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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영원한 부부 윤리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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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부부 윤리 (엡 5:22-33)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어떤 훌륭한 화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한 폭의 그림 속에 담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다가, 옆구리에 성경 찬송을 끼고 교회 문을 나서는 목사님을 만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목사님은 “믿음이지요. 슬픔은 뒤를 돌아보고 걱정은 주위를 둘러보게 하지만, 믿음은 위를 바라보게 하지요. 믿음이야말로 모든 절망을 이기게 하는 힘이며, 죽음까지도 정복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가는 혹시 이 믿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을까 해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이번에는 씩씩한 군인 장교를 만났고, 똑같은 질문을 하자 군인 장교는 서슴없이 “평화가 최고지요. 평화는 전쟁을 멈추게 하고 참된 안식과 기쁨을 가져다주니까요. 평화야말로 우리 모두의 참 소망이지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가는 그래도 더 찾아보겠다고 갓 결혼식을 마치고 예식장에서 나오는 신혼부부를 만나게 되어 그들에게 물었더니 “사랑이지요. 사랑은 가난도 부요하게 하며, 눈물도 달콤하게 만들고, 적은 것도 많게 만들지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가는 더 아름다운 것이 없을까 해서 계속 여기저기를 찾아 다녔지만, 별다른 해답을 얻지 못하고 오랜만에 자기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들과, 아내의 어진 미소, 그리고 생기와 기쁨에 넘쳐 있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풍기는 아늑한 분위기 자체가, 목사님이 말하는 믿음과, 군인 장교가 말하는 평화와, 신혼부부가 말하는 사랑이 한데 어우러져 있음을 느끼고, 바로 이러한 것들을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이 작품의 제목을 ‘가정’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한 문명에 대한 최종 평가는, 그 문명이 어떤 유형의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들어 냈느냐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런 면에서 올바른 가정의 회복이야말로,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자녀가 아니고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보다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부모보다 자녀보다도 부부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 부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가정의 중심축입니다. 부부처럼 아름다운 제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여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심으로 결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 1:27-28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부들이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부부들이 행복한 부부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영원한 부부 윤리가 있습니다.

1. 부부는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31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아내와 합하여”라는 말은 바로 결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 육체가 될지니”라는 말은 정신적, 육체적, 신앙적으로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즉 부부는 모든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인을 통해 남녀가 완전해지게 됩니다. 반쪽인 남녀가 완전해 집니다. 결혼을 통해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고,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고,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부는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 부부입니다.

벧전 3:7에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동거’한다는 것은 한 집에서 같이 거주하며 한 육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 육체로 동거한다는 말은 첫째,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로애락 즉 생사고락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모든 기쁜 일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쪽의 아픔이 둘의 아픔이 되어야 하고, 한쪽의 기쁨이 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한 육체로 동거한다는 말은 시간을 함께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서로 함께 보낸다는 것입니다. 고전 7:5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부부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는 항상 동거해야 합니다.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비한 연합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부도 항상 함께 동거해야 합니다. 부부는 한 육체로 동거할 때 정신적, 육체적, 신앙적으로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꼭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꼭 부부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듯 아내들을 향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의 권위에 따르고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되 주님께 하듯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이 시대는 가정의 위기 시대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위기가 닥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남편이 권위를 상실한 데에 있습니다. 남편의 권위가 상실된 이 시대상을 풍자한 유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안과 병원에 50대, 60대, 70대, 80대 남성이 치료받으러 왔습니다. 모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50대 남성은 아내에게 “밤늦게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 60대 남성은 “아침에 밥 달라고 말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 70대 남성은 “할망구가 아침에 화장을 예쁘게 하고 있어서 물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 80대 남성은 “나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아직도 왜 맞았는지 모르겠구먼, 그냥 아침에 눈 뜨니까 바로 주먹이 날아오던데...”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동창회에 다녀온 충청도 할머니가 계속 심통이 난 표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왜 그려”
할머니-“별일 아니유”
할아버지-“별일 아니긴 ..... 뭔일 있구먼”
할머니-“아니라니께유”
할아버지-“당신만 밍크코트가 읍서?”
할머니-“........”
할아버지-“당신만 다이아반지가 읍서?”
할머니-“........”
할아버지-“그럼 뭐여?”
할머니-“에휴, 나만 남편이 살아 있슈.”

이러한 유머 가운데 뼈가 있습니다. 이 시대 남편들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녀의 인권은 평등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점에서, 남녀평등 사상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성경의 교훈은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아내들을 향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가정의 행복과 축복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대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한, 그는 하나님께도 복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사소한 일로 남편인 엘버트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엘버트는 흥분하여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에게 사과할 겸 방문을 노크했습니다. “누구요?” “영국 여왕이요!” 그러나 남편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반 명령조로 “문 열어요”라고 했지만 엘버트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당신의 아내예요. 열어주세요.” 남편은 그제야 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남편들이 얼마나 방황하고 고민하는지 모릅니다. 어느 때보다 아내들의 따스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내의 순종이 절실한 때입니다. 직장에서 온갖 갈등을 겪게 되는 남편들이, 집에 들어가면 아내들의 바가지 때문에 차라리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부 남편들의 모습입니다. 

음악가 바하는 35세 때 첫 부인을 잃고, 두 번째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순종의 부인이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요” 라고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내에게 바하는 늘 악보를 기록하는 것을 부탁했습니다. 부인에게는 그 일이 매우 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13명의 자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도 힘들고 악보를 기록하는 일도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순종했습니다. 바하의 칸타타 300곡 중 190곡이 부인의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 된 성도 여러분! 순종은 부부의 윤리적 도덕적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신앙적 측면에서도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내 된 성도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대로 순종의 삶을 통하여 남편들의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25절에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일 한 가지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얼마큼 사랑해야 하는가?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할 때의 사랑은 물론 ‘아가페’를 의미합니다. 곧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즉 남편은 아내에게 희생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셨던 것처럼 죽기까지 희생적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아내들은 지금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남편들의 무관심속에서, 무시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폭언도 서슴지 않고, 인격적 모독도 당합니다. 심지어는 폭행도 당하고 사는 아내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생각하면 87%가 스트레스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참으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지금 아내들은 남편들의 이기심에 포로 되어, 우울증 환자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10-25%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는 맛을 상실해 생명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동반 자살하는 가족 참사까지 잇따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우울증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 10년 된 부부를 대상으로 한 앙케트 조사 내용입니다. 그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요구한 것보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요구한 것이 2배나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이 조용하고, 말 잘 듣고, 항상 웃고, 온순하고, 겸손하고, 순결하고, 인내하고, 친절하고, 손님대접 잘 하고, 집안 청소 깨끗이 하고, 싹싹하고, 소박하고, 검소하고, 무슨 일이든지 아니요 하지 않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춘 아내는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 된 성도 여러분! 남편의 가장 큰 본분은 그 아내를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고 사랑하시듯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부인 교회를 위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치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도를 사랑하신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 사랑하기를 힘쓰는 남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헨리 스미드는 말하기를 “남편은 아내를 그의 가슴에 두어야 한다. 남편의 가슴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가슴에 있는 갈비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미국 콜롬비아 바이블 컬러지에 로버트슨 맥퀼퀸이라는 학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몇 해 전에 아내 무리엘이 치매에 걸리자, 그 동안 맡아온 학장직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아내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 무리엘은 지난 8년 동안 건강이 점점 약해져왔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무리엘이 내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는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그녀를 잠시라도 떠나 있으면 몹시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할 때는 불안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잃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고, 나를 찾아 집밖으로 나올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나는 학장직을 사임하고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내가 42년 전 결혼 서약을 하면서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무리엘을 돌볼 것을 서약했을 때, 이미 약속한 것이기에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동안은 아내가 나를 40년이 넘도록 돌보아 왔지만,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무리엘을 돌보는 것이다. 물론 의무감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고백입니까? 성경은 아내 사랑의 표준을 그리스도에게 두고 있습니다.“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러므로 남편 된 성도 여러분들은, 아내들이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산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다시 한 번 우리들의 가정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단호하게 ‘불행하다’고 답한 사람이 40%이고, ‘글쎄,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미온적으로 답한 사람이 43%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83%의 사람들이 가정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은 세계 전쟁이고, 부부 평화는 세계 평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가 되고, 또 국가 민족의 문제로 발전해 간다는 말입니다. 부부 관계는 모든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요 기본입니다. 여기서 잘 되면 모든 것이 잘 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란 공동체에서 부부간의 의견 다툼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부부간의 의견 다툼이 있을 때 어떤 이는 다음 다섯 가지를 명심하라고 합니다.

일-일어난 일만 가지고 다투라! 일어난 일을 넘어서 성격이 어떻고, 나한테 무 얼 해주고, 과거 잘못했던 점 등으로 확대하지 말 것.

이-이기려 하지 마라! 이번엔 버릇을 고쳐주겠다. 본때를 보여주겠다. 자존심을 찾겠다. 절대로 꺾임을 당하지 않겠다. 보잘 것 없는 자존심 버리고, 상대의 의견을 듣는 기회로 생각하라. 부부싸움은 지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

삼-삼가야할 말은 끝까지 삼가라! 욕설. 막가파 들이 쓰는 말.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 신체적인 결핍. 원색적이고 극단적인 용어, 양가의 결점을 지적 하 는 말 등은 절대 사용해선 안 되고,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사-사과를 먼저 하라! 사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순간의 아이디어를 발휘 하 여 재치 있는 언어를 쓰자. 상대의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생각할 때 그 순간을 포착하여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고 말 하는 자가 진정 승리 자다.

오-오래 싸우지 마라! 한두 시간으로 족하다. 조금 말다툼한 것이 2-3일, 아니 일주간 서로 등지고 각방 쓰고, 심지어 뛰쳐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도 있다. 오래 끌수록 건강만 해친다. 집을 나가면 무슨 염치로 다시 집에 돌아 올까? 이것은 가장 바보스런 행동이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지켜야할 수칙-싸움을 하더라도 각방을 쓰지 말고 잘 때도 등 돌리지 마라!

오늘 이 시대가 얼마나 격변하는 시대인지 모릅니다. 과학과 물질문명만이 아닙니다. 사상도 윤리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남존여비란 말은 “남자란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존재다” “남자의 존재는 여자에게 비용을 대어주기 위함이다.” “남자가 무사히 살아가려면 여자 앞에서 비실비실 해야 한다.”는 유머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이 변하더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 윤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1)부부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고 2)아내 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는 것이고 3)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시고, 믿음의 반석도 든든한 여러분의 집, 즐거운 동산, 예수만 섬기는 복된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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