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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시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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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시편 85편)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제품은 6개월만 있으면 벌써 신제품이 나옵니다.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내놓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뒤로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안일하게 있거나 전에 이 방법이 통했는데 하면서 옛것만 고집해서는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2010년이 저희 교회로서는 창립 15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금년 1월에 신명기 10장을 중심으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전환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가 앞으로 10년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게 문제점이고 저것을 고쳐야 하고 하면서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3자나 방관자의 입장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보다 건강한 교회, 활기 있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해야겠고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12장 2절에 보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새롭게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NIV를 보면 변화에 해당되는 단어에 transform을 사용합니다. change와 transform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change는 넓은 의미에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transformation은 근본적인 변화, 체질적인 변화 즉, 안과 밖이 전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경험할 때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싶고,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나를 향한, 나의 가정과 교회를 향한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회복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회복되어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원하십니다. 어둠, 탄식, 아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를 끌어올려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더 이상 불평과 탄식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을 듣기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부흥을 갈망하고 회복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보아야 합니다. 돌아오게 하신다.(1) 돌이키신다(3,4) 다시 살리신다(6) 이것들이 부흥, 또는 회복과 관련된 단어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그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그 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원하십니다. 
  
본 시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유다로 돌아온 시인이 황폐해진 유다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과거에 하나님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과 평강으로 응답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도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풍성하신 사랑을 깨달으며 감사와 회개와 믿음의 기도를 드린다면 동일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변화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1)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시인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은혜에 세 가지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 포로 귀환 
주전 605년에서부터 시작하여 세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땅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으므로 그 땅은 거의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에 은혜를 베푸셔서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야곱의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죄악을 사하심 
인생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이 죄악 중에 잉태하여 출생한 죄인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들을 부르셔서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인정해주십니다. 죄사함의 감격이 얼마나 큰지 다윗은 시편 32편 1절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며 노래합니다. 죄를 사하신 사실을 기억하고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진노를 돌이키심 
하나님은 죄악을 싫어하시는 분이요, 죄를 범한 자에게는 진노하시고 징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나라들을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며 성하게도 하시고 쇠하게도 하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뜻에 따라 진행됩니다. 그러나 그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앞에 놓은 문제들을 놓고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시편 85편에 나오는 시인과 같이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 가정, 교회, 직장, 나라를 통하여 은혜 베푸신 것을 따져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를 테면 오늘이 어버이주일 아닙니까? 귀한 부모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아름다운 배우자를 주신 하나님, 아름다운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미래와 현재를 보기 전에 과거를 보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2)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바라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 우리를 향한 노를 그치소서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려면 먼저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며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을 지킴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고 언약에 규정된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은 언약대로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때를 따라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이기에 언약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 됨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언약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도 언약에 규정된 대로 이행할 의무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표적으로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우상 숭배 죄입니다. 오늘날은 무엇이 우상입니까? 뿔 달린 조각물만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과 뜻이 먼저 갈 때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우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장해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낳은 아들, 얼마나 귀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들을 보는 재미에 푸욱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어느 날에 그에게 오셔서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하박국 3장에 나오는 무화과, 포도, 감람열매, 밭의 식물, 양과 소는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복을 주신 하나님보다 주신 복에 더 관심을 두었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칫하면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인은 진노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호소합니다. 긍휼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compassion 즉,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그들의 아름을 자신의 아픔으로 그들의 외로움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셨고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중단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 

하나님은 구원이시고 소망이시고 능력이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의 유일한 이유로 삼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복을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어 당신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베푸시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시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화평을 주시겠다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화평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다시 망령된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과 함께 주십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범하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바울이 선포합니다. 내가 재판자가 되어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나누는 분열의 죄를 멈추어야 합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만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이 모든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우리의 결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단만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온전한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복이 일어납니다. 부흥이 일어납니다.

3)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감사하고 회개하며 우리의 필요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이 땅에 채워주심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때로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마음속에 평화가 임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 구원이 가까움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그분의 구원이 가까이 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평안히 거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실하게 행하였더니 감옥에서도 구원을 경험했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기근에 시달리던 가족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갔으나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차례씩 감사의 기도를 드렸더니 사자 굴에 던져져서도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악을 멀리함으로써 순종하는 자들이 받는 구원에 참예하게 됩니다. 

- 좋은 것을 주심 

화평의 말씀에 담긴 내용은 인자와 진리와 의와 화평에 근거한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약속의 땅에 다시 풍성한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하나님의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춘다고 하면서 언약 백성에게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와 의로운 통치를 아름답고도 생생하게 의인화합니다. 또 땅에서 식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고,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처럼 하나님의 의가 하늘에서 쏟아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땅이 풍성한 곡식을 낼 것입니다.  

- 주의 앞에서 행함 

우리의 갈 길이 어디입니까?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의’를 의인화해 의가 사자처럼 하나님 앞서 행하며 그분의 길을 닦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길이 주님이 이끄시는 길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과 궁핍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아름답게 회복시켜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변화를 받아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는 철저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 된 신분에서 해방되었음을 기억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과거를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오늘날도 계속됩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히 4:16)를 바라보며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주님의 인자하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구원을 얻고 화평을 얻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으로 칭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영광을 보이십니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것들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이 세대를 본받을 때, 따라갈 때, 물들 때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워져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본받지 않는 소극적 자세로만은 부족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세상적인 요소/습관/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고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의하여 변화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우리로 인하여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입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몇 안 되는 성군이지만 그의 말년은 별로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가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이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 부분만 보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하나님의 뜻은 그때 히스기야가 죽는 것입니다. 그 후의 히스기야의 치적은 전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의 몸에서 므낫세라는 폭군이 나와 무려 55년이나 유다를 치리하며 각종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함으로써 유다의 멸망을 재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를 비워야 합니다.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로 채움 받으려는 거룩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날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새로워져야 합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벧엘로 올라가기로 결단합니다. 식구들과 더불어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불필요한 것들은 상수리나무 아래 묻어버리고 의복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 시작 30분 적어도 15분전에는 나와서 예배드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주일에 삶을 돌아보며 감사와 회개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을 준비를 합니다. 경배팀이나 찬양대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를 인도하는 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설교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오늘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부흥이 나타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현재 가진 죄를 고백하고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와 회개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지금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언제 이루어집니까? “들여다보고 있으면 국은 끓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한 타이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적합한 때에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2010년이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큰 부흥이, 회복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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