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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언에 나타난 자녀교육 원리 (잠 2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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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에 나타난 자녀교육 원리 (잠 23:17-18)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다른 어느 나라의 부모님들보다 자녀들의 공부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보면 마치 ‘공부하라.’는 말이 모든 말의 후렴처럼 느껴집니다.
‘그만 놀고 공부해라.’, ‘간식 먹고 공부해라.’, ‘일어나서 공부해라.’, ‘TV 끄고 공부해라.’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라’.......
이 ‘공부하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말입니다. 
그리고 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얘기를 자녀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마음껏 놀고 싶어 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듣기 싫은 잔소리인 줄 다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말이 자녀들을 짜증나게 만든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공부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1) 우리 민족이 이 땅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넓은 땅 덩어리와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습니다. 
미국여행을 하다보면 그 넓은 땅덩어리가 너무 부럽습니다. 
이집트만하더라도 시나이반도를 지날 때 성지 순례객들이 이곳저곳을 바라보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아이고, 저 땅 좀 봐!”입니다.
얼마나 땅에 한이 맺혀있는지.......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머리가 좋은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자산이라면 사람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을 잘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2) 말씀드리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된 노릇인지 학력이 없으면 사람구실을 하기 어렵도록 되어있습니다. 
공부를 해야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은 분명히 우리 기성세대들의 잘못입니다. 
공부를 해야만 사람 대접받는 이런 풍조를 만든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대접을 받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도 대접을 받고, 탄광에서 석탄을 캐도 대접을 받고, 청소부로서 거리를 쓸어도 대접을 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회를 지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남자를 예로 들어보지요! 
어느 정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결혼도 하기 힘듭니다. 
직장에서 학력파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 기업에서 하는 얘기일 뿐입니다. 
아직도 학력란이 버젓이 있고 그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교회로부터 파문당하면 사람구실을 못하듯이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구실을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사람구실을 못하는 자식을 보면서 어떻게 부모가 마음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안 입고, 안 먹고, 파출부를 해서라도, 은행에 빚을 지더라도, 자식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 사람 구실을 하려면 공부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3)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서 더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 도끼가 있어요! 
날이 문드러진 도끼가 있고, 날이 선 도끼가 있습니다. 
일군은 날이 선 도끼를 잡고 일을 하지요. 
날이 선 도끼가 쓰임을 받습니다. 
지식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언어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수학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예술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컴퓨터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모든 영역에서가 아니라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날을 세워야 이 사회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IMF때 보셨지요?
고만고만한 사람들은 다 퇴출당했습니다.
그러나 한 분야에 날을 세웠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월급을 올려주면서 붙잡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직장에서, 사회에서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한들 굶어죽기야 하겠어요? 
그러나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 꼭 있어야만 하는 귀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의 머리에 지식만 넣어주면 다 되는 것입니까? 
자식을 대학에만 들여보내면 자녀교육을 성공한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1) 지식은 있지만 자기중심적인 생활이 몸에 배여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소위 ‘왕자병, 공주병’에 걸려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낙오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호호 불면서 키우면 안 됩니다. 
둥글둥글 키워야 합니다. 
여기 부딪혀서 깎이고 저기 부딪혀서 깎이고 그래서 둥글둥글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생활을 잘 합니다.

2) 지식은 있지만 인성교육이 안 되어 정직하지 못하다면 차라리 지식이 없는 게 낫습니다. 

못 배운 사람이 속이면 고작 한두 사람 정도가 피해를 보겠지요? 
그러나 많이 배운 사람이 속이면 온 나라가 거덜이 날 수 있습니다.

3) 지식은 있지만 정서함양이 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늘 조바심합니다. 부정적입니다. 파괴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혼생활도 평탄치 못하게 됩니다. 
지난주 신문에 보니까 주부의 40%가 맞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뭔가 수치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40%라면 거의 반이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자녀를 가르칠 것인가? 
저는 지난 주간 잠언의 말씀을 읽으면서 잠언의 교육원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잠언은 지혜서가 아닙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어떤 남편, 아내가 되어야 하는지, 잠언을 차분히 읽어보면 많은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를 가르칠 것인가?

1.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라!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5: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잠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23:17-18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우리가 부모가 되어 다른 것은 못해도 자녀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어떤 부모님들은 자식을 자유롭게 키운다는 입장을 가지고, 신앙문제도 ‘크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방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난센스입니다. 
여러분! 꽃밭을 만들어 꽃씨 뿌려놓고 가만히 놔두면 꽃밭 됩디까 아니면 풀밭 됩디까? 
풀밭되고 말지요!
꽃밭은 가꾸어야 꽃밭 됩니다. 
가만 놔두면 꽃은 간 데가 없고, 잡초만 무성한 풀밭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어릴 때부터 심혈을 기울어 가꿔줘야지 거기서 화사한 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방임하면 자녀들의 영혼은 풀밭되고 맙니다.

창35장에 보면 세겜땅에 살고 있는 야곱이 자식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에 들어가 칼부림을 해서 모든 남자를 죽였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성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쳤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여인들에게 못할 짓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야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십니까?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벧엘로 올라가자. 
벧엘!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까? 
야곱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자녀교육의 실패의 요인으로 알았고, 하나님을 찾아 경외하는 것이 자녀교육을 바로 시키는 지름길임을 알았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가르쳐라!

잠 3:1-2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해야 합니까? 
그 안에 구원의 도리가 있고, 사는 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 3:15-17절을 보십시오. 
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여러분, 죄책감에 고민할 때, 죽음이 두려워질 때, 죽음 이후의 문제가 공포로 몰려올 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 진정으로 부탁합니다. 
그때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게 될 때 성경을 읽으십시오!

출2:1-10절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얘기가 나옵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여인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 하수에 던져버려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지만 이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한 두 사람 눈치 채기 시작하였고, 아이의 울음소리도 우렁찼습니다. 

그래서 요게벳은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으로 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칠한 다음 거기다가 아이를 담아 하수가에 두었습니다. 
3절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하수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던져진 세상도 죽음의 장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성문란, 본드흡입, 마약, 비디오방, 폭력, 등 곳곳에 사탄의 유혹의 손길이 뻗혀 있습니다. 그런 세상물결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역청과 나무진을 바른 갈 상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어릴 때에는 손 붙잡고 다닐 수 있지만 다 큰 아이 어떻게 따라 다니겠어요? 
죽음의 하수로부터 우리 자녀를 보호할 갈 상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채찍으로 훈계하라!

잠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잠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원하리라”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왜 채찍질을 해야 하는가?

① 인간에게는 뼛속 깊이 파고드는 아픔이 아니고는 떨쳐버리기 어려운 미련함, 어리석음, 더러움, 게으름, 이기심, 악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진리 아닙니까?

② 선악을 분별하는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회초리를 통하여 의로움을 배우고, 어머니의 치마폭에 쌓여 사랑을 배웁니다. 
옛날 서양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 
한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아무리 못된 사형수라고 하더라도 역시 마지막 찾는 사람은 어머니로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형수가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었습니다. 

사형수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내가 오늘 이렇게 사형수로 죽는 것은 어머니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쁜 장난감이 있으면 몰래 집어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 뒤 나는 남의 것이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어오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을 죽이면서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빼앗게 되었습니다.” 
회초리를 통하여 악을 단호히 다스리지 않으면 어린 자식은 그것이 악인 줄 모릅니다.

잠언의 교육원리는? 

① 하나님을 경외하라 
②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 
③ 채찍으로 훈계하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잠언의 가르침을 따라 자식농사 잘 짓는 부모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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