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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는 길(1)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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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한 사람을 일으키는 길(1)

(요한복음 20장 24-31절)
 

1.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낙심과 두려움으로 모인 다락방의 문을 꼭 잠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신비하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부활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왜 없었을까요? 도마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열정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 열정이 극단으로 흘러 열을 잘 내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열정을 잘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엉뚱한 일에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 운전할 때 혹은 주차할 때 지나치게 열을 냅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생일을 한번 잊었다고 한 달 이상 말하지 않고 어떤 남편은 귀가했는데 아내가 자고 있다고 다시 집을 나가 버립니다. 도마도 속상하면 말없이 뛰쳐나가는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뛰쳐나갔다가 나중에 뭐라고 합니까?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 주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25절).


  도마는 가까이서 만져봐야 믿음과 사랑이 생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약간의 거리가 떨어진 것이 믿음과 사랑의 확인에 더 좋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행동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허물없는 것’과 ‘무례한 것’은 다릅니다. 거리 없는 사랑은 맹목입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가 잘 보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사랑과 믿음에는 ‘가까운 친밀성’도 필요하지만 ‘거리를 둔 존경심’도 필요합니다.


  그처럼 도마는 의심이 많고 부정적이고 삶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송곳처럼 콕 찌르는 말을 하는 힘든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다시 그를 찾아오셔서 그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만약 그때 주님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면 도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후 위대한 전도자가 되어 나중에는 인도에서 화살에 맞아 순교합니다.


  결국 본문 26절에 나오는 ‘다시(again)’란 단어에는 엄청난 복음의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허물을 드러내도 외면치 않고 또 다시 우리를 찾아와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는 일은 있어도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다 우리 곁을 떠나도 그때 예수님은 더욱 가까이 찾아오십니다. 그 예수님을 붙잡고 일어서면 실패조차 성공으로 나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2. 감정 터치를 해주십시오


 자녀를 교육할 때 감정의 터치가 중요합니다. 감정을 인정해주면 잘못도 인정하는 여유가 생기지만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잘못도 인정하는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조급하게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고 어른 입장만 내세우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꾸중 들었을 때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대개 압니다. 그 잘못을 확인시키려고 하기보다 감정을 먼저 위로한 후에 그 잘못을 깨우쳐주십시오. 감정의 터치 후에 교육해야 참된 교육이 이뤄집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그를 탓하기보다는 그의 철없는 요청대로 “내 손을 보고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동해서 마침내 “주님은 나의 주님이고 나의 하나님입니다.”란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28절). 주님처럼 감정 터치의 프로들이 되십시오. 기독교인은 ‘타자를 위한 존재’입니다. 항상 남만 기쁘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의 감정을 생각해 조금 더 남을 배려하며 살자!”고 다짐하는 마음이 복된 마음입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 때는 “내가 이렇게 선한 사람이지.”란 자부심까지 버리십시오. 사탄은 선행을 통해서도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 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면 그때 사탄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처럼 칭찬을 기대하며 베푸는 선행은 ‘사랑’이 아니라 ‘자랑’입니다. 칭찬과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과 배려가 진정한 기쁨과 행복과 보상을 줍니다.


  서로의 감정을 만져주고 서로 받아주고 서로 살펴주십시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도 “그 사람 정말 재수 없어! 생각만 해도 짜증나!”라고 하지 말고 “그렇게 살면 얼마나 상처도 많고 외로울까?”하고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 써줄 때입니다. 그러면 점점 자기 마음에 기쁨과 행복과 사랑이 고이는 것을 체험할 것이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사업과 가정과 자녀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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