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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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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2,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행동 활동 말씀 이적 기사 구속사나 성령의 역사나 책망이나 징계나 심판이나 나에게 하신 처사나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가치 평가적으로나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 못할 일이 어디 있느냐? 전부는 의이고 선이고 진실이고 거룩인데 무엇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시인을 못 하랴!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현재적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시인을 받는 사람으로 사람 자체가 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들어 있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정하면 역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인을 하는 행동 활동 마음 취미 정신 사상을 가질 수록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인격적인 사람으로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앞에서 하는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으로 직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순간 순간 매 순간마다, 어느 지역 장소마다 사람 앞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면에서 어느 환경에서는 주님을 시인하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도 못 느낍니다. 자기의 느낌에, 감정에 좋으면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모르느니 만큼 부인을 하게 될 것이고, 주님을 아느니 만큼 주님을 시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화평은 평화라고도 하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화평이 있고, 세상 인간들이 원하는 화평이 있습니다.

 

화평은 어떻게 오느냐? 서로 화해해야 화평이 오는 것. 서로 양보를 하면서 의견일치를 보는 것. 그래야 만이 화평이 오고 평화가 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세상평화는 항상 속에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에 금방 또 깨어져 버립니다.

 

세상 사람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화평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집집마다 가화만사성을 원하고, 약방이나 식당이나 술집에도 이 집에 들어오는 이에게 평화!’ 하고 안 붙여 놓은 집이 없고, 심지어 들어가는 문에도 행복의 문을 여세요!’ 하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전쟁과 불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마귀일 테지!

 

그런데 온 집안이, 온 사회 국가가, 온 세계 국가 민족이 평화하자, 화평하여 사이좋게 지내자해 놓고 금방 돌아서서 언제 그 약속을 했느냐는 듯이 금방 그 약속은 깨어지고 또 다시 미움과 살인과 전쟁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서로 잘 놀다가 금방 돌아서서 싸우고, 먹는 것 주면 금방 또 친해지고 하듯이 공부를 많이 하고 세상 경험도 많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어른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전쟁을 하는 것을 보면 참말로 귀신들린 세상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얼마나 잘 깨어지는지 평화하자고 싸우고, 평화를 안 한다고 싸우고, 모두는 내 방식으로 평화를 하자는 것이니 세상에서는 평화가 없고 화평이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세상의 화평이나 평화의 개념은 모두 다 영이 죽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타락된 기존적 지식에서 나온 화평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고 국가고 모두 조건부 평화요, 물질성적 평화요,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존재에 따라, 사건에 따라 모두 변질되는 화평입니다.

 

아무리 화평을, 평화를 하자고 부르짖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 타락된 인간의 세계에서는 근본적으로 화평이나 평화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없는 화평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화평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지기를 바로 만들어져야 먼저 하나님과 화평이 되고,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화평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두 다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으로 만들어지면 화평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화평을 믿지 못하고 타락된 화평을 주장하기 때문에 타락된 화평은 사단 마귀의 역사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화평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립된 의사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고로 인간이 원하는 화평으로 하나님이 따라가면 안 될까? 그러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더 잘 돌릴 터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화평을 들어주지 않을까? 세상 인간들이 원하는 화평을 들어주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지 않을까? 안 되지만 가령 그렇게 해 준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노아홍수 때처럼 누림성으로 들어가고, 소돔 고모라 때처럼 사람들이 본능성으로 짐승의 짓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면 살기가 조금만 편해지면 세상 곳곳에 죄악적인 유흥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이 원하는 화평, 또는 평화를 만들어주면 인간의 세상은 그 만큼 빨리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 해 주지만 보다 더 중요한 뜻은 세상이라는 이 세상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궁극적 성화구원을 이루는 장소입니다. 시련과 연단과 훈련의 장소입니다.

 

이 세상이 화평이 안 되고, 평화가 안 되는 것은 성도의 궁극적 성화구원의 훈련이 필요해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정도 있고 훼방도 있고 일반적인 선악도 동원되고 사단 마귀의 충돌과 마찰과 대립과 호응적 대립도 있습니다. 거짓 사도, 거짓 종, 거짓 교사, 거짓 목자, 이단들, 각종 기독교주의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구복주의, 기독교 신비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극기주의, 기독교 구국주의, 기독교 현세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염세주의 등등 이방사상과 이방종교적 사상들의 요사스런 함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훈련의 재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벙 하거나 게으름을 피고 있으면 병이나 다른 여러 가지 사건들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와서 두들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예정된 자녀들이 누구들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의 전도방편으로 그들을 불어내어야 하는고로 세상성과 죄악성을 돌격을 하고 정복을 해서 마귀의 노예된 상태에서 진리의 자유에로 정신과 사상적으로 풀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지식적 의사적으로 대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으로 맞추고 살자하면 아니다, 나는 돈 많이 벌어 부자로 살겠다하니 세상은 점점 더욱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한심스럽고 통탄할 일은 우리 교회들이 대부분 임시적인 세상의 소원 목적적으로 예수를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시대 때에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 왕을 향해 몸 밖에 있는 길르앗 라못을 쳐서 먹지 말라 했는데 바알의 선지자 400명은 가서 쳐서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은 들개 밥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어 죽은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사람을 망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가정들이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을 버리고 비 진리적 이질적 교회끼리 끼리 단합을 하고, 더 나아가서 이방종교와 단합을 하고 하는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의에 도전하여 일어나는 땅의 짐승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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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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