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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령이 상한 자, 애통하는 자, 애통하는 자가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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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418절을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고, 그리고 각 곳으로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이적도 많이 행하시고, 그 후에 101절에서부터 제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도 4제자를 불렀고, 많은 교훈과 이적을 행하신 후에 313절에서 12제자의 선택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51절부터 11절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보이고 12제자의 파송은 91절에서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12제자 중 4제자만 처음부터 부르셨고, 그 외에 8제자는 전도 중에 부르셨던지, 또는 교훈을 받다보니 교훈이 좋아서 제자가 되었던지 좌우지간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무리들 틈에서 제자가 나온 것인데 이 때는 처음에 부른 4제자만 나아 왔는지, 아니면 12사람이 나와서(4제자까지 포함) 12제자가 된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런데 여기서 확실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의사단일성과 비 단일성을 모르면 무리들 틈에 그대로 있게 되지 주님의 제자로 나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시고 무리들은 아래에, 또는 평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평지에서 산에 오르신 주님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함이냐? 신앙의 차원을 말함입니다. 제자될 자는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소원 목적 그대로 가지고 눌러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으로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무리들의 신앙 사상이 무엇이었습니까? 땅의 것, 세상의 소원 목적성이었습니다.

 

무리들의 복관은

육신의 목숨이 오래 오래 사는 것.

세상에서 부귀와 명예와 영광을 얻어 누리며 사는 것.

자식들이 사업성공하고 출세하고 노후에 병 없이 유람하며 누리며 사는 것.

종교적 사명을 가지고 큰 업적을 이루어 놓고 가는 것.

뭐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의사단일성과 전혀 상관이 없이 자기 주관대로 예수 믿고 따르는 것으로 이런 신앙은 예수가 자기의 이용물로 되어 있는 이것을 모르는 신앙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알아주는 부흥강사라, 능력 있는 지도자라, 훌륭한 주의 종이라 하여도 무리들이 구하는 신앙정신 사상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그 교역자는 하나의 무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보기에는 주의 종이라고 알아줄지라도 그 신앙의 차원은 저질적인 차원인 무리에 불과하니 주님의 종이 가질 신앙사상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은 무리들이 갖는 사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진리차원으로 찾아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화 되는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자는 진리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바꾸어서 말하면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천국을 차지하려면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천국은 진리능력의 세계요, 천국은 하나님 사랑의 세계요, 천국은 진리 진실의 세계요, 천국은 진리 거룩의 세계요, 천국은 하나님 의사단일의 세계요, 천국은 진리통치의 세계요, 천국은 누림의 세계인데 천국복음, 진리이치, 신령한 이치를 듣다보니 진리이치 면에, 신령한 영적 면에, 하나님의 신적인 지혜 지식성과 하나님의 도덕성과 능력성적인 면에 너무나도 부족성과 갈급성을 느끼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구걸을 하게 되는데, 일반 세상사람들은 물질에 가난을 느끼고 물질을 구걸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 진리이치의 깨달음에 갈급한 자는 진리이치와 구원도리를 구하게 됩니다. 현재적으로 진리를 구하는 자는 심령천국이 임해진 것이고, 미래의 실력적 능력적 누릴 천국은 따놓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가 어느 면에 가난을 느끼고 애타게 구걸하느냐, 아니면 구걸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느냐? 진리이치에 대한 구걸이 없다면 자기는 죄의 부요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죄의 부요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처럼 완전자일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 가난을 참 가난으로 보느냐? 주님은 어느 구걸자를 도와주느냐? 현재 자기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어느 가난한 자가 불쌍하게 보이느냐?

 

주님의 복관을 모르면 제자가 되기 어렵고, 무리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주님을 따라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면 자기의 부족과 가난을 느끼게 됩니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 인간에게는 애통성이 많고, 뿐만 아니라 위로와 사랑을 받고자 하는 성질이 들어 있습니다.

 

애통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애통이 나온다. 인생에 대해 허무감이 느껴지며 애통.

내가 잘못하여 재산의 피해, 사람에게 피해가 났을 때 애통이 나온다. 양심적으로 죄의식에서 애통이 나옵니다.

사람에게 재산에 큰 손해를 당했을 때 애통이 나옵니다. 몰라서 사기를 당하고 사업에 피해가 났으면 보복심에 대한 애통이 나옵니다.

죄로 인해 형벌을 받거나 큰 고통을 당할 때 애통이 나오는데 이 때는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하며 괴로운 애통을 합니다.

 

세상 애통성을 요약을 해 보면

남 원망조로 나오는 애통이 있습니다. 아무리 두고 두고 생각을 해도 이용을 당해 억울해서 나오는 애통이고.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서 두고 두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애통.

자기가 자기에게 대하여 애통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하여 자기 스스로 큰 피해를 본 경우입니다.

이런 것은 다 일반적으로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위로를 받는다고 했으니 복이 있는 애통을 해야겠고, 따라서 애통 후에 위로가 있는 애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없는 애통이라면 그게 무슨 바른 애통이겠습니까? 분명히 육적 육신 세상에 대하여 애통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인들은 영적 신앙에 대한 것, 신령세계에 대한 애통이라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 나를 지으셨는데 인간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았던가?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몰랐고, 인간을 인간만큼 몰랐고, 세상을 세상만큼 몰랐고, 모르느니 만큼 관계성을 지어 산 것만큼 전부는 죄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적인 관계성을 모르니, 대신관계 자아관계 대인관계 대사관계 대물관계 등등 관계성을 모르니 내가 나에게 죄를 짓고, 내가 다른 사람을 죄 짓게 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못 받고, 내가 들어서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못 받게 하고, 내가 내 이룰 구원을 모르니 내가 들어서 남의 구원을 망쳐 놓고 방해하고, 하나님의 온전을 닮으라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주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사건과 대립을 일으키고, 남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죄가 뭔지 죄에 대해서 모르고 전부는 비뚤어지고 굽어지고 거짓되고, 영원한 궁극적 구원, 누릴 구원, 실력구원, 존귀 영광 면에 영원히 손해를 본 그것을 안다면 어찌 애통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돈 한 푼 손해 보면 그렇게 가슴이 쓰리고 잠을 못 자는데 영원한 가치에 대한 손해를 보았다면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할 일입니다.

 

이것을 피부로 느끼듯이 못 느낀다면 어떻게 애통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없으면 애통이 뭔지 몰라서 애통을 못합니다. 진리이치를 깨닫는 자가 애통이 나오지! 무리들 틈에 끼어 있으면 애통을 모르는 것입니다. 애통을 해 보았느냐?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영원 궁극적 구원에 해당하는 애통이라야 위로를 받겠는데 그러면 위로가 무엇이냐? 위로는 주 하나님의 것으로 풀어준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구원인지, 무엇이 사망인지, 무엇이 영광인지, 무엇이 참 삶인지, 세상이 뭔지, 인간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뭔지를 영적 진리이치로써 열어주어 깨닫게 하여 기쁨을 갖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를 준다는 말은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한 자들이 불쌍해서 등 두들겨(-토닥거려) 주고 업어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의 성품입니다. 주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지혜 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질이 사납지 않고 유순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교역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 고분하는 것이 온유가 아닙니다. 진리를 모르고, 깨닫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맹종이니 그런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이용당하고 저주와 심판을 받기 쉽습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는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즉,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하는데 한 마디로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입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지혜 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을 입어야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온유 속에는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이 민감하고 민첩하고 민활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영능의 진리실력이고 능력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척하니 알아듣고 즉시 순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온유가 안 되면 순종이 안 됩니다. 순종이 안 되면 자기 주관성이 들어 있으니 교만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반대자들이 볼 때는 고집이 센 사람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유한 자는 영적인 신앙실력이 있어서 진리와 사랑을 가지고 정복성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만들어지고 믿으니 영능의 실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약속의 그 땅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모형계시입니다. 택한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해 온유한 자로 만들어지지 못하더니 축복으로 얻은 땅에서 쫓겨나고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명령의 뜻을 모르더니 그만 하나님이 계시는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온유를 모르면 교만이 나오고, 교만이 나오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정복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정복하느니 만큼 자기 것입니다. 천국은 점령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만들어진 온유의 영능의 실력으로 사람을 점령하는 자는 점령하는 그 만큼 자기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열 고을 다스리라, 스므 고을 다스리라!

 

교회의 인도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의 온유자로 만들어지도록 인도를 하고, 그 영능의 신앙 실력으로 점령하여 자기 땅의 기업이 얻어지도록 해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인도자부터입니다.

 

온유한 자로 만들어지는 교훈이 아니면 결국 세상 인본주의 판이고, 모두 교만쟁이들이요 멸망자들이지 천국점령된 자기 기업은 없습니다. 곧 주님의 성품으로 정복되지 않은 것은 자기 천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리로 정복되지 않은 것은 자기 교인이 아니고 자기 성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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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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