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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의 육하원칙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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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40) 찬양의 육하원칙 (시편 150편 1-6절)


< 찬양의 육하원칙 >

 세상에서 가장 힘이 되는 아름다운 말들로는 하나님, 어머니, 믿음, 소망, 사랑 등의 말들이 있지만 아름답고 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장엄하기도 한 말 중의 하나가 본 시편의 처음과 끝에 2번 나오는 ‘할렐루야’란 말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시편 146편에서 150편 까지는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에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르는데 마지막 150편에서는 ‘할렐루야’가 특별히 강조되기에 ‘대 할렐루야 찬송’ 혹은 ‘대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시편 150편에는 ‘찬양’이란 말이 11번 나옵니다. 찬양할 때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신문기사를 쓸 때 육하원칙 하에 기사를 씁니다. 즉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육하원칙에 준해서 찬양이 무엇인지를 시편 150편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어디서 찬양해야 하는가?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이 구절에서 ‘그의 성소’는 ‘하나님의 땅 위의 성소’를 뜻하고 ‘그의 권능의 궁창’은 ‘하나님의 하늘의 성소’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당에서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찬양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 표현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표현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다른 곳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4-5장에 나오는 천국 묘사를 보면 가장 뚜렷하게 나오는 모습이 네 생물, 24장로, 천군천사, 흰옷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찬양이 넘치는 곳은 천국이고 비명이 넘치는 곳은 지옥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찬양이 넘치게 하면 그곳에 천국이 펼쳐집니다.

2. 왜 찬양해야 합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무엇보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라는 고백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능하시고 지극히 위대하신 행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과거에 하셨고 지금 하시는 모든 행동이 다 능하시고 지극히 위대하신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홍해를 가른 것만 위대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오늘 아침에 나를 깨워 주시고 하루의 삶을 지탱케 하신 것도 위대하신 일입니다. 또한 가정과 교회를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새로운 비전을 주신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매일 매 시간이 다 위대한 날들이고 위대한 시간들입니다.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진심어린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3. 어떻게 찬양해야 합니까?

 본문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모든 악기를 동원해 찬양하라는 이 표현은 모든 수단과 정성을 다해 최상의 찬양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는 춤까지 추면서 찬양하라고 도전합니다.

 이 시편에서 악기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은 동원할 수 있는 악기들은 다 동원해서 정성껏 모든 재능과 마음과 소리를 다해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이든지 즉 글 쓰는 재능, 그림 그리는 재능, 악기 연주하는 재능 등의 모든 재능을 다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동원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입니다.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듯이 찬양할 때 하나님을 흠모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마음이 담긴 찬양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4. 누가 찬양해야 합니까?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이 구절에서 ‘호흡이 있는 자’란 ‘살아있는 자’를 뜻합니다. 살아있기만 하면 최상의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권면으로 위대한 찬양시편은 끝납니다. 즉 다른 어떤 축복이 아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 시편의 결론적인 메시지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찬양은 가장 기본적인 본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살아있어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나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 18-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 말씀을 보면 결국 찬양은 성령충만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성령 충만의 가장 확실한 표식입니다.

5. 언제 찬양해야 합니까?

 어디서나 찬양해야 하듯이 언제나 찬양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도 찬양을 잃지 마십시오. 요즘 경제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더욱 찬양하십시오. 그런 삶이 기적의 원천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발이 차꼬에 채워진 채 빌립보 감옥에서 한밤중에 부른 찬양으로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렸습니다. 힘들 때의 기도와 찬양은 우리를 가로막고 장애물을 제거하게 만들고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을 끊어줍니다.

 어두운 밤에도 노래하십시오. 탄식 대신 기도하고 푸념 대신 찬양하십시오. 조만간 얼어붙었던 대지에서 싹이 날 것입니다. 대낮의 찬양보다 밤중의 찬양이 더욱 큰 역사를 불러옵니다. 대중 속에서의 찬양보다 홀로 있을 때의 찬양이 더욱 큰 역사를 불러옵니다. 늘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영혼에서 울려나오는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고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6. 무엇을 찬양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복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하나도 없는 것이 복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도 잘 극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조금 더 성장하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복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지 않게 하십시오. 세상적인 복과 신령한 복은 다릅니다. 세상적인 5복은 건강하고 장수하고 성공하고 화목하고 부자 되는 것으로도 다 가시적인 것입니다. 가시적인 복에 매료되지 마십시오. 아파트 평수로 복의 크기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복은 통장이나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대학 입시 때문에 주일성수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학에 못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성공하고 합격하면 좋습니다. 좋은 아파트에서 누리며 사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복은 아닙니다. 행복은 더욱 아닙니다. 그런 복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문제 중에도 평안을 잃지 않고 만족하고 감사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땀을 흘리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사실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거의 대부분의 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잘되는 것이란 개념보다는 하나님 믿은 것 자체가 복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바른 믿음을 가진 것이 최대의 복입니다. 새로운 복을 받는 것보다 이미 받은 복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복을 받는 것도 은혜지만 이미 받은 복을 깨닫는 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성도의 복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수한 복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의 일부만 깨달아도 최대의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시편 1편 첫 구절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시작하고 시편 150편의 끝 구절은 “할렐루야!”고 끝납니다. 복 있는 사람은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런 감사와 찬양이 넘칠 때 내일의 찬란한 세상도 열립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영혼의 만족과 천국 보상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비전이 넘치게 하십시오. 복을 달라고만 하지 말고 이미 있는 복을 누리며 사십시오. 성도가 세상 복을 너무 추구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한 컵의 물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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