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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22:43

그들 둘은 하나처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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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창세기

그들 둘은 하나처럼 걸었다.

창22:1-8


*이 제목을 쓰고 나니 얼마 전에 자살한 롯데그룹의 부회장이 떠올려진다.듣는 바에 의하면 그도 ‘기독교회 장로’란다.

그런데 그분은 누구와 하나처럼 걸었냐 하면, 그의 자본주와 하나처럼 걸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사악 같은 인물, 그리스도 같은 존재는 천만 아니다.

 

오늘 여러분은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러 가는 장면을 읽으셨습니다. 대략적으로 지금까지 이 본문을 읽는 기독교대중들이나 설교가들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그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우리의 한글 개역성경만 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집혔다가 50년 만에 돌아와서 모세오경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했던 아람어 성경의 오늘 본문을 읽게 되면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그 다른 생각을 여러분에게 요구할 생각입니다. 먼저 제가 가지고 있는 ‘탈굼 올켈로스 창세기’로 오늘 본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1.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아!”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2.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예배드리는 땅으로 가라. 그리고 산들 가운데 내가 너에게 일러 줄 그 산, 거기에서 그를 내 앞에 번제물로 바쳐라.

3.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놓았다. 그리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주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일어나 갔다.

4.셋째 날에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저만치 떨어진 그곳을 보았다.

5.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하였다. “여기서 나귀와 기다려라. 나와 이 아이는 그곳에 도착하여 절을 하고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6.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게하고 자기 손에는 불과 칼을 들었다. 그들 둘은 하나처럼 걸어갔다.

7.이사악이 아브라함을 부르며 말하였다. “아버지.”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이사악이 물었다.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드릴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번제물이 되어야 하는 게 맞지요?)

8.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내 아들아, 번제드릴 양은 주님 앞에 나타날 것이다.”그리고 그들 둘은 하나처럼 걸었다.

 

한글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람어 성경에는 이 조마조마한 장면 속에 아들을 제물로 바치러가는 아버지와 제물이 되려는 아들이 ‘둘이 하나처럼 걸었다’즉 ‘한 마음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2장에만 등장합니다. 한 절 걸러서 똑 같은 구문이 반복 됩니다. 이렇게 ‘한 마음으로 걸었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면을 배제하고 이것이 이 본문의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니까 금이야 옥이야 하는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거나, 그런 줄 알면서 묵묵히 따라가는 아들이삭의 순종 같은 이야기가 22장의 주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지경에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같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거라는 말입니다. 한 마음으로 길을 가서 실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여쭤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치매가 걸릴까 말까한 그런 나이입니다. 치매가 걸리지 않았더라도 나이 100살의 어른쯤은 중학교 1학년 정도의 힘으로나 뚝심으로 얼마든지 저항이 가능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아브라함의 나이입니다. 더군다나 이삭은 30이 가까운 청년입니다. 아이라고 번역 되어 있으나 본문의 ‘나이르’라는 원문은 ‘건장한 청년’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아들과 아버지가 이 일을 꾸미게 될 때, 사실 나이 100살의 아브라함의 의지가 더 많이 작동 될까요 아니면 건장한 청년 이사악의 의지가 더 좌지우지할까요? 이사악이 아버지에게 했다는 질문 7절을 탈굼 성서로 한 번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불과 나무는 있습니다. 번제로 드릴 숫양은 어디에 있지요?”(제가 번제물이 되어야 하는 게 맞지요?) 기가 막히게도 어떤 성서 사본에는 괄호를 치고 이삭의 말을 넣어 두었는데 그게 “제가 번제물이 되는 게 맞지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듣거나 읽어왔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사악의 질문을 부정적이고 의문문으로 이해를 했다면, 지금 이사악의 질문은 반대로 모리아산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해하는 늙은 아버지의 마음과 행동을 안정시키는 아들의 결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아들 이사악의 건장한 결심 즉, 죽으로 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따라 나서는 그 행위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이사악의 3일 길, 제물로 바쳐지는 처지, 자기가 죽어야만 제물이 되는, 죽으러 가는 길인 줄 알면서 의젓하게 가는 길, 늙어서 결심이 흔들리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이사악이 누구의 원형이 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제물, 삼일, 죽음의 자발적 결단과 그 결과를 떠올려 보세요. 훗날 신약성서의 기자들은 예수의 신학적 구성을 삼으려고 할 때 바로 이사악을 떠올려 예수의 죽음과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26:26-36의 예수 마지막 기도는 오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는 7절의 이사악의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세요.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 이게 이사악과 예수님의 공통된 자기 결심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반대급부를 읽고 그것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억지의 행동이 아닙니다. 설령 그게 천국을 보장하는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오늘 이사악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지하고자 하는 [믿음]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하늘의 숙제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 그 ‘과제 수여자와 하나처럼 걷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숙제를 인지하기 위해 삼일 길 을 가야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신앙의 수행이며, 확인된 바를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하는 삶이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삶이란 바로 이사악의 아버지 아브라함 즉,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하나님과 하나처럼 걷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뜻과 함께 걷기 위해 말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세요.”

 

여러분은 누구와 하나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까?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 즉 하나님과 하나처럼 길을 갔다는 것이 창세기 22장의 내용입니다. 자신이 누구와 하나처럼 길을 가고 있는지, 그걸 보면 그 사람의 불행과 행복의 내일을 점칠 수 있습니다. 무엇과 하나처럼 길을 가고 있는지 그걸 보면 그의 최후와 최후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비극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고한 가치와 하나처럼 걷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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