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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벧에돔과 같은 사람 (삼하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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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벧에돔과 같은 사람 (삼하 6:1-11)
 

지난주에 행복한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선출하는 1차 투표를 했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오늘 예배 후에 2차 투표를 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성숙한 모습으로 질서를 지켜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라는 직분은 행복한 교회 성도님들을 대표하여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법궤 안에는 세 가지의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해 주셨습니다. 그 만나를 넣은 항아리가 법궤 안에 있었습니다. 또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직접 세워 주신다는 간섭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성물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이끌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움에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약 70년이 지나는 동안에 어느 누구 하나 법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이 법궤를 찾아와 성전에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법궤를 찾아와 성전에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왕권과 이스라엘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신하들과 법궤를 옮겨오는 일에 대해 협의 했습니다. 그는 법궤를 모셔오는 일을 거국적인 행사로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 3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는 전국에서 최고의 악사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을 모아 찬양대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데리고 약 40년 동안 법궤가 머물러 있는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윗 왕이 참석한 가운데 법궤를 성막으로 옮기는 대대적인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고,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며 축제의 행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의 현장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수레를 몰고 가던 소들이 이상하게 거칠게 뛰므로 수레 위에 있던 법궤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를 몰고 가던 웃사가 손을 펴서 흔들리는 법궤를 붙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웃사를 현장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모든 악기 연주는 중단되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던 왕과 백성들도 그만 할 말을 잃고 황망한 일 앞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멈춰 섰습니다. 축제 중에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무슨 징조인지 몰라 서로 수근 거릴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일이 발생한 것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법궤를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원래 법궤는 민수기 4장 15절에 보면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고 법궤를 운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수레에 싣고 법궤를 운반했으니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6장 9절에서 "다윗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일단 두려운 나머지 고핫 자손인 오벧에돔의 집으로 서둘러서 법궤를 옮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대조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웃사와 오벧에돔입니다. 한 사람은 법궤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한 사람은 법궤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웃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며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소들이 뛰어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려고 하니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붙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웃사는 당연히 칭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웃사를 치셨고, 웃사는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요 칭찬을 들어야 할 행동인데,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러면 웃사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민4:15절에 보면 하나님은 법궤를 이동시킬 때 반드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기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좋은 수레를 만들어 소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보기에 더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며,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에 사람의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는데 웃사는 법궤에 손을 댔습니다. 

법궤를 성전으로 모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궤를 모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는 것은 모양새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들이 법궤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법궤에 대한 존중성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법궤를 옮길 때 그들이 택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그들의 집에 40년 동안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다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오히려 과정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잠시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웃사입니다. 

다음은 오벧에돔입니다.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오벧에돔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다윗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과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 성막으로 모시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오벧에돔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위기 속에서 다윗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시게 했을까요? 그냥 대충 결정했을까요? 9절에 보면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법궤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하들에게 물어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벧에돔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냐는 것은 역대상 15장 18절에 보면 그는 성전 문지기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쳐지나가는 듯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성전 문지기였습니다. 성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였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과 성전의 창고를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성전 문지기 직책일지 모르지만 그는 그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의 믿음과 성실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이 되었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법궤를 옮기다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법궤를 그의 집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웃사가 법궤를 옮기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 법궤를 여러분의 집으로 모시고 가자고 하면 허락하겠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그 법궤를 자신의 집으로 모십니다. 그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비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맡은 직책은 성전 문지기일지 모르지만 그의 믿음의 크기는 제사장도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비결입니다. 

아비나답은 자신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를 40년 동안 모시고 있어도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있는 3개월 동안에 복을 받았습니다. 11절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을 선출합니다. 섬김의 자리가 요란스럽지 않고 주어진 직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일꾼들이 선출되기 원합니다. 오벧에돔처럼 자신의 자리를 충성스럽게 지켜 교회 공동체의 화목과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꾼들이 선출되기 원합니다. 행복한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믿음이 오벧에돔과 같은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복을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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