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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충만하면 (행 5: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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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하면 (행 5:26-32)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명령이자 신약 교회에 주신 지상 사명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고 하신 것입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런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 는 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 비현실적인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이 명령을 받았던 당시의 제자들은 배우지 못했고 세상적인 권세나 조직이나 재물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현실적이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악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사탄의 세력이 창궐한 곳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사탄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여전히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복음을 전하되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라고 하신 것은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명령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은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이처럼 엄숙하게, 그것도 유언처럼 말씀하셨을까요? 주님의 지상 명령을 가능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이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강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배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일할 동안에는 모든 것을 성령님께 의탁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말하게 하셔서 말하셨고, 성령님이 전도하게 하셔서 전도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병든자를 고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성령님께 의탁하셨습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이렇듯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페이지마다 성령의 능력의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가로되’ 등의 표현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영적 기상도는 어떠합니까? 유머 작가인 루코크라는 사람은 현대판 성령강림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풍자해서 썼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는 광고가 났다. 적어도 120여명은 모였어야 할 예배에 출석한 사람은 겨우 40여명이었다. 베드로는 최근 가족과 함께 구입한 갈릴리 호수의 별장으로 주말여행을 떠났고, 바돌로매는 집에 손님이 와있기 때문에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 빌립의 가족은 지난 밤 늦도록 계속된 파티의 후유증으로 자고 있고, 안드레는 새 차를 구입하려고 모터쇼장에 갔다. 마태는 근무처인 세무서에 시간외 근무를 나갔고, 요한은 사업상 골프를 치러 떠났다. 도마는 취직시험이 주일과 겹쳤으니 당연히 나올 수 없었다. 불길 같은 성령도 다락방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되돌아갔다.”

우리는 감동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성령님과 함께 하는 동행의 약속은 한쪽으로 덮어두거나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주님과의 첫 만남의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뜨거웠던 감동과 충만했던 믿음의 모습을 회복하여 영원히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잡혀와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오늘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어떤 성도가 될까요?

1. 사람이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음 (= 담대해 짐)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와 사도들은 당시의 집권 세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성령 충만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사도들이 직면했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시기하여 감옥에 가두었고(18절),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 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했습니다(28절).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19-21절)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몸을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은 감옥에 가둔 사도들을 심문할 공회를 소집하고 이들을 연행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사도들은 성전에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 일찍부터 담대한 모습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협박과 사도들의 대답을 비교해봅시다.

28절=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도 성도가 성령 충만해지면 담대해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 많던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게 되자 얼마나 담대해졌는지 사도행전을 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열흘 동안 계속하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던 제자들에게 마침내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은 제일 먼저 120명의 입을 열어놓았습니다. 꼭 다물고 있던 사람들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날 정도로 소리를 지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을 옆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입을 열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을 선포하는 것은 사탄을 향한 선전 포고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전투하는 종교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고 있고, 교회는 이에 맞서 저항해야 합니다. 

이름난 통계학자 데이빗 바렛(David Barrett)에 의하면 20세기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거나 믿음을 지키다가 장렬히 순교의 제물이 되어간 분들이 1년 평균 15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즉 하루에 약 400명이 지구 도처에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북한의 참혹한 핍박까지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사탄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핍박의 손을 늦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탄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능히 사탄의 세력을 짓밟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복음 전하기 전에 사람을 보면 겁이 납니까? 전도하려 하면 부끄럽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충만하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담대하게 전도하게 해 주세요.”
술 취해서 길거리에서 갈 지(之)자 걸음을 걸으며 비틀거리는 것은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려고 수고하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성도는 결코 세상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베드로 사도처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사도들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험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2. 표적과 기사가 나타남 (= 초자연적 은사)

성령 충만한 사도들에게는 예수님이 행하셨던 표적과 가사가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의 사역에 나타난 초자연적 은사는 초대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장에 기록된 성령 충만한 사도의 표적과 기사를 보십시오.

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여기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과 유사한 경우는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것이나(마 9:20-22) 사도 바울의 손수건을 통해 병 나음 받은 경우(행 19:11,1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의 경우 그 사람과 관련된 사소한 것을 통하여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주님은 이런 소박한 믿음을 실제로 가능케 함으로써 그들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할 여건을 조성하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에게 몰려온 ‘병든 사람들’ 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 이 모두 나음을 얻었습니다. 사도들의 치유 능력은 육체적 질병의 영역 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질병의 영역까지에도 강력하게 나타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약속처럼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통해 놀라우리만큼 위대한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과연 그 약속대로 사도들은 몇만 명의 결신자를 얻었고, 그림자만 스쳐도 병자들이 나음을 입게 되는 역사를 행했습니다. 

사도들만이겠습니까? 우리도 사도들처럼 성령 충만하고, 사도들처럼 믿음과 충성심을 갖추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요 14:21). 현대 교회가 초대교회에 비해 주님의 풍성한 권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권능이나 성령의 능력이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 아니라 성도들의 충성과 믿음이 예전의 성도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주님의 표적과 기사는 초대 교회 때나 있었던 한시적인 일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주님께 진실하게 행하고 믿음과 충성으로 섬기는 성도들은 주님의 큰 권능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교회는 주님의 표적과 기사를 흔히 보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풍성한 생명의 권능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당시 변변한 종합병원 하나 없던 때에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모두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종합 의료기관과도 같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의 질병만 치유해 준 것이 아니라 육체의 질병도 함께 치유해 주었습니다. 

예일대 역사학 교수 램지 맥뮬랜(Ramsay MacMullan)박사는 로마 제국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이 잡다한 신들의 나라에서 어떻게 300년도 못되어 천민들이 전하는 나사렛 예수의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그의 저서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데 탁월했다는 점입니다. 전도자들이 귀신들린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하면 귀신이 떠나가서 새사람이 되고, 예수를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신전에 가서 그리스도인이 한마디 하자 그 신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위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님보다 열등한 잡신과의 대결에서 예수의 이름이 이기는 표적이 계속 나타나자, 나중에는 로마제국을 흔들어 놓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선교지에 가면 무지한 토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 성령 충만한 선교사를 통해서 표적과 기사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하면 초자연적 은사가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더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려면 더욱 성령 충만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3. 복음을 강력히 전파함 (= 놀라운 전도의 열매)

28절=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

성령 충만한 사도들에 의해 온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이처럼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 본절은 사도들을 가두었던 대제사장이 사도들을 추궁하는 말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사도들의 전도의 성과를 인정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여기 ‘가득하게 하니(플레로오)’ 는 완료형으로서, 앞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복음의 원수들은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활약 때문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복음을 강력히 전파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에는 놀라운 전도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영적으로 매우 강퍅한 예루살렘에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인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로 인해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 가족들이 집단 회심을 경험했고(행 16:15),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온 집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16:33).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개인적으로, 가족적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대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해서 한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왔다면 이는 성령님이 일을 시작하신 것이고, 이윽고 그의 가족이 다 예수 믿고 돌아와 교회에 나올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만 아직껏 저를 통하여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성경 구절도 다 암송했고. 반대 의견을 다루는 법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을 영접까지 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목사님의 대답은 그녀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신이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당신의 두 눈이 말라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당신은 지식이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삶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시편 26편 6절에는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가지고 나가 뿌리는 자는 단을 가지고 기쁨으로 돌아오리라.’” 

그녀는 집에 돌아가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때 믿지 않는 여동생의 모습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일어나 동생에게로 갔습니다. 눈물어린 눈으로 동생을 끌어안으며 사랑으로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의 소망은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거야.” 

두 자매는 함께 그날 저녁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주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을 하자 그들은 나란히 앞으로 걸어나왔습니다. 여동생은 언니가 보여준 참된 사랑에 의해 주님께로 나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C. S. 루이스의 말처럼 ‘회개하라’ 는 말은 그 사람을 향해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인데, 누가 감히 사람들에게 ‘너의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죽으라’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령 충만하면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됩시다. 성령 충만해서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됩시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가서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우리를 통해서도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우리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대부흥이 일어나도록 합시다. 
이것은 주님의 소원입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을 공공연히 거역하면서 예수 잘 믿는 것처럼,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성령 충만 합시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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