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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점자의 발명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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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의 발명


 만일 눈이 보이지 않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면 삶 자체가 힘들 것이다. 더구나 무엇을 배우거나 읽거나 할 수도 없어 지식을 습득할 수도 없어 미래가 더욱 더 어두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시각장애인이었던 루이 브라유(1809-1852)가 점자를 발명하여 볼 수 없는 맹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점자가 발명되기 전까지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직업도 가질 수 없어 장애와 가난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점자가 널리 보급되고 쓰이면서 시각장애인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활동할 수도 있게 되었다.


4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은 브라유는 처음에는 장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만 박혀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일어선 것은 부모님 덕분이었다. 부모는 브라유가 어렵더라도 스스로할 수 있는 일을 가르치며 자립심을 길러주었다.


처음에는 우물에서 가족들이 마실 물을 길어오게 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돌 뿌리에 걸려 넘어져 어렵게 길은 물을 다 쏟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루이 부모는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도전 정신과 용기, 끈기를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1819년 루이는 열 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의 왕립맹아학교에 입학한다. 거기서 처음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를 배웠다. 하지만 당시 문자는 읽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학교 도서관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14권의 책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3년간의 연구 끝에 15세 때인 1824년 점 6개로 알파벳 26 글자를 모두 표기할 수 있는 점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가 만든 점자는 체계적이고 규칙적이어서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루이 브라유의 점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불편한 채 방치해 둔 것이다. 그러나 루이 브라유는 불가능에 도천하므로 이 편견을 깨뜨렸다. 자신이 절망해 보았기 때문에 어둠에 있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용기와 도전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점자는 현재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이것을 자국의 문자에 맞춰 사용하고 있다. 점자의 모양은 크고 작은 점 4개로 된 ‘뉴욕 포인트’와 루이 브라유가 만든 6개로 된 점자가 있는 데 현재 6점 점자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0년대 그리스도교 선교사에 의해 4점으로 된 뉴욕 포인트 점자가 먼저 들어왔다. 이후 1920년대 중반에 6점 점자가 들어오고, 제생원 시각장애인부(현 서울맹아학교)의 교사. 학생들이 한글 점자를 연구하여 1926년 ‘훈맹정음’을 발표한 것이 점자 사용의 시초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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