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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화(聖化)의 길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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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7장 1절~8절

설교제목 : ‘성화(聖化)의 길’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더불어 말을 나누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내가 여기에다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에는 주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말을 채 끝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서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마태 17:1~8)】

 

  <우상화 전략 / 성경해석의 열쇠>

  영웅적 인물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인류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오늘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에 대한 황당하기까지 한 증언은 예수에 대한 우상화 전략의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록자가 의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를 따르던 이들이 갖고 있었던 무의식적 집단심리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이 예수에 대한 우상화 전략의 일환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괜한 변명이나 옹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바로 그 순백의 지점에서 성서에 대한 진솔한 해석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의 열쇠는 예수와 함께 했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의식 혹은 무의식’입니다. 즉 예수의 벗들이 의식했건 의식하지 않았건 그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었던 ‘영성적 사유 덩어리’, 그게 오늘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 셋>

  첫째로 예수의 벗들은 공통적으로 신비로운 성화(聖化)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래요. 성화 혹은 신화(神化)는 모든 종교의 핵심적 메시지입니다. 예수의 벗들은 바로 그것, ‘성화 혹은 신화’로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는 어떠한가요? 우리 개신교는 ‘성화 혹은 신화’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는 종교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화 혹은 신화’에의 길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이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성화 혹은 신화’가 인류를 우상화 놀음으로 옭아매는 잘못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성화 혹은 신화’는 종교의 진수이며 핵심입니다. 이를 버린다는 것은 껍데기가 더럽다고 알맹이까지 없애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의 벗들은 높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한 것을 보았습니다. 즉 예수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영맥(靈脈)이 예수에게로 흐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현상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맥이 있습니다. 진리의 도도한 흐름이 있습니다. 땅 밑으로 흐르는 진리의 거대한 흐름, 저 하늘 위로 흐르는 거룩한 영(靈)의 행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맥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진리의 수행자는 진리의 영맥 위에 서 있습니다. 저 거대한 진리의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야할 일이고, 신중해야할 일이고, 사명감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서양의 문명은 인류를 파편화시켜버렸습니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 문명은 인류를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로 옭아매 버렸습니다. 서양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류는 현상 세계 뒤의 거대한 흐름, 그 진리의 영맥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예수의 벗들이 품고 있었던 영성, 즉 예수의 영성은 그런 차원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이후의 서양 기독교 문명이 이를 왜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의 벗들이 높은 산 위에서 마지막으로 본 환상은 ‘홀로 남은 예수’이었습니다.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없어지고, 하늘의 음성도 흩어진 후 예수는 현상세계에 홀로 남았습니다. 하늘을 대표해서 이 땅으로 내려와 홀로 남은 한 인간, 저 거대한 땅 전체가 하늘을 향해 밀어올린 한 인간의 홀로 섬, 그게 예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홀로 섬의 인간, 그게 모든 진리 수행자들이 가야할 길이었습니다.


  과거 한 때, 기독교 영성을 이야기하는 분들과 연대하는 모임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좋은 뜻을 품고 있고,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현장에서 홀로 서 있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맥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각자의 사명지에서 홀로 서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명지에서 끝끝내 홀로 남을 수 있는 사람, 그가 예수이며 예수의 벗인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예수의 벗들이 높은 산에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성화(聖化)의 길이었습니다. 진리의 영맥 위에 끝끝내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한 사람 - 예수. 그가 거룩한 변화에로의 길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성화(聖化)의 길’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화의 길’이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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