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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끄러움을 이기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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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인도에 상존하는 카스트 제도는 한 인간의 가치를 태생적 조건에 의해 결정하고 이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모든 사람을 억압하는 악습이다. 인간의 가치가 혈통에 의해 세습되고 출생 지역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도, 사람의 상식에도 어긋난다.

혈통과 지역에 의해 본인의 의사나 행위와 무관하게 멸시와 천대를 수용해야 함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런데 최근 카스트의 4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계층인 달리트(Dalit), 즉 불가촉천민들이 자녀들에게 IT교육을 시켜 만성적인 가난과 천대를 극복하려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이사야 9장 1절 이하 말씀에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가 역사적으로 멸시와 천대를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메시아 예언이 등장한다. 12지파가 땅을 분배받을 때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는 갈릴리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은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농토 덕분에 곡창지대로 간주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변방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약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부 세계와 교류가 이뤄지면서 이방의 문물과 문화와 관습이 스며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경지대였던 이곳은 자주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이사야 당시에도 앗수르의 침공이 있었고 이곳을 점령한 앗수르는 주민들을 대거 이주하게 하는 대신 앗수르인들이 들어와 살게 했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혼합된 문화가 있고 혼혈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 되어 남쪽의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처럼 취급당하게 되었다. 이곳을 '이방의 갈릴리'로 부르게 된 데는 이런 역사의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변방의 국경지대에 사는 것 때문에 피할 수 없이 이방 세계와 접하게 되었고 국가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이방인의 군대에게 능욕을 당했는데 그 결과만을 두고 이방인처럼 2등 국민 취급을 하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도 이런 억울함을 당할 때가 종종 있다. 혈통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으면서 눈물지을 때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모든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갈릴리의 스불론과 납달리 땅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한 아기의 탄생으로 명예 회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임을 확언하셨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혈통이나 신분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유대주의를 거부하셨다. 그는 세계 모든 만민이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으며, 회개하는 자마다 천국의 백성임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는 누구나 명예로운 삶이 보장되고 태생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발전도 가능하다.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의 수치는 결코 혈통이나 지역, 신분이 될 수 없다. 회개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 영원한 부끄러움일 뿐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드시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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