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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명품 옷에 피뿌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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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제사장이 입는 옷을 에봇이라고 한다. 이 옷은 최고 의류 디자이너가 만들고, 온갖 보석을 달아놓은 명품 옷이다. 에봇을 연구한 사람에 의하면, 에봇 한 벌은 지금 가치로 적게 잡으면 2000만원, 많이 잡으면 2억원에 해당되는 아주 좋은 옷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귀한 에봇에 피를 뿌리라고 말씀하신다.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출29:21) 

물론 속죄로서의 피를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인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에봇은 비싼 옷이다. 제사장들은 매일 때묻을 걱정, 더러워질 걱정하느라 사역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표백제도 없었다. 드라이 크리닝도 없었다. 핏자국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에봇을 입는 제사장은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옷에 피를 뿌린다. 기왕에 버린 옷이기에 부담감이 다 사라졌을 것이다. 피뿌린 옷은 제사장의 행동에 자유로움을 주었을 것이다. 

물건 중에 제일 불편한 것이 새 것이다. 새 옷은 불편하다. 너무 잘 다려진 것도 불편하다. 좀 구겨지고, 좀 망가지고, 좀 더러워져야 편안함을 느낀다. 삼일교회가 편안한 이유가 있다. 더럽기 때문이다. 건물도 오래되었다. 기자재도 고급스럽지 않다. 거기서 오는 여유, 자유로움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 굳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라고 해도 잘 못한다. 자유로움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진은 스냅으로 찍어야 한다. 후배 목회자들이 설교에 관해서 묻는다. 자유로움이 있는 설교가 가장 좋은 설교라고 설명한다. 준비가 철저하면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책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 자유로운 이야기같은 설교가 좋다. 

관원들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설교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이다. 읽은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들은 것을 잘 전하는 사람이 좋은 설교가이다. 

교역자 수련회로 필리핀에 간다. 교역자들에게 미리 주문한다. 여행 중에 보고 들은 것을 돌아와서 제일 잘 전하는 사람이 최고의 수련을 한 사람이라고.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면 자연스럽다.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면, 사람들은 졸지 않는다. 

'홀란드 오퍼스'라는 영화가 있다. 홀랜드 선생님이 나중에 시장이 되는 여자 학생에게 클라리넷을 가르친다. 이 여자 아이는 열심히 클라리넷을 연습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틀린다. 자신감을 다 잃어버린다. 왜 그런가? 연주를 수학공식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여자 아이는 실력은 있다. 그런데 그 실력이 매어 있다. 자유가 없다. 선율에 생명이 없다. 

홀랜드 선생님이 말한다. "눈을 감고, 네가 가장 기쁠 때, 아름다울 때를 꿈꾸어라. 눈을 감고 마음으로 연주하라. 들판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주해 봐라." 그때부터 연주가 되기 시작한다. 자유로움을 찾기 시작하니까, 실력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자유로움이 생명이다. 머리만으로는 안된다. 자유로운 가슴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지금 즉시 머리에서 가슴으로 30㎝ 내려오라"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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