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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칠년을 하루같이 (창 29: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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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년을 하루같이 (창 29:21-30)

야곱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 밧단 아람에 살고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삼촌의 딸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봉사했으나 야곱은 삼촌에게 속아 다시 칠년을 봉사하게 됩니다. 

야곱은 기도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환난을 통해 집을 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도 여전히 자기 꾀로 살려하였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하여, 그 여인 집의 종으로 7년을 하루같이 일하고 결혼하여 아침에 보니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아니라 그의 언니 레아였습니다. 속은 결혼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속이는 자는 속습니다.

야곱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라반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삯을 열번이나 속였습니다. 팔뚝과 목에 염소털을 입고 아버지룰 속였습니다. 후에 야곱의 아들들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옷을 찢고 짐승에 찢겨 죽었다고 속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속았을 때에 얼마나 가슴을 쳤겠습니까? “내 아들이 나를 속였구나!” 남을 속인 자는 자기도 속습니다. 자기가 치러야 할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투우가 인기를 끌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스페인입니다. 지금의 스페인에 투우사는 남성밖에 없지만 1908년까지만 해도 여성 투우사가 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1908년에 스페인 정부에서는 여성 투우사의 활동을 금지시켰는데 그 이유는 위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여성 투우사는 부도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1908년 전까지 스페인 여성 투우사 중에는 인기가 높은 여성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 중 1900년에 등장한 여성 투우사 라레베르테는 인기가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1908년 여성 투우사의 출전 금지 발표가 있은 어느 날 투우장에 나왔던 라레베르테는 경기를 마친 뒤 긴 생머리였던 가발을 벗고 가슴을 부풀게 했던 솜덩이도 꺼내어 보였습니다. 여성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녀는 남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등장 이후 7년간을 감쪽같이 여성 투우사로서 관중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들의 분노는 컸습니다. 관중들은 자신들이 7년 동안이나 라레베르테에게 속은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성 투우사로 경기에 다시 출전하려고 했을 때 관중들은 몰려가 "이 사기꾼아 물러가라."하며 경기장 밖으로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는 어느 경기장에서도 출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임수가 가져다 준 대가였습니다.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속이지만, 그러나 결코 목적이 수단을 정당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속인다는 것은 사단의 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거짓을 버리고 참과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2. 심판 날에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아침이 옵니다. 사람의 눈은 잠시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반드시 선악간에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갈 6:10)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신실함으로 우리의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속고 속이는 관계를 다 알고 보시고 계십니다. 마지막 날 심판 때에, 사람들이 산아 나를 숨기라, 바위야 나를 가리라고 절규하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아침에 보니 레아더라” 모든 것을 사실대로 폭로하십니다. 


3. 칠년을 하루 같이

자기만족에 7년이라는 세월도 무색합니다. 드디어 혼인날이 되었습니다. 신부는 얼굴을 가린 채 들어옵니다. 야곱은 삼촌과 약속한대로 예쁜 라헬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새고 옆에 같이 잔 여인의 얼굴을 보고 그는 화를 내었습니다. 

자기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삼촌은 변명하기를, 우리 동네에서는 동생을 언니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니를 버리지 않고 정식 아내라는 징표로서 7일 동안 같이 있어주면 약속대로 동생도 건네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먼저 혼인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뒤늦게 라헬과 혼인하고 다시 7년간 삼촌에게 봉사합니다.

지난번에 읽은 본문 20절에는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니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며칠 같이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칠년이 하루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면서 양을 치니 밤에 오는 추위와 낮에 오는 더위와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는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제나 라헬을 생각하면서 라헬을 보면서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노예와 같은 종의 생활, 머슴의 생활을 그는 훌륭하게 마치고 수많은 양떼와 소떼를 이끌고 12형제를 거느리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야곱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세상을 살아가는 야곱같이 어려움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신약이나 구약이나 주님에게로 안내하는 책이고 주님에게 우리를 안도하고 주님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우리는 야곱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야곱의 심령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야곱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항상 사랑하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으면 우리도 광야도 밤에 추위도 낮에 더위도 이 험하고 힘든 일도 누가 우리를 속이고 이용하고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바울이 말 한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다 이겨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계시록 2장에 에베소교회는 칭찬을 받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형제가 사랑하면 화목합니다. 교우들이 서로 사랑하면 행복한 교회입니다. 사랑하면 힘든 일이 없고 형통합니다. 야곱이 다시 시작한 것은 라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환경을 극복합니다. 사랑은 시간도 뛰어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 그 주님을 섬기는 시간은 결코 지루하거나 지겨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할 때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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