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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도는 예언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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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1919년 3월1일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물리적으로 볼 때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실제로 일제의 통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많은 애국지사가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만세 운동이 씨앗이 되어 지속적인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3·1 정신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다. 작은 일이지만 미래 일을 보여주는 예언적 활동이 된 것이다. 작지만 미래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작은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 4:10) 

100여년 전에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는 이렇게 기도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자신들과 우리 영혼이 하나임을,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기도를 심었다. 이후 100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 역사에 남을 가장 극적인 부흥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도는 작지만 그 영향은 크다. 기도가 미래를 바꾼 것이다. 기도는 예언적 활동이다. 15년 전 삼일교회에는 청년들이 10여명 있었다. 당시에 청년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교회가 500명 남짓이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다. "뜨겁게 예배하고, 헌신하는 청년 5000명을 보내 주옵소서." 그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있은 후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5000명보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고 있다. 당시에 왜 5만명이라고 기도하지 않았나 후회스럽다. 기도는 미래를 바꾸는 예언적 활동이다. 젊은이들은 밤문화에 매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도했다. 수천명의 청년들이 새벽을 깨우는 새벽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 이후 10년, 수천명의 청년들이 새벽을 깨우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다. 기도는 미래를 바꾸는 예언적 활동이다. 미래를 염려한다고 하면서 침묵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기도해야 미래가 바뀐다. 

기도가 묶여 있어서 교회가 약화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생각과 행동과 결과를 억제하고 있다.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선을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특히 기도에 있어서 한계선을 넘지 않는다. 행동을 제한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도도 제한받고 있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기도도 못하나? 직접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도하라는 말이다. 왜 겁먹고 위축되어서 작은 기도만 하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먼저 기도를 해방시키라. 마음껏 성령의 자유 속에 기도해 보라. 믿음을 사용하라. 기도의 능력을 사용하라. 큰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에 묶여 있으면 안된다. 자기 생각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큰 것을 들어야 한다. 말씀이 자기한계를 깨게 만든다. 기도가 해방될 때 미래도 해방될 것이다. 분주하게 뛰기만 하면서 열매 없는 허망한 인생을 떠나라. 기도가 커지면 인생이 커진다. 기도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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