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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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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이것이 1983년 당시 동독의 작센주 북서쪽에 위치한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 모인 청년들이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드린 기도의 주제였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져 고통하는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몇 년 뒤 독일 통일의 불씨가 됐던 바로 그 기도 모임이었다. 시작은 이처럼 미약했다. 그러나 6년 뒤 그들이 기도한 대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바흐의 도시로 유명한 이 작은 도시의 니콜라이 교회 제단 위에는 ‘평화의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교회의 기둥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장식도 있다.


1982년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면서 동독 내부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점점 거세졌다. 이에 독일 청년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평화의 제단 위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면 저녁 6시부터 1 시간 동안 교회 주변을 조용히 걷는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기도모임이 알려지면서 라이프치히에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89년 가을, 경찰은 모여드는 시위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도시 곳곳을 봉쇄했다. 특히 ‘평화의 기도’ 시간에는 시민들의 통행이 금지될 정도였다. 동독 정부는 기도회를 중지시키기 위해 니콜라이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통일을 위하 기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특별히 5.8 부정선거 이후 평화 시위의 움직임은 거세졌다. 경찰은 매주 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교회 안 2,000석 의자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시위대는 촛불을 들고 교회 주변을 둘러쌌고, 교회 창문에는 꽃을 꽂았다. 시민들의 기도물결을 타고 통일과 자유를 외치던 이들의 구호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의 평화적인 기도와 시위는 드레스덴, 할레, 동베를린 등으로 퍼졌다.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교회 안내문에는 당시 ‘평화 혁명’을 요약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촛불을 들려면 두 손이 필요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을 쥔 손으로는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 수 없었다”고 했다. 통일 후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여전히 평화 기도회가 열린다. 주제는 실업문제와 빈곤퇴치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다. 몇몇이 작은 숫자로 시작한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모임이었다. 핍박과 고통이 있었지만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행한 기도모임이었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한 기도모임이었다. 그리고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전국적으로 모여든 기도모임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목적을 가진 기도모임이었다. 이 기도모임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독에 평화와 자유를 갖게 하였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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