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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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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받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찾지 못한 것은 찾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두드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안 구하면 얻지 못할 것이고, 안 찾으면 찾지 못할 것이고, 두드리지 않으면 안 열릴 것이고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지 뭐!

 

우리 인간이 일반적으로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무엇을 갖고자 하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그 소유욕의 가치도 각자 자기 기준대로 구하는데, 크게 간단히 말하면 나이 어린 어린아이의 소유욕과, 청년들의 소유욕과, 어른들의 소유욕이 각각 다르듯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소유욕과, 예수 안 믿는 이방 세상 사람들의 소유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멍청한 사람은 소유욕도 없거니와 귀한 것도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서 귀한 것이 무엇이다라고 아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소유욕이 대단합니다. 예를 들면 금은보화 진주 보석반지 밍크코트 등등 임시적인 것, 도둑맞을 것, 불에 탈 것, 자기가 목숨이 위험한 것이지마는 밤낮으로 잠을 안 자고 그런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심이 대단합니다. ‘어디를 가야 빨리 그런 곳을 찾느냐하며 그 문이 열리라고 날마다 돌아다니며 아무 문이나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7절로 11절까지의 본문의 말씀이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그런 것을 똑같이 구하라는 말씀이냐? 우리가 암만 보아도 세상에 속한 물질성적인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냥 주시면 안 될까요? 그냥 주시면 귀한 줄을 모르고 그 가치력을 모릅니다. 마치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우리도 많이 경험을 합니다. 깨닫기 위해서 찾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애를 쓰고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서 받은 그것이 귀하고 좋아서 남에게 주면 하찮게 여기고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치 자기는 완전자가 된 것처럼,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는 자처럼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고 싶어서일까요? 궁금하지 않은가 말입니다. 아무렴 세상에서 제일 좋다하는 그 정도이겠느냐? 아닙니다.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구하겠느냐?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것,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현재 예수 믿는 자기가 성경을 100% 다 깨달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100% 다 성장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모자람이 없이 척척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된 것이니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땅에서 난 인간은 아직까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100% 온전히 자란 사람은 없습니다. 불과 몇 %나 자라고 아는지, 이치를 몇 개나 알고 있는지?

 

누구든지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것에 대한 부족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것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주는 사람이면 더욱 부족성을 느끼게 됩니다. 시급히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무엇을 구할 것이냐? 필히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 하나님의 옳음을 구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진리이치를 깨닫는 것.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

진리이치대로 적지적소에 실천하여 사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될 것을 구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역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성경을 안 보려면 아예 목회를 하지 말아라! 성경을 안 보고 목회하고, 무슨 꿈이나 음성이나 무슨 이적이나 무슨 간증으로 목회를 하는 자들은 이는 거짓 종들임을 자기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 종들은 이 문구(두드려라, 구하라)를 가지고 세상 것을 구하게 한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합니다.

 

문은 두드려야 열립니다. 문은 안에서 열어줍니다. 문을 왜 두드리나?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열어주면? 안으로 들어가려고! 들어가야 만나보고, 듣고 들어가야 무엇이 있는 줄 알지. 무엇이 있는 줄 알면 달라고 하기가 쉽지. 모두 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지마는 다 인간 자기 주려고, 나 주려고 준비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을!

 

그 신령계의 것을 갖기 위해서 성경의 문을 열어달라고 해야지, 깨닫는 문, 진리이치의 문을 열어달라고 해야지 어디 가서 무슨 문을 두드리느냐? 넓은 문 두드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넓은 문의 메뉴를 보면

사역목적 위주.

사람 끌어 모으기.

주머니 짜내기.

건물 짓기

노후대책 세우기.

어깨동무하기.

 

성경의 문을 두드릴 줄 알면 마음 문도 두드릴 줄 압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 문 두드리고 우리는 성경 깨닫는 문을 두드리고.

 

그런데 문을 두드리면 열어준다는 이것을 성경으로 들어가지 않고 기도로 신령한 세계를 보여달라니까 마귀가 그 소리를 듣고 얼른 열어주는데 성경 깨달음도 아닌 뭘 이상한 것을 보고 천국에 들어가서 보았다고 간증을 하는 이것은 전부는 마귀놀음인 줄 알아야 합니다.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신다?

내가 좋다고 하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어떻게 해 주시는 것이 좋겠느냐? 내가 구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보시고 주는 것이 더 좋지! 나는 이런 이런 것을 구했는데 전혀 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최고의 좋은 것을 주시려고 최고의 낮은 방편을 쓰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좋은 것까지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을 대접하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든지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대우받기를 좋아합니다. 대접을 받되 최고의 대접을 원합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무슨 최고의 대접을 원하는가?

 

그런데 대접부터 해야지! 하되 최고의 대접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최고의 것이 없으면 대접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물질의 것을 하고 싶어도 없으면 못합니다. 어쨌든 대접은 자기 것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대우받고 싶어서 공부도 하고 실력을 키웁니다. 대접을 하는 목적으로 공부하지 실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썩 보기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들은 대접을 받기 전에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왕이면 최고의 대접을 해야지. 대접받는 상대가 나에게 도로 주지 못할 것, 흔한 대접이 아닌 것, 세상대접이 아닌 천국의 최고의 것으로 해야지! 그러나 없으면 못합니다.

 

최고의 대접이 무엇이냐?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요, 아가페 사랑입니다. 나의 전 인격이 동원되는 대접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없는 대접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대접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대접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이것은 지상 최고의 하늘나라 사람으로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로!

 

그런데 보통 보면 대접의 가치성을 모르는 자들은 이런 대접을 안 받으려고 일부러 도망을 가는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꼭 돼지 같은 대접을 받아야 좋은지!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이 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든지, 밖으로 나가든지, 혹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통과하는 것이 문입니다.

 

들어가라, 들어가지 말라하고 그 결과를 말해 놓았으니 좁은 문으로 가든지, 넓은 문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자유로 인해서 걸어간 그 결과의 책임도 인간 자기가 지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의 명령이시라면 천 번 만 번 들어도 잔소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여간 힘 드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소원 목적과 취미와 간구성을 모두 버리고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좁기 때문에 몸만 빠져나갈 수 있지 짐을 들고 짊어지고 몸에 매달고 들어갈 수가 없는 문입니다. 이 좁은 문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예수 그리스도시요, 진리의 길이요 곧, 성화구원의 신앙사상입니다.

 

이 좁은 문을 단순히 천국으로 들어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로만 알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 좁은 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문이 크다.

 

문이 크니 그 문으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이고 들고 짊어지고 매달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안 버려도 됩니다. 세상을 향한 큰 포부를 마음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영웅성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길이 넓다.

 

그 길이 넓으니 타락된 세상지식을 기준 삼아 자기 마음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걸어도 됩니다. 술 먹고 가도 되고, 춤 추고 노래 부르고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가도 누가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매우 자유롭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살다 가자고 하고, 모두들 그렇게 살고들 있습니다.

 

그 길로 가는 자가 많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수없이 많아서 지금도 많이 가고 있지마는 옛날부터, 아담 타락 이후부터 마지막 그 날까지 보통 많이 가는 게 아닙니다. 길이 넓기도 하고 사람도 많이 가니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사람마다 재간도 많고, 특기자랑도 많고, 프로그램도 많고, 놀이기구도 많고, 얘기도 많고, 장난도 치고, 싸움도 많고, 영웅도 많고, 장군도 많고, 왕도 많고, 구경할 것도 많아서 세상 참 재미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해 가는 줄 모르고, 일생 가는 줄을 모릅니다. 좁은 길 가는 척 하기는 쉽지마는 실상은 이 넓은 길 가는 정신은 버리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이 생명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의 생명이요, 부활의 생명이요, 진리생명이요, 또 신앙생명이요, 성화구원의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습니다. 좁다 라는 것은 방향은 한 군데라는 말이요, 그 길로만, 그 사상으로만 산다는 말이요, 가르치고 사는 것이 그 길 하나밖에 없습니다.

 

문은 좁고 협착하다라는 말은 환난과 핍박을 받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느냐? 세상의 길과 다르고, 세속화된 세상적인 교회와 다르니 환난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고 죄악적인 것을 지적을 하고 나가니 더욱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 주격으로 살지 않고 새 사람 주격으로 살려니 스스로 제재를 받는 것도 많으니 가는 길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 길,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의 수도 적거니와 생명의 길로 인도를 하는 종들도 많지 않고 드물기 때문에 쉽게 찾아서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신앙은 흔하지 않다 라는 말입니다. 설령 발견을 했더라도 말로만 가르치고, 말로만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겪는 신앙이고, 진리신앙으로 인해서 오는 사건이기 때문에 견디다 못해 이 생명적 진리 신앙의 노선에서 이탈하고 도망을 가는 자가 많은 것입니다.

 

이 신앙은 내가 좁은 길로 가겠습니다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명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를 구원해 주신 감사에서 그 길로 가는 것이고, 영원 궁극적인 신앙의 삶의 그 결과를 아는 자가 그 생명 길, 좁은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 사도들이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 종은, 또는 인도자는 좁은 문, 생명 길로 가는 신앙사상과 넓은 길 멸망의 문, 멸망의 길로 가는 신앙사상을 잘 알고 절대로 두 가지 길을 동등시하지 않고 분별하여 그 궁극적 결과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는 생명 길, 좁은 길로 인도하면서 절대로 세상 타락적인 정신 사상, 또는 물질적 세상 소원 목적성을 못 가져가게 하고, 추려내고, 오직 영의 것, 영적인 요소로만 가지고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에 타락적인, 세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생명 길, 좁은 길을 간다고 하자. 만약에 그렇게 되는 날에는 그 사람은, 그 신앙은 떨어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낭떠러지의 좁은 길을 가다 떨어지면 죽는 것인데 벌벌 떨면서 바위 하나하나를 붙들고 가는데 어떻게 손에 어깨에 그 무엇을 들고 지고 가겠느냐? 목숨 하나는 살아야지! 살려면 다 버리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도 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세상이요,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세상이요, 육신의 입으로 먹는 것이 세상이요, 육신의 코로 맡는 것이 세상이요, 육신으로 접촉하는 것이 세상이라! 그러기에 자칫 잘못하면 그만 현실에 도취되어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 궁극적 결과적인 것이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생각을 할 때에 영의 눈으로 살피고 삼가 조심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가는 자가 많다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잘 안 가는 쪽을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왜 저 교회는 사람이 잘 안 가지? 이단인가? 저 교회는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이 가지? 뭐가 있나 보다. 우리도 한 번 가 보자!’ 하며 사람이 많이 가는 쪽을 좋게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교회는 개척한지 3개월도 안 됐는데 교인이 백 명이나 모인다더라! , 저 교회는 개척한지 1년도 안 됐는데 5부 예배로 본다더라! , 저 교회는 교인이 5천명이라더라! 헌금은 은행에서 트럭으로 싣고 간대!’ 하면 그만 입이 다물어 집니다.

 

좋은 이유이던 나쁜 이유이던 다 그 나름대로가 이유가 있겠지만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경계심을 주고 있습니다.(13, 14)

 

멸망이 무엇이냐? 무엇을 보고 멸망이라고 하느냐? 신앙 면에서 말하는 멸망은 영원 궁극적 결과적으로 성화구원이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고 완전히 성화구원이 파괴된, 황폐화된 것을 말합니다. 성화구원의 멸망으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자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안에서 사람 망한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쉬운데 예수를 수십 년을 믿고 교회를 오래 오래 다녔는데도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뭔지 구별을 못하고, 무엇이 성령의 일이고 무엇이 악령의 일인지 구별을 못하고, 인간 창조의 원인 동기와 목적이 뭔지, 인간 자기의 재세기간의 목적이 뭔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예수 믿기 전의 소원 목적을 그대로 가지고 입으로는 세상 타락성,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이것이 신앙 인격 면에서 완전히 황폐된 사람인 것입니다.

 

비 진리적 세상적 물질적인 가르침과 그 인도를 받고 나가면 영적 신앙 면이 완전히 파괴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영원 궁극적 멸망성이 보인다면 왜 그런 길로 가겠느냐?

 

그런데 보통 보면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생명 길, 좁은 길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고 멸망 길, 넓은 길은 단순히 예수 안 믿고 세상에서 부자로 죄 짓고 사는 그런 사람들로만 인식을 하니 비 진리적이며 육적이며 세상적이며 인본주의적인 그런 신앙의 사상들을 분별을 못하고, 성화구원의 멸망의 문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자기가 알던 모르던 자기 앞에는 생명 길 좁은 문, 멸망 길 넓은 문 이 두 가지 문밖에 없는 것이고, 역시 그런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어느 한 문을 향해서 가는 중이니 어느 문으로 인도를 받고 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는 대접이(12)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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