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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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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               

창41:17-40


  우리나라보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풍부한 나라 중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런 나라들에 비하여 매우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근대 50여 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이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그런 나라들이 왜 아직도 가난하고 낙후되어 있을까요? 그 이유는 지도자들이 철저하게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부패가 너무 깊고 심해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나라들에 비해서 땅도 좁고 자원도 부족한 우리는 그래도 이만큼 잘 살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었습니다. 경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2-3배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소비와 사치와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심지어는 기업들까지도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금융위기를 만나게 되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경기가 어렵고, 모두들 언제 나아질지 알 수 없다고 한탄을 합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왔습니까? 경기가 좋을 때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칠 년의 풍년 동안에 다가오는 칠 년의 흉년을 잘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형통하고 평안할 때 환난의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특히 성도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미리 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잘 준비한 사람은 그날에 영광스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바로 앞에 선 요셉


  바로는 이상하고 충격적인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너무나도 특별했는데, 바로는 그것이 신의 계시임을 직감했습니다. 충격적인 꿈을 꾼 바로는 아침에 애굽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을 불러 그 꿈을 해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바로는 더욱 답답하고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요셉을 천거했습니다. 오랫동안 기약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은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고, 드디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셉을 보자마자 바로는 반갑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 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15절) 이 때 요셉은 꿈의 해석은 요셉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16절)


  지금 요셉은 천하의 바로 앞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의 권위 있고 전통 있는 전문가들과 석학들이 풀지 못했던 바로의 꿈을 해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담대하고 침착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절대군주였던 바로는 문제 앞에서 번민하며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담대하고 침착하게 바로 앞에 섰습니다. 얼마나 대조되는 모습입니까? 뿐만 아니라 요셉은 자신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담대하고 침착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문제를 선하게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꿈을 말하는 바로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이 꾸었던 꿈을 말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주는 자가 없느니라”(17-24절)


  창세기 저자는 본문에서 바로의 꿈을 다시 한 번 그대로 되풀이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바로의 꿈을 기록했는데, 여기서 또 다시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다루기를 원하십니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시큰둥하게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설교를 드라마 보듯이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반쯤 졸면서, 딴 생각을 하면서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분명히 붙잡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집중하십시오. 이것이 말씀에 대한 합당한 자세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꿈을 해석하는 요셉


  바로의 꿈을 들은 요셉은 즉시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주저하거나 연구해보고 대답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꿈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영적 통찰력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25-32절)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모습은 당시 애굽의 점술가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첫째, 그는 엑스타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대개 당시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꿈을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온전한 정신으로 분명하게 꿈을 해석했습니다. 둘째, 요셉은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어떤 자료들이나 사례들을 들먹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아무개가 이와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꿈을 해석했습니다. 대개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애매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애굽의 점술가들이 꿈을 해석하던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의 해석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바로가 그토록 번민하며 고민하던 문제가, 애굽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이 그렇게 쩔쩔매며 속수무책이었던 문제가, 요셉의 몇 마디 말로 모두 명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당신이 가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말씀에 헌신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며 그대로 순종하기를 힘쓰십시오. 일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적인 술수와 생각을 개입시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기도하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까? 그냥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인간적인 생각으로 재보거나, 내 생각을 개입시키지 말고 그대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일이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대책을 제시하는 요셉


  요셉은 꿈을 해석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책까지 제시해주었습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33-36절)


  요즘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주장과 비판이 난무하지만, 정작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비판이 아무리 옳고 날카롭다 해도, 대안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하면 즉시 신랄한 비판이 나옵니다. 다 옳고 일리가 있는 비판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애굽이 엄청나게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요셉은  단순하고 명쾌한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풍년이 드는 칠 년 동안 곡물의 오분의 일씩을 거두어 저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뒤이어 오는 극심한 칠 년의 기근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형편이 좋고 형통할 때 어려운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책은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대책이었습니다. 20년 전 IMF 외환위기를 만나기 이전에 우리 사회는 사치가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최고의 사치품들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부동산 투기는 또 얼마나 심했습니까? 기업들도 기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오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사치하거나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풍년일수록 더 절제하고 저축해서 흉년을 대비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환난의 때와 마지막 심판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애굽의 전권을 줌


  요셉의 해석과 대책을 들은 바로와 신하들은 요셉의 말을 좋게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는 요셉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애굽의 전권을 부여하여 총리로 삼았습니다.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37-40절)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요셉의 해석과 대책을 좋게 받아들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애굽이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굳이 애굽의 전권을 위임하고 총리로 삼을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이미 그 대책까지 다 나온 마당에 말입니다. 이미 대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대책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형편이 계속 좋을 때는 사람들이 방심하고 해이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풍년이 들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아마도 요셉이 말한 대로 수확의 오분의 일을 저축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그런 풍년이 계속되면 교만해지고 방심하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닥치겠느냐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라면 이 모든 일을 차질 없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삼아 그에게 애굽의 전권을 위임했던 것입니다.


    재림신앙


  칠 년의 풍년은 큰 축복임과 동시에 시험이요 유혹이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단순한 축복인줄 알고 맘껏 즐기면서 칠 년을 보낸다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칠 년의 흉년에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가 어렵다, 살기가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평안한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환난의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 때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규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입이 들어오는 대로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대책이 없게 됩니다. 중요한 기회가 와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버립니다. 평소에 아끼고 절제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오늘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깨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38-44)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이 재림신앙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성도는 깨어서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재림신앙이 희미한 성도는 세상에 집착하여 살며, 그 날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성도는 말씀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말씀에 바로 서 있는 성도는 세상의 풍요와 평안 가운데서도 교만하거나 나태해지지 않고, 주님 오실 그 날을 깨어서 준비합니다.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항상 깨어서 주님 오실 그 날, 마지막 심판의 날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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