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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도의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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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허황된 이론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신앙에 겉멋이 들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박제형 신앙생활을 한다. 이들은 자기 문제를 구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는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마6:33)"고 외친다. 사소한 문제를 구하는 것은 미숙함의 특징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소한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 없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아픔을 놓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인간인가? 자기 문제를 놓고 부르짖지 않는 것이 어찌 믿음인가?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다. 대적 브닌나의 핍박도 있었다. 그 괴로움을 안고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낳았다. 한나는 오직 자기의 문제, 자기의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했다. 그 응답의 결과로 아들을 얻은 것이다. 사무엘은 다윗 왕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사무엘을 통해서 사사시대는 막을 내리고, 왕정 시대가 열린다. 사무엘의 역할을 통해서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고, 다윗 왕국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이 다윗 왕국은 장차 올 메시아 왕국의 뿌리이기도 하다. 

한나가 이런 큰 규모의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을 리가 없다. 한나는 큰 안목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기의 불행을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사용해서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고 열심히 뛰다 보면, 수요곡선과 공급 곡선이 최적을 이루어 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그림을 몰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뛰다 보면 자원의 최적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이 현실에서 100%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이론은 위대한 발견임에는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기도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성실과 열정으로 기도하고 풀어나가면, 하나님은 그 성실과 열정을 사용하셔서 보다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요셉도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였고, 감옥에서도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은 바로 그 요셉의 성실과 믿음을 사용하셔서 보다 큰 뜻을 이루셨다. 영적 세계에서도 최적의 삶은 성실한 기도와 성실한 삶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의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씨름하는 사람이다. 그 씨름을 통해 1차적으로는 자기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본인은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일들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미래의 일들을 모두 다 알 수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성도는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가는 것이다. 믿고 가는 사람은 삶의 성실성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세상의 일들은 추구해서 이루어지는 일보다는 성실한 삶의 부수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더 많다. 성실은 재능을 이긴다. 성실은 천재가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 성실은 넘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이룬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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