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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믿는 자도 고난을 당하는가?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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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을 안 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다가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다른 점은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며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다 이겨서 승리의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며 모든 환경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1. 예수님도 당하신 고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사람이 당하는 고난을 모두 당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어 배가 전복되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도 그 배를 타고 그 강을 건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풍랑이 심히 일어났는데도 배 안에서 주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고난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알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로 38절에 보면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풍랑 때문에 절망적으로 좌절한 제자들이 주님을 깨웠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고 즉시 잠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풍랑을 당하셨지만,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마귀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들을 다스려주신다고만 생각했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린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바람을 다스리시고 바다도 다스리십니다. 또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님이 다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고난을 극복하는 십자가의 은혜


 고난을 극복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고난을 당하지만, 골고다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으면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고난을 피할 수 만은 없습니다. 그 고난을 올라타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수레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라는 수레가 우리를 태우고 고난에서 축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서 우리가 큰 기쁨으로 살 때에도 고난은 다가옵니다.
 “주님 왜 고난을 주십니까? 내가 나쁜 일도 안 했는데. 이 고난을 멀리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이 고난이 네가 꿈꾸고 있는 영광에 도달하는 시발점이다. 고난길이 너의 운명이 출발하여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 앞에서 곡식단들이 일어나서 자기보고 절한다는 것을 말하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다고 말해서 가족들이 꿈꾸는 자라고 놀리며 굉장히 멀리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꿈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꿈이 황금수레를 타고 도달했으면 좋겠단 말입니다. 요셉은 그 꿈을 꾸고 난 다음부터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형들에게 붙잡혀서 마른 우물에 던져져서 죽게 된 고난의 출발로 행상들이 물건 팔러 애굽으로 가는데 종으로 팔려 종으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고난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 그것이 문제가 되어 더 큰 고난인 시위대뜰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내 팔자가 왜 이러냐? 하나님의 꿈을 꾸고 약속을 받은 사람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서 고난으로 가니 웬일이냐?’고 한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난이 알고 보면 영광으로 가는 수레인 것입니다.

 우리가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편안하기만 하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고난이 다가오면 ‘아 출발이구나’ 이렇게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고난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고, 다른 고난이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종으로 팔린 그가 시위대뜰 감옥에 종신형을 받고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가졌는데 현재 처지는 버림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갔기 때문에 떡장관, 술장관을 만나서 꿈을 해석해 주고, 그것이 바로의 귀에 들려서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된 것입니다. 그 고난이 급속도로 변해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영광에 도달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와서 누군지도 모르고 절하고, 도움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은 우리를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큰 영광은 큰 고난을 가져오고, 적은 영광은 적은 고난을 당하게 하는데, 고난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지 마십시오. 요셉은 고난당했을 때, 불평을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고난이 다른 고난으로, 또 다른 고난으로 바통을 넘겨주면 그 고난은 수레가 되어 하나님이 예비한 영광으로 들어가게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당한 모습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믿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고, 허물을 사함 받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한 우리의 저주를 대신해서 나무에 달렸으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음부를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오중복음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거기에 속한 병이나 고통은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통하여 죄와 허물을 극복하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그 공로를 우리가 믿고 받아들여서 병을 정복해버리고, 가난과 저주를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린 은혜를 받아서 이기고, 죽을 때에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예수님이 모두 다 정복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예수님은 우리 귀에 대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나를 바라보고 고통을 바라보지 마라. 나를 바라보면 네게 은혜와 축복을 주고, 넉넉히 이기게 해 주겠다”

 그러므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인 것입니다. 죄와 허물, 병, 저주, 죽음을 예수님께서 다 다스려 놓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긍정적인 생각, 확고한 꿈, 흔들리지 않는 믿음, 창조적인 말씀의 선언을 성령께서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큰 축복으로 이끄는 수레이므로 고난이 올 때 너무 피하려고 애쓰지 말고 감사를 해야 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시련이 꿈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출발하는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언약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3. 예수님을 모신 성도의 정체성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으로 표현한 때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질그릇에 담긴 황금 보화라고 합니다. 우리 몸이 질그릇이면 예수님은 보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후 4:7∼8)

 우리를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고 사방으로 원수들이 욱여싸지만 우리들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와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답답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과 시작이요, 나중과 끝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늘 답답하지 않습니다. 환한 곳으로 곧장 인도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고후 4:9)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아도 마음에 버린 바 되지 아니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9) 완전히 넘어뜨려도 우리는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11)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사는 동안에 예수로 말미암아 죽을 고생을 많이 하면, 그 다음에는 예수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의 넘치는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내가 받아들이고 의지하면 예수의 부활도 내게 다가와서 나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35절과 37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죽인 세상에 마귀의 도구가 어디든지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우리가 당하게 되면, 예수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역사가 그 뒤를 따라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되면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어요. 놀라운 체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가지려면 그 조건을 구비해야 되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사과나무가 무조건 사과를 열매 맺지 않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햇빛도 있어야 하고, 적당한 비도 내려야 하고, 온도도 적당해야 합니다. 또 병충해도 입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되고, 확고한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선언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같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어야 성령께서 그 속에 들어와 있을 수 있어요. 꿈꾸는 사람이어야 성령이 와서 같이 꿈을 꾸어주지요. 믿음을 가져야,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으면 성령이 와서 같이 역사해 주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선언해주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말을 이루어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면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의 말을 믿지 않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그 부모와 제자들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8절로 41절에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굳게 믿고 나아갈 때, 성령께서 그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과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환난이 다가와도 우리가 환난을 바라보고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난은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과 시편119편 71절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잠언 17장 3절에는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야훼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용하셔서 우리들을 교육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를 깨뜨려서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하게 되고, 주님 옆에 무릎을 꿇는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고난도 필요 없습니다만, 꿈이 있는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육상경기를 할 때 “준비∼호로록”불면 뛰는 것처럼, 고난이 그 호루라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난 하나하나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는 말씀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해 주셨어도, 이 인생이 만들어지는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고통을 가져오면 곧장 그 뒤에 보혜사 성령이 따라와서 그 고통을 우리가 타고 가는 수레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두고서 마귀와 성령께서는 늘 씨름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붙잡아서 이제는 죽이겠다고 생각하면, 성령이 그 뒤를 따라와서 성공의 깃발이 휘날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세상에 환난, 고통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에나 환난과 고통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곳에 계신 것입니다. 소원을 갖고 꿈을 꾸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령이 같이 와 계시고, 입술로 고백하는 데 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항상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귀신이 와서 역사하지만, 그 뒤를 성령께서 따라와서 만사가 합동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곤고나 시련 당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성공을 갖다 주는 것을 알고, 믿고, 감사드리게 되시기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서 고난이라는 폭풍을 만날 때, 함께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이 우리의 고난을 영광으로 이끄는 수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영광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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