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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 128:1-6) - 하나님 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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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 128:1-6)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발걸음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말씀을 전하시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들에서, 때로는 호숫가에서, 때로는 회당에서, 때로는 개인집에서 하시면서 장소의 구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잔치를 가지는데 Guajome Regional Park는 처음 방문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귀한 하루를 보내기 원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복. '복'하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여 앨러지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물질의 복과 지나치게 연결시키려는 기복신앙도 문제지만 너무 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며 이 땅에서 받고 누리는 복을 경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히브리말인 shalom도 마음의 평강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매듭진 것이 없이 평화로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 합니까?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은 사람, 육신이 강건하거나 성공한 자녀들을 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성도들이 복되다고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그럽니까? 신앙생활을 잘하면 모든 일이 문제없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지만 그 과정에 때로 고난도 어려움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극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복된 삶이 보장됩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놀라운 진리를 그들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하였으며 오늘도 수많은 성도들이 이 위대한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시 128편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입니다. 시인은 어떤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절)

복이 있는 자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경외: fear, 두려워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를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가 소돔과 고모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할 때 함께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 날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사고를 일으키게 하실까봐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낮추어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기분 나빠 보복이나 하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경외란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외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낌으로 오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세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살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면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되는 삶이요 그런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 전체에 경외라는 단어가 170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단어가 언제 제일 먼저 등장합니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climax가 되는 때입니다. 이삭을 낳기까지 처음 25년은 이민자로서 낯선 땅에서 살았고, 더구나 사라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커다란 위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점차로 깊어져 가던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유를 말씀하시지도 않고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아브라함이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이삭에게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몰랐으나 분명한 것은 이삭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기분 좋을 때에, 주변 상황이 순조로울 때, 감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게 될지라도 여전히 주님을 붙잡고 주님과 더불어 나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표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그 도에 행한다'는 말은 '그분의 길들에 걷는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정도를 따라 걸어가는 자들,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 합니다. 설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말씀을 삶에 적용합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때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만 보지 말기 바랍니다. 그 뒤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위기의 상황이 우리의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말씀 속에 담긴 약속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은 이 모든 위기를 이기게 하십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기 원하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경외와 순종은 동전의 앞뒤면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복이 있다.(시 112:1)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7,9).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복이 임합니까?  

1) 개인이 복을 받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2절)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백성이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하여 자기가 할 바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강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직접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삶에 충실한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경험보다 주의 말씀을 더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복입니다. 정직하고 근면한 근로정신이 믿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복이 약속됩니까?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직역하면 네 손의 수고를 네가 정녕 먹는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수고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름대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수고한 만큼 거두지 못하니 문제입니다. 거두었어도 옆으로 새는 데가 많을 때 문제입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수고하는 자의 헛수고와 대조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수고한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사사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심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쳐들어와 그 땅에 진을 치고 가사 지방까지 모든 농작물을 해치며 양과 소와 나귀를 모조리 약탈해 갔다고 합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열매가 없든지 다른 사람이 그 수확물을 빼앗아 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누가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처음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은 주로 밤에 고기를 잡는데 예수님께서 날이 훤히 밝은 시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결과는 뻔합니다. 만약 지금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아침 내내 깨끗이 씻어 놓은 그물을 나중에 또 씻어야 하므로 이중으로 허탕을 치게 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배를 깊은 데로 몰고 가서 그물을 내리는데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고기를 많이 잡아도 그물이 찢어져 잡은 고기가 달아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수고한 대가가 반드시 채워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복되고 형통하게 인도하십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소원이 이루어져야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안한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28:8-9) 

하나님의 응답은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라는 표현에서 '기도한 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대로 복을 주십니다. 현재의 부지를 팔고 교회당 건물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의 분량까지 쌓아야 합니다. 교회당에 대한 응답이 올 때까지 모든 교우들은 개인적인 기도제목과 더불어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

인간에게 있어 가정은 삶의 기초이며 원천입니다. 본래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었습니다(창 1:31-32).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가정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그런데 산업구조의 변화와 핵가족화를 통하여 극단의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전통적 가정 개념이 도전받아 가족이 흔들리거나 붕괴되는 증상들이 사회 도처에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질 때 사회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 속에서 기독교 가정마저 현실적 삶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다가 신앙마저 좌초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든든해야 하듯이 좋은 가정을 세우려면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그 기초가 무엇일까요?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은 그 기초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출발점은 그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고 그분을 삶의 중심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임합니다. 

든든한 기초위에 기둥을 세우듯이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건강한 가정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이 세워져야 합니다.

첫 번째 기둥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사랑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인내입니다. 인내하는 사랑을 보이려면 내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내 주장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기준으로만 상대방을 평가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두 번째 기둥은 신뢰입니다. 신뢰는 가정을 버티는 네 기중 중에 가장 무너지기 쉽습니다. 신뢰는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잠깐입니다. 신뢰는 쉽게 손상되지만 일단 무너지면 다시 세우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가정 안에서 신뢰를 세우려면 성실함, 신실함, 정직한 성품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고 거짓에 빠지지 말며 불의한 행동을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세 번째 기둥은 존경입니다. 존경은 4개의 기둥 중에 가장 무시되기 쉽습니다. 존경은 가족의 다른 일원을 인정하고 각자를 특별하고 중요하게 대해주는 것입니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들의 감정을 사려 깊게 배려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존경은 가족 안에서의 위치, 나이, 성별, 책임을 넘어서 존재합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은 하나님의 의해 창조된 피조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이는 성경이 남편들에게 자신들의 아내를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네 번째 기둥은 이해입니다. 마귀는 교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도 공격합니다. 부부 싸움이 지속되고, 형제들이 불화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이럴 때 문제의 영적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 불화의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갈등을 일으키는 욕망’(약 4:1)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있을 때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이 식구들 간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해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권면합니다(약 1:19).

건강한 가정의 식구들은 가정에 헌신적입니다. 가정생활에 우선순위를 두고 식구들의 행복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자신들만의 유익이나 필요가 아닌 가족 전체의 유익과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족들은 함께 즐길 줄 압니다. 정기적으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휴식하며, 기도하고 예배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무엇보다 많은 대화를 통하여 문제나 고민을 해결해 나갑니다.

본문에도 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가정에 임하는 복이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아내.’ '내실'은 집안에서 타인이 접근할 수 없는 가장 깊은 곳을 말합니다. 오직 남편만이 접근 가능한 지역입니다. 그 아내는 아내로서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아내는 쓸데없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말을 퍼뜨리거나 일을 만드는 여자가 아닙니다. 

잠언 31장에는 현숙한 아내가 남편의 큰 복이라고 합니다. 누가 현숙한 아내를 얻겠느냐? 그녀는 진주보다 더 소중하다. 그런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현숙한 아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아름다운 지혜와 믿음이 있으니 가족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위로를 베풉니다. 특히 돕는 배필로 하나님이 주신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열매에 달려 있습니다. 잘 익은 포도송이들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습니다. 그것으로 포도주를 담그면 그 향기와 맛이 좋습니다. 또한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합니다

감람유의 용도가 출애굽기 27:20에 나오는데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하면서 단순히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기름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람유는 특별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막 안을 밝히는 등불의 연료로 사용됩니다. 어린 감람나무이므로 앞으로 얼마든지 계속하여 기름을 짜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가정의 자녀들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네 상에 둘린” 열심히 일하고 온 아빠와 가정을 지키는 아내와 아름답게 잘 자라는 아이들이 같은 식탁에서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서로 바쁘다 보니 온 가족이 같은 시간에 한 상에서 먹기가 쉽지 않은 때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화목한 가정, 기쁨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세워주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지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은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화목과 용서가 있는 가정은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죄 용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회개하여 구원의 놀라운 은총을 맛본 성도는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가정과 이웃에게 섬김과 사랑의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3) 공동체가 복을 받습니다.  

시인은 절기를 맞아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성전에 오르는 순례자들을 축복합니다. 여호와가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 시온은 다윗성이 있는 곳이요,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에 모든 복은 성전을 통하여 전달된다고 간주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참된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시온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영적 구심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의 가정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큰 복이 임하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자식의 자식까지 그 복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이삭의 복이 야곱에게 야곱의 복이 요셉에게 내려가듯 합니다. 로이스/유니게/디모데에게 믿음이 전수되는 것같이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남겨집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는 바, 성도들의 주요 관심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그분의 뜻이 전파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유익을 앞세우기보다 주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주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항상 기다려야 합니다. 각 사람의 신앙은 본인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그 복이 나의 가정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임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같이 있기만 해도 기뻐집니다. 열매가 흘러넘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복이 나누어집니다. 교회에서 이런 가정이 여럿 있다면 그 교회는 복 받은 교회요 그로 인하여 모든 교인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복에 동참하게 됩니다.  

신앙과 경건은 하나님의 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이 산다는 것이 아니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에게는 할 일이 있을 것이고 건강할 것이며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요, 일용할 양식으로 인하여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시너지 효과가 있어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또한 가정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아내는 집 담장에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아서 계속 열매를 낼 것이요 그 열매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곧게 뻗은 푸르고 어린 감람나무 같아서 계속 기름을 낼 것이요 그들을 인하여 가문이 계속 빛나고 주님의 영광을 계속 드러낼 것입니다. 또한 화목한 가정이 되어 부모들은 자녀들과 한 상에 함께 둘러앉아서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복을 사모하고 또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교회 속한 가정들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가정,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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