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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세를 거부하신 예수님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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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8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7장 24절~27절

설교제목 : <성전세를 거부하신 예수님>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바칩니다" 하였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베드로가 "남들한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돈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마태 17:24~27)】

 

  <성경 이야기>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성전세가 있었습니다. 즉 성전에 들어오는 자들은 반드시 일정부분의 통행세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와 베드로 사이에 작은 담소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세금을 거둘 때에 그의 직계 가족들에게는 거두지 않잖아요.”<예수>. “그렇죠. 세상의 제왕들이 세금을 거둘 때에, 그 일가친척에게는 세금을 거두지 않습니다.”<베드로>. “그렇다면, 하느님의 성전에 우리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이 들어왔는데, 우리가 세금을 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예수>. “………………”<베드로>. “그러나 어쩌겠어요. 오해의 소지도 있고 하니, 또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마련해서 내도록 하지요”<예수>. “예, 백방으로 노력해 보겠습니다.”<베드로>.】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짧은 대화 속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 대화 속에서 드러난 예수의 ‘남다른 생각’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미리 이야기하는 결론>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인물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는 ‘본질적인 사유’(思惟)를 하면서 산 인간이었습니다. 피상적 생각이나 현상적 사고(思考)가 아니었습니다. 본질적 사유, 근본을 휘젓는 생각, 일체의 허위와 껍데기가 없는 사상의 사람, 그가 바로 예수였습니다.


  오늘 ‘성전세’만해도 그렇습니다. 성전을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세금이 필요합니다. 사제들의 월급도 줘야하고, 망가지는 건물들을 고쳐야 하고, 성전 안에서 열리는 이러저러한 행사들을 치르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성전세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당연한 세금(?)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맥락에서 보았을 때,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세금은 ‘장벽’이며 ‘억압’이며, ‘사슬’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에 들어오는 자 중에 ‘세금’을 낼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들이 하느님의 성전, 즉 아버지의 집에 돈이 없어서 못 들어 온다면 이게 온당한 것일까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성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답변한다면, 이렇게 응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을 운영하지 않으면 되겠네요?”

 

  <예수의 메시지>

  예수의 메시지는 ‘자유’에 있습니다. 예수는 모든 ‘장벽, 억압, 사슬’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의 메시지가 단순히 돈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낙원에서 자유롭게 살아야할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돈 때문에, 이념 때문에, 사상 때문에, 신분의 차이 때문에 옭아매어지고 가두어지고 옥죄어 지는 그 모든 ‘악의 음모들’을 깨트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들>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몇 해전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고향 근처 시골 냇가로 물놀이를 갔었는데, 그곳에 젊은 청년들이 길을 막고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여기가 우리 고향인데, 누가 누구한테 돈을 받는 겁니까? 내가 이 동네 사람인데, 당신들 어디서 와서 누구한테 돈을 받는 거냐고요?” 그 순간 젊은 청년이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못했고, 저희는 그 기회를 틈타서 그냥 물가로 갔습니다. 그 청년들은 멀쩡한 시골길에 ‘장벽’을 쳐놓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냇가는 우리들이 어려서부터 아무런 대가나 요금 없이 마음껏 뛰어놀던 ‘하느님의 정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래서 옛날 정서를 마음에 품고 있던 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은 국립공원입장료가 없어진 상황이라 돈을 내고 산에 오르는 일이 없어졌지만, 어쩌다 한 번씩 특이한 경우에 있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느 산의 경우, 그 산이 불교사찰의 소유라면서 입장료를 요구하곤 합니다. 글쎄요. 이런 입장료의 경우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가 자랑하는 사상의 핵심은 ‘무소유 정신’이 아니었나요? 무지렁이 민초들이 석가세존을 만나려고 입산했는데, 불가의 사찰이 입장료라는 장벽을 세워놓는 일은, 아주 중대한 본질적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로 남북한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의 허리를 잘라놓고 있는 휴전선 ………. 우리는 이 휴전선을 보면서 커다란 부끄러움, 안타까움, 분노, 슬픔, 아픔을 느껴야만 합니다. 이 장벽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가진 자만이 북쪽의 장벽너머에 진입할 수 있고,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가진 자만이 남쪽의 장벽 너머로 들어올 수 있다는 이 터무니 없는 세상이치, 혹은 중국과 러시아를 지지하는 자만이 북녘 땅에 머물 수 있고, 일본이나 미국을 선호하는 자만이 남녘 땅에 머물 수 있다는 이 얼토당토한 세상 ………. 남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기러기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습니다. 그 ‘자유의 새’는 지지하는 국가가 없습니다. 아니 그 자유의 새는 모두를 지지하고, 모두를 포용하고, 모두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새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잘못된 현실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땅을 팔라고 요구하는 서양의 정치인들에게 응답했습니다. “우리는 땅을 팔라는 당신들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 땅은 우리 영혼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어머니를 팔 수 있나요?”

  이 땅과 저 하늘, 산과 바다와 바람, 저 우주의 ‘태양과 달과 별들’, 아름다운 성전과 멋진 건축물, 저 기차와 비행기와 배, 컴퓨터와 책, 언어와 글, 저 아름다운 눈빛과 웃음,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 모든 것들은 모든 인류가 공유(公有)해야 할 모두의 자산이지, 어느 특정 개인들과 계층, 인종, 민족, 국민들이 사유(私有)해야할 개인적 자산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는 바로 그런 공유의 메시지를 일깨워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성전세를 거부하신 예수님>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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