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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몫)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이상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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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자기(몫)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24-25(찬송 339, 311장)                  

2014. 6. 1, 에스더헌신예배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십자가는 노예를 처참하게 죽이는 형틀입니다. 로마 시민권 자는 절대로 아무리 극악한 죄를 저질렀다 하여도 십자가에 죽이지 않습니다. 이방인이나 노예를 잔인하게 죽이는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로 죄수를 처형하는 법은 죄수를 사형장으로 끌고 와서 먼저 옷을 벗기고, 죄수를 십자가 위에 눕히고, 십자가의 가로지른 나무에 끈으로 손을 묶고, 그 위에 못을 쳐서 박고 아래에는 양발을 포개고 거기에다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눕혔던 십자가를 세워 구덩이에 밀쳐 던져 세웁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인간이 최대의 고통을 당하며 죽게 하는 사형 법입니다. 십자가는 죄수의 생명이 다하는 때까지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죽게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대할 때에 주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고, 또 나 자신의 새로운 각오가 십자가 앞에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께 대한 진실된 사랑의 고백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이 주님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나도 깨닫고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1. 버리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5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주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양 무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내 대신 죽으시었습니다. 영광과 보좌를 다 버리시고, 고난, 고통 속의 세상에 오셔서 자기 생명을 버리시고, 양을 구하신 선하신 목자의 사랑을 베푸시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대신 주님이 죽으셨으니 그 사랑을 깨닫고 보답을 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오직 예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예수만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 앞에 나도 함께 십자가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영광 보좌 버리시고 자기의 육신의 생명을 주시는 고통을 당하신 주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동참하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골고다까지 찾아가는 것이 바로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요, 이러한 십자가의 동참이 있을 때에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데에 짐이 되고 무겁고 힘든 것이 바로 나의 십자가입니다. 나 개인에게는 선교가 십자가요, 교회가 나의 십자가입니다. 각자 교회의 직분을 따라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서 십자가가 다릅니다. 이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주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잘라 버리지 말고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선택하여 주님의 골고다 십자가로 나아가는 사람이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4개의 십자가)


3. 십자가는 대신 죽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십자가는 자기의 목숨을 대신 버리는 사랑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능히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 날수가 있습니다. 말 한 마디만 하여도 12개 사단의 천사가 동원되어 세상을 멸할 수도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어 고통을 당하시며 대신 죽으시었습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소나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었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대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는데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죽을 사람인데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자기의 목숨을 대신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본 받아 내 목숨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버리는 희생의 삶을 살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며 선교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버리었고 믿음을 지키다가 목숨을 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따라서 목숨까지 버리는 희생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안 중근 의사는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나라를 위하여 버렸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여 대동강에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 백성들을 사랑함으로 목숨을 버릴 각오로 그들을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자기 목숨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식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을 흔히 보고 있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자식 목숨과 자기 목숨과 바꾸자는 마음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예화) 평범한 회사원이 고속화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퇴근길의 복잡한 교통 형편과 급히 집에 가서 처리해야 할 회사업무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차에 태워 병원에 갔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녁식사 후 병원에서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고서야 고속화도로에 쓰러져 있던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사고로 쓰러진 사람을 보고 내 아들이 아니기에 지나치고, 내 아들이기에 구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고 포괄적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명과 나의 생명과 바꾸는 일을 서슴없이 하신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입니다.


4. 십자가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본문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희생이라는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몸을 바쳐 돌보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3년 동안 말씀으로 가르치신 후에 마지막에 자신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한 희생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모든 지위와 영광과 물질을 희생하는 자가 될 때에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한국의 슈바이쳐 박사라는 이일선 목사님이 있습니다.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오신 의사요 목사입니다. 슈바이쳐 박사 밑에서 3년 동안 문둥병을 공부하고, 흑인들을 함께 돕다가 귀국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신일교회라는 큰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도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어느 날 선친에게 이일선 목사님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나는 목회에 성공을 하였지만 희생 없는 사랑은 괴롭게 생각이 되어 서울을 떠나서 울릉도에 가서 문둥병자를 치료하며 그곳에서 선교를 하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편지가 왔고 얼마 안 되어 울릉도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일로, 이때는 울릉도가 문화적으로 비참하고 병원도 없는 그러한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오랫동안 울릉도 병원을 운영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다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는 이일선 목사님의 아들이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사랑을 받았으면 나도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가 되지 말고 구원의 감격을 이루고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1. 많은 사람에게 이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여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게 하여야 할 것이요.

2. 남을 사랑하며 이웃을 봉사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십자가를 헛되이 하는 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활 생명의 삶, 새로운 변화된 삶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며 그 십자가 사랑의 감격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감격이 없는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이요 우상입니다.


어떤 교파는 이러한 십자가 우상이 싫어서 교회에 십자가를 두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과 감격을 갖고 예수 십자가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 내 십자가를 지고 희생을 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삶이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손해를 당하고, 희생을 하는 것 같으나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영광의 부활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하늘나라 사다리입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 4개의 십자가 이야기

1) 작고 보잘 것 없는 검은 십자가 - 곧 믿지 않던 나

2) 종탑 위의 십자가 -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3) 종탑 뒤 붉은 십자가 - 나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 십자가

4) 하얀 십자가 - 용서받은 내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


종이 십자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게으름쟁이 실라스에게는 굉장히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주님, 이 십자가는 왜 이렇게 무겁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십자가는 무거울수록 좋으니라. 결국 네가 받을 보상이 더 클 테니까!"

이 말씀을 남기고 주님은 사라지셨습니다.


게으름쟁이 실라스는 투덜거리며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서 그 십자가를 땅에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무거운 십자가를 바라보며 훨씬 가벼운 것을 갖길 원했습니다.

바로 그때 사탄이 나타나 그에게 제안했습니다.

"난 종이로 네 십자가의 모조품을 만들 수 있지. 겉보기에는 똑같아도 무겁지 않아. 진품하고 똑같아 보일테니 네 주인도 구별하질 못할 거야."


게으름쟁이 실라스는 그 제안을 듣고 기뻤습니다. 그는 사탄에게 자기의 무거운 십자가와 똑같은 종이 십자가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굉장히 무거운 듯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주님, 저는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왔습니다. 이젠 제게 주님의 십자가에 값하는 상을 주세요."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잘 했다, 아들아. 네 그 십자가에 상응한 상을 주고말고."


실라스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종이 십자가를 지고 오고도 큰 상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언덕을 향해 걸었습니다. 주님께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대저택을 가리키셨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라스, 언덕 위의 저 황금 저택은 네 것이다. 네 상이야."

그는 그 황금 저택을 보고는 그곳으로 뛰어갔습니다. 그가 막 문을 열려는데 강풍이 불어 왔습니다. 놀랍고 황당하게도 그 황금 저택은 날려가 버렸습니다. 그 집도 종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고 있는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입니까? 주님이 지신 나무십자가인가요, 철십자가, 플라스틱 십자가인가요? 아니면 사탄이 준 종이 십자가입니까?


"우리는 가벼운 십자가만을 찾고 있습니다. 내 욕심대로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또 손해 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 나의 땀과 눈물을 드리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없습니다. 속이 비어 있는 십자가를 지면서 살아 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쉽고 가벼운 십자가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항상 심중에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좀 더 가벼운 십자가였으면,,,"하는 불평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무거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음성이 들여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그렇게 무겁다면 불평만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서 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 져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어찌된 일인지 일어서기 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겉으로 볼 땐 멋지고 화려해 보였는데 막상 져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실망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음성이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습니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져보았습니다.


이 십자가는 황금 십자가처럼 무겁지는 않았는데 지고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 져보니,,,, 그 많은 십자가 중 자기가 지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남이 진 십자가가 훨씬 가벼워 보이고 더 아름다워 보여 내가 진 짐을 불평하게 되지만 모두 벗어 한 자리에 놓고 본다면 자신이 가진 짐이 가장 가볍고 견디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각자에게 지워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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