주일 설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젊은 목사라는 그런 평을 듣는 저이기에 ‘연세드신 분 심정은 어떨까?’ 도무지 헤아리기 어려운 지라 오늘 어버이주일 설교하기가 참 곤혹스럽지만, 오늘 성경의 원리에 의해서 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어버이를 둔 자녀들에게 주시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교훈 하나를 나누려고 합니다. 크게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하나?’ 할 정도로 너무너무 당연한 말씀 같아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효도하면 하나님이 복주십니다. 그 말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면 복의 문이 닫혀진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엡6장 1~3절까지 말씀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랬습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이 이 계명을 잘 지키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을 덧붙여 놓았다는 계명을 말합니다.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인 부모에 효도하라는 계명을 보면, 하나님이 그 계명에만은 이 계명 잘 지키면 땅에서 장수하고 형통할 것이다.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약속을 덧붙여 놓으셨어요 

정말. 왜 하나님이 그리 하셨느냐? 하면 부모님에게 잘 하는 것과 하나님께 잘하는 것이 영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뜻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만약에 잘못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에게 잘못하는 것이다. 그 교훈을 주시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읽어보면 부모를 업신여기고 잘못하므로 저주를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지요. 아버지가 벌거벗고 잠자는 것을 흉보고 소문낸 까닭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부모님과 하나님은 영적으로 서로 끈이 연결되어져 있다는 거예요. 

어느 마을에 아주 불효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연세 드신 부모님을 때리기까지 하는 그런 불효자였어요. 동네에서 소문 다 났지요. 그런데 그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손주는 끔찍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당신은 배알도 없소? 아니 아들이 당신한테 그렇게 막 대하는데, 그 손주가 무엇이 예쁘다고 그렇게 당신이 돌보고 사랑을 베푸는 거요?”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 빙긋이 웃으면서 그 아이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으면서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내 복수를 해줄 아이요.”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혹시 그런 마음으로 손주 사랑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은 접으시기 마시기 바랍니다. 왜? 손주가 복수 안 해 줘도 하나님이 갚아주시겠다고 그랬습니다. 부모에게 잘하는 자는 하나님이 복주시고, 부모에게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절대로 그냥 넘기시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진리에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 나오미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에게 남편이 있었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서 모압이라는 이웃 나라로 피난을 갑니다. 거기에서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서 두 아들을 장가를 보냅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모압이라는 땅에 이사를 갔는데도, 남편 세상 떠나고 이어서 두 아들이 다 죽어요. 과부 셋이 남았습니다. 그때서야 나오미가 자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복되게 살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이제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어야지’ 하고는 이스라엘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며느리 둘인데 이 두 며느리 데리고 고향에 돌아오면 며느리들에게는 이방 땅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고생이 되겠지만 며느리까지 고생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모압 여인인 두 며느리에게 “너희들 이제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그들을 풀어줍니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눈물로 작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둘째 며느리인 룻이 끝까지 어머니 따라 이스라엘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요 여러 가지 살기 불편해도 “연세 많으시고, 홀로되신 어머니를 내가 어떻게 내버려두고 갑니까? 저를 가라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어머니를 따라 나서겠다는 거예요.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기 1장 16절~17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룻이 어머니에게 잘하는 것하고 하나님에게 잘 하는 것을 같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주시기를 원한다.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거예요. 이 룻이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따라서 이스라엘로 건너와서 정말 복을 받아요.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요. 좋은 남자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부자에요. 그 보아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룻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지 그것도 신기한 일이지요. 룻이 보아스에게 묻습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고 이미 결혼한 여자인데 당신이 어째서 나를 좋아합니까?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나이까.” 그때 보아스가 대답을 합니다. “내가 네 시어머니에게 하는 모든 행위를 내가 다 들었노라. 바라기는 이제 여호와께서 네게 네 행위대로 보응해주시기를 원하고 여호와의 날개 아래 네가 보호받기를 원하여 여기 왔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있을지어다.” 

보아스도 똑같은 말을 해요. 시어머니에게 잘한 것을 하나님이 갚아주시는데, 그 감동을 내게 주셨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룻이 보아스를 만나 거기서 행복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룻은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간 이방 여인이 되는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아요.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부모에게 잘하면 하나님이 갚아주시고, 부모에게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하나님은 영적으로 끈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여러분과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부모님과의 관계에 걸림이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분명하게 해결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까닭이 있겠지요. 혹시 부모님에게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가 있든지 간에 부모님과는 걸림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반드시 해결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문이 닫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잘못하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부모님과 사이에 마음에 걸림이 깨달아지면, 오늘 여러분이 반드시 그것을 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잘 아는 개척 교회 목사님 한분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목사님, 저희 교회가 창립 된 지 벌써 6년이 됩니다. 이제는 장년 70명 재적에 주일에 60명 정도 출석하고 아이들이 30 명 가량 됩니다. 

목사님, 개척 교회 5년 만에 터득한 것인데요, 개척 교회는 분열의 영이 강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새 신자가 와도 기존 교인이 좋아하지 않고, 일꾼이 와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래서 들어오면 나가고 들어오면 내보내고. 이런 과정을 4년을 보냈습니다.”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교인들이 모이나 싶으면 또 흩어지고, 또 새 가족이 오나 싶으면 내좇고. 그렇게 교인들 사이에 투기 질투가 많다는 거예요. 개척 교회니까 한 사람이 오는 것이 얼마나 귀해요? 하나님이 다 그렇게 보내준 사람들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시기, 질투, 미움이 교인들 사이에 그렇게 많다는 것예요. 

이 목사님이 5년째 되는 해에 너무너무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깨달은 것이에요. ‘분열의 영이 역사하는구나! 시기, 질투의 영이 역사하는구나!’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 역사가 일어나니까. 교인들 사이에 한 사람이 아쉬운 때 왜 시기, 질투, 미워하는 일이 생기나? 영적인 역사구나. 마귀가 교회가 서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그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 교회가 부흥되도록 기도하는 기도보다, 영적인 대적하는 기도를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역사하는 분열의 영아! 시기의 영아! 질투의 영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부터 교인들이 하나 되기 시작하고 교인들이 새로 오면 거의 100% 정착하게 되면서 이제는 개척 교회 어려운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는 거예요. 

마귀가 역사합니다. 마귀가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첫 번째는 교회이고 두 번째가 가정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시려고 주신 것이 교회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영적인 분별을 가지고 보면 보입니다. 악한 영이 분열과 시기 질투의 영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가정도 똑같아요. 

여러분, 기족들끼리 왜 분열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기는 지 아십니까? 고부갈등이 가정 문제의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 중의 숙제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까? 

시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는 사랑하는 아들의 아내요,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에요. 갈등할 이유가 전혀 없는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행복하게 살아야 될 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왜 계속해서 가정마다 이런 갈등을 가지면서 삽니까? 영적인 문제를 알아야 되는 것이에요. 

마귀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들 사이에 틈만 생기면 분열을 일으키고 불화를 일으키도록 역사하는 것이에요. 부부가 왜 갈라집니까? 왜 부부 사이에 금이 생깁니까? 이제는 영적인 눈을 뜨고 분별해야 돼요. 왜 부모와 자녀 사이가 원수 같은 그런 가정도 생기는 것입니까?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고 그러면, 거기에는 반드시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부모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부모와 관계를 풀기 어려운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시시비비 따지면 안 됩니다. 누가 잘 했냐 못 했냐 따지면 마귀에게 그대로 속는 것이에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처만 더 깊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은 복 주실 수가 없게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방법이 영적으로 푸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정신이에요. 용서와 사랑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은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아니에요. 용서와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십자가에서 가르쳐 주신 은혜이지 않아요. 부모님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용서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용서로 부모님을 용서해야 돼요. 또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님 사랑이 바로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와 가정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하고 자녀 사랑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다 느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돼요. 그러나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참 힘듭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녀를 사랑한 것을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니까. 아무리 자식을 많이 사랑해도 그 사람이 복을 받았다는 말이 없어요. 그것은 복 받는 것과 상관이 없어요. 자식 사랑도 못하면 그것이 이상한 거지요. 

그런데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복 받을 일인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경우에는 복 받는다고 약속을 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복을 놓치지 않으셔야 돼요.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세상에서 먹고 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은 것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을 받는 것이에요. 

성도들 중에 이따금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 때문에 고민하시는 성도들이 계신 것을 봅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지요. 형제들 사이에도 누가 모셔야 되느냐 하는 문제 때문에 갈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복이 굴러오는 것이에요. 여러분 마음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 때문에 오는 경제적인 부담감이나 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님 모셔야지!’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에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그 마음을 주신 거예요. 여건이 어려워서 모실 수 없으면 할 수가 없지만, 모실 수 있으면 연로하신 부모님은 복입니다. 

여러분, 복 없이 사시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에 그 점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 꼭 해결 받으셔야 돼요. 게리스멜리 죤트랜트 목사님이 함께 쓰신 [축복의 선물]이라고 하는 책에 보면 헬렌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아버지가 있었는데, 알콜 중독자고 굉장히 난폭하신 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 헬렌이라는 여인이 성인이 돼서 집을 떠날 때 다시는 아버지를 안 만나리라고 결심을 하고 떠납니다. 

그가 집을 나와서 예수를 믿고 거듭났어요. 그렇지만 이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고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의 문제입니다. 비판적이고 냉정한 자기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가 자꾸 어려워요. 처음에는 자기가 믿음이 작아서 그런 지 알고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격은 고쳐지지가 않아요. 고민하다가 목사님에게 솔직하게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헬렌이라는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헬렌에게 조언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는 한 당신의 성격이 진짜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에요. 마음에 아버지로부터 상처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에게 매여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헬렌이라는 여인이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 성격을 자기가 그대로 닮고 있는 것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버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서 당신이 원하는 성격이 고쳐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요.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문에 걸어 나오는 아버지를 보는데, 어릴 때 생각하던 거인처럼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에요. 이제 너무너무 초라해 보이는 늙은 노인입니다. 거실에 앉았어요. 무거운 침묵이 흐르다가 헬렌이라는 여인이 말을 꺼냅니다. ”아버지, 저 아버지 증오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입을 열어서 용서를 구했어요. 눈물이 죽 흘렀습니다. 

한 번도 잘못했다는 말씀 안하던 그 아버지가 딸에게 말합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아버지였니? 내가 네 마음에 그렇게 상처를 주었었니? ” 그러면서 그 늙은 노인분이 울면서 그분도 용서를 구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현관에서 배웅나온 아버지를 끌어안습니다. 정말 어릴 때 외에는 한 번도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안아주시지도 않았고. 아버지를 끌어안고 “아빠, 사랑해요!”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헬렌이 그때 깨달았다고 그래요. 자기가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고 살았지만, 그러나 자기 한쪽에 아버지에 대한 정과 사랑이 여전히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를 끌어안았을 때 마음으로 느꼈다는 것이에요 자기 속에. 자기는 비록 몸은 아버지를 떠나 살았지만 언제나 아버지와 붙어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는 거예요. 

놀라운 일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해달라고 고백하고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 난 다음에 헬렌이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적으로 보는 마음이 적어지고, 사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뜨이고, 사람이 기본적으로 좋아지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은혜의 문이 열린 거지요. 

여러분, 저는 목회하면서 상당히 많은 성도들이 이유를 모르는 자기 성격의 문제, 성질의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부부 사이의 문제, 또 부모 자녀 사이의 관계가 너무너무 힘들어해요. 그런데 알고 보면 깜짝 놀랍게도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잘못되어진 것이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하나 더 주시려고 부모님에게 순종하라 효도하라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과거의 상처에 묶여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부모님을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하신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나오미는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흉년이 들었다고 하나님 약속의 땅을 금방 포기하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꿈 하나 가지고 모압이라는 땅으로 이사를 간 사람입니다.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하고만 혼인을 맺으라고 하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땅에서 잘 살려면 모압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들 둘을 모압 여자와 결혼하게 했어요. 성경에 읽어보면 어디에도 나오미는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살았던 여자라고 하는 말이 안 나와요. 나오미도 스스로 그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룻기 1장 13절에 “여호와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남편이 죽고 아들 둘이 다 죽었을 때 나오미가 그렇게 고백했어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잘못 살았다는 거지요. 그랬다면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와의 관계가 어땠을까? 하는 것은 넉넉히 짐작이 가는 것이에요. 

룻이 나오미를 바라볼 때 항상 좋은 경험만 있지 않았음이 분명해요. 그런데도 룻은 시어머니의 허물을 탓하지 않았어요. 시어머니가 지금 나이 많고 혼자 되셨다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시어머니를 불쌍히 여기고 그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이지요. 그래서 이 룻 자신도 한이 많은 여자고 불쌍한 여자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거예요. 말할 수 없는 복을 주신 거예요. 

여러분, 영적인 눈이 뜨이고 보면 초라해 보이는 부모님이 사실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놓지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후회할 거리를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입니다. 미국 어느 시골 마을에 가난한 한 과부가 외아들을 길렀습니다. 양계장에서 닭을 치고 삯바느질해가면서 그렇게 아들을 어렵게 공부를 시켰어요. 그 아들이 어머니 고생하는 것을 알고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대통령상을 받게 됐어요. 미국 합중국 대통령상을 받게 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졸업식 날이 됐는데 어머님이 졸업식에 참석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거예요. 아들이 대통령상을 받는 자리인데, 당신이 입고 갈 옷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색이 너무 남루한 내가 가는 것은 오히려 네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졸업식에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는 어머니를 보고 그 아들이 어머니 치마자락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매달려요. 

“내 어머니 아니 계신 졸업식장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바라봐 주지 않은 금메달,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내 목에 걸려진 금메달 어머니 목에 걸어드릴 수 없다면, 지난 3년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들이 울면서 매달리니까 졸업식에 갔어요. 누구나 다 알아볼 정도로 그렇게 남루하고 초라한 여인이 앉아있는데 금메달을 받은 이 학생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그 사람들 속에 앉아있는 어머니 앞에 가서 그 금메달을 어머니 목에 걸어드렸어요. 그 아들이 나중에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이 된 윌슨입니다. 미국 의회에다 재안해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십시다.’ 그래서 어머니날이 생긴 거예요. 여러분, 기억하셔야 돼요. 세상에서 보기에는 남루하고 아무 능력이 없어도 부모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분이에요. 여러분이 그 복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링컨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상원에 가서 연설을 하고 나오는데, 상원의원 중의 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모욕적인 이야기를 해요. “당신 아버지를 잘 아는데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지요? 어떻게 그 천한 사람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아주 모욕적인 언사를 하면서 자기 구두를 벗어들고 “이 구두가 당신 아버지가 만든 구두요!” 그때 아브라함링컨이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게 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참 자랑스런 분입니다. 그분은 구두를 잘 만드셨습니다. 제가 어깨 너머로 배운 바가 있습니다. 혹시 의원님의 구두가 탈이 나면 제게 가져다 주시지요.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대단한 것이지요. 아브라함링컨이 복 있는 사람이었어요. 이유는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것이 효도인 것이지요. 초라해 보여도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효도입니다. 여러분, 효는 단순한 도덕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분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에 대해서 효하는 것도 귀해요. 그러나 영적인 눈이 뜨여보면 연세 많으신 분들이 사실은 똑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주신 분들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복받을 길은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우리가 그 눈이 뜨여야 돼요. 육신의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내게 정말 복을 주시려고 보내신 어른들을 잘 섬기는 마음 가지고 여러분들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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