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 박상훈 목사
  • 297
  • 0

첨부 1


계2:12-17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계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오늘 본문 첫 절인 계2:12 말씀을 읽어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이와 같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은 예수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버가모는 에베소와 서머나와 더불어 소아시아의 삼대 도시라고 일컬어졌습니다.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버가모에는 로마의 총독이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버가모는 소아시아에서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이 버가모에는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또한 버가모에는 20만 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한 대형 도서관도 있었습니다. 모든 책을 일일이 손으로 써야 했던 시대에 버가모의 도서관이 20만 권의 책을 소장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문자적으로 버가모는 양피지를 의미합니다. 옛날 애굽에서는 주로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었지만, 특별히 버가모에서는 양피지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버가모라는 지명에서 영어로 양피지를 뜻하는 parchment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버가모의 수호신은 아스클레피오스였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 하나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과 치료의 신으로 알려졌으며,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뱀의 형상으로 의학을 상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따라서 버가모 교회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 지방의 수호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볼 때마다, 절로 옛 뱀 곧 사탄이 연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도 버가모를 가리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또한 “사탄이 사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영적으로 열악한 곳에 복음이 전하여져서 하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버가모 교회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특징은 세상과 타협한 교회, 곧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고 세속화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였습니다. 의사는 날카로운 칼로 환자의 병든 부위를 잘라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병든 부분을 도려내시기 위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시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우리도 세상과 벗하느라고 예수님에게서 멀어졌다면, 이 시간 회개하고 예수님에게 돌아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예수님으로 가득하게 채우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버가모 교회가 받은 칭찬입니다. 
 
계2:13 (1)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2)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3)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를 세 가지로 칭찬하셨습니다. 첫째 칭찬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말하자면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가 처한 곳의 형편이 영적으로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서머나에는 유대인들로 구성된 “사탄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가모의 형편은 서머나보다도 더 나빴습니다. 버가모에는 “사탄의 권좌” 곧 사탄의 보좌가 있었으며, 아울러 버가모는 “사탄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지옥에 사탄의 권좌가 있고, 지옥을 사탄이 사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지옥은 장차 사탄이 영원히 갇히게 될 장소입니다. 사탄의 권좌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사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악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버가모에는 뱀의 형상을 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성도들은 그 신전을 지나칠 때마다, 옛 뱀인 사탄을 연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영적 환경이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습니다.
 
둘째 칭찬입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현재형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굳게 잡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아무리 심한 박해를 받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변함없이 굳게 잡고 예수님만을 그들의 주로 경배했습니다.
 
셋째 칭찬입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부정 과거입니다.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는 자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단 한 순간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박해의 실례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안디바의 순교였습니다.
 
최초의 라틴 교부로 알려진 터툴리안에 의하면,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사자였습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자들은 안디바를 붙잡아서, 그를 본보기로 처형했습니다. 그들은 안디바를 놋쇠로 만든 황소 모양의 풀무에 가두어 불태워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디바를 가리켜 “내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헬라어로 증인을 “마르투스”라고 합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영어의 순교자를 뜻하는 단어 martyr가 나왔습니다. 당시 안디바처럼 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버가모 교회는 그 교회의 사자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굳게 잡고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시면서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늘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굳게 지킵시다. 그리함으로 우리 모두도 안디바처럼, 예수님에게서 “내 충성된 증인”이라는 칭찬을 받기 바랍니다. 
 
둘째로, 버가모 교회가 받은 책망입니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버가모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이어서 버가모 교회를 두어 가지로, 정확하게는 두 가지로 책망하셨습니다.
 
첫째 책망은 14절에 있는 말씀처럼,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책망은 다음 절인 15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버가모 교회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먼저 발람의 교훈은 구약성경 민수기 22장 이하 25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을 향해 올라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여, 메소보다미아의 유명한 복술가 발람을 초청했습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모압 왕 발락이 요구하는 대로, 세 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발람은 다른 방법을 모압 왕 발락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민25:1∼3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알브올 사건은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걸림돌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모압 여인들과 행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결과 바알브올 사건에 연루된 백성의 수령들은 목매어 달림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염병이 임했습니다. 그 때의 염병으로 인해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에도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방 신전에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우상도 섬겼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있는 창기들과도 음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 나옵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도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을 멀리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빛과 어둠은 사귈 수가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15절에 나오는 니골라 당의 교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니골라 당의 정체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레니우스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골라를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 가운데 한 명으로 보았습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니골라가 뒤에 가서 배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를 추종하는 자들과 함께 이단인 니골라 당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계2:6 말씀처럼, 예수님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셨습니다.
 
어떻든 오늘 본문 15절은 니골라 당의 교훈을 설명하면서, “이와 같이”라는 말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니골라 당의 교훈도 발람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또한 행음하게 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니골라 당은 은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는 무시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그만 무율법주의자가 되어 도덕폐기론에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면서, 죄를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과 벗하면서 불신자들과 다름이 없는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버가모 교회도 잘못된 교훈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악한 자들이 자기들의 그릇된 사상을 펼치는 것을 단호하게 금하지를 못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법입니다. 결국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 의해서 버가모 교회는 병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나셔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발람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우리를 죄악의 길로 유혹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니골라 당처럼, 구원은 믿음으로 받으니까 행위야 어떠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세상과 벗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꼬드기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늘 말씀을 따라 빛 가운데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버가모 교회가 받은 명령입니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용납했습니다. 그러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네가 참으로 사랑이 많구나! 네가 너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는구나!”
 
도리어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분명하게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것은 죄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교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버가모 교회는 전체적으로 회개해야만 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버가모 교회는 이들이 자기들의 그릇된 사상을 펼치는 것도 단호하게 금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버가모 교회가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내가 네게 속히 가서.” 이는 예수님의 심판이 긴급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은 그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으로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을 사정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을 용납하는 자들도 엄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민22:31 말씀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하나님은 칼로 발람의 악한 길을 저지하고자 하셨지만, 발람은 그 길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민31:8 말씀입니다.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가던 길을 돌이키지 않았던 발람은, 회개하지 않았던 발람은 결국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는 칼로 심판을 당한 발람의 최후를 기억하고서, 속히 회개하고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에서 돌이켜야만 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예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시시각각 다가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행여 우리도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칼의 심판을 면하기 바랍니다.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1)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2)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3)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오늘도 성령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들을 귀 있는 자가 되어 성령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아니하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듣고 순종하여 이기는 자가 되면, 예수님이 약속하신 세 가지를 받습니다.
 
첫째 약속은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먹었던 양식으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서 대대로 간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감추었던 만나”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6:51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떡입니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하며 하늘의 신령한 복을 영원토록 누립니다.
 
둘째 약속은 “또 흰 돌을 줄 터인데”입니다. 로마시대에는 경기에 우승한 자들에게 “흰 돌”이 주어졌습니다. 그 돌에는 우승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흰 돌을 받은 사람만이 그 잔치에 참예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신앙의 경주장에서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흰 돌”을 받은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흰 돌”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셋째 약속은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은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주실 것입니다. 천국의 기본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라는 단어입니다.
 
예컨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노래 등입니다. 따라서 흰 돌에 기록한 “새 이름”도 천국의 영광과 관련된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흰 돌에 기록한 새 이름을 받은 사람만이 하늘나라에서 베풀어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할 것입니다.
 
그런데 새 이름은 그것을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 개인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며, 그 처음 사랑을 끝까지 잘 지켜나가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주시는 “감추었던 만나”를 받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이 주시는 “흰 돌”을 받아 천국의 문을 당당히 통과하며, 아울러 예수님이 주시는 “새 이름”을 받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영광스럽게 참예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