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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편지]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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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편지] 행복한 사람  

- 이철환 동화작가 

모란앵무새 한 쌍을 사왔다. 모란앵무는 온종일 붙어 있어도 싸우지 않았다. 어찌나 금실이 좋던지 은근히 질투가 났다. 이른 아침부터 막내딸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모란앵무 한 마리가 죽은 것이다. 아내도 슬퍼했고 아이들도 슬퍼했다. 가장 슬퍼한 건 짝 잃은 모란앵무였다.

딸아이 데리고 앞산으로 갔다. 햇볕 환한 잣나무 아래 모란앵무를 묻어주었다. 짝 잃은 모란앵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물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 새 파는 집으로 냉큼 달려갔다. 짝으로 맺어줄 모란앵무 한 마리를 사왔다. 헛일이었다. 짝 잃은 모란앵무는 새로 온 친구를 기뻐하지 않았다. 몇 날을 굶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죽은 모란앵무를 헝겊에 싸가지고 앞산으로 갔다. 내 손을 잡은 어린 딸아이 눈에 마늘씨 같은 눈물이 맺혔다. 죽은 모란앵무를 먼저 간 친구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다. 우는 딸아이를 업고 잣나무 오솔길을 내려왔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란앵무만도 못한 나였다.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세상이다. 너무 쉽게 사랑하고 너무 쉽게 미워하는 세상이다. 모란앵무를 땅에 묻고 오던 날, 프리지아 한 다발과 꽃병을 사서 큰딸아이 책상에 갖다 놓았다. 마음 아픈 날엔 큰딸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딸에게. 이제는 백발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빠도 아직 철없는 자식일 뿐인데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구나. 언젠가 아빠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잖아.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싸움에 져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제껏 살아오면서 아빠는 늘 이기려고만 했어. 나이 드신 엄마에게 이기려 한 적이 있고, 착한 아내에게 이기려 했고, 친구에게 이기려 했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기려고 했고. 그래서 아빠는 뉘우칠 게 참 많았어.

아빠에겐 잘못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어. 나 하나만을 생각했던 시간들, 나만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시간들, 반지빠른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낯선 시간들. 이런 것들이 스스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는 잘 몰랐어. 아빠는 네가 진실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공부 때문에 불안해하지 마. 세상을 이끌고 가는 건 1등이 아니니까. 세상을 이끌고 가는 건 하나라도 올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니까.

아빠가 우울증으로 많이 아파 3년 동안 어두운 방에만 누워 있을 때, 아빠 손을 주물러 주었던 너의 손을 아빠는 잊을 수 없어. 아빠 가슴 속에 눈물처럼 남아 있는 너의 조그만 손이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거라고 아빠는 믿을게. 아파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거라고 아빠는 믿을게. 사랑하는 딸.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등불이 되자. 한 뼘만 우리를 버려도 사랑은 우리에게 올 테니까. 아빠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네가 자랑스럽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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