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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혹시 그대가 이 사람 아닙니까?

  • 허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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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혹시 그대가 이 사람 아닙니까?

요5:1-13

 

수술이전의 제 몸무게는 74킬로 언저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저울에 달린 제 몸무게는 65.2킬로입니다. 어느 날은 64킬로까지 내려가기도 했는데, 그 날은 일어나서 오줌도 눌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퍼뜩 성서의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나더러 주님이 ‘일어나 걸어라’하실까? 그러면 걸을 수 있을까? 상황이 베데스다의 이 사람하고는 다르지만 같은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을까?

 

성서 본문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병자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는 비참한 모습이 나오죠. 3b-4절 부분을 표준 새 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때때로 주의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기 때문이었다]])

 

그른데 여러분이 이 괄호부분을 잘 보아야 합니다. 표준 새 번역에서는 겹 대괄호를 쳐 놓았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첨가가 명백해 보이는 부분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7절에 나오는,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으로 들어갑니다."라는 환자의 말을 근거로 해서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 써 넣은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그 부분이 없고 난하주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우리가) 이 내용을 성경본문으로 착각하고 이것을 기정사실로 해놓고 나머지 본문을 읽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해석의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부분을 괄호 쳐 놓고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 물이 움직일 때 병이 낫는다는 것은 사실 진실이 아니라, 몸 아픈 사람들이 믿는 미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런 미신을 의지하여 헛된 기대를 하면서 그렇게 누워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 읽은 7절 말씀은 38년 된 중풍병자가 한 말인데, 그도 그런 잘못된 미신 혹은 믿음에 빠져서, 늘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한탄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며 38년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의 문제는 그의 육채적인 질병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믿는 그릇된 믿음 혹은 미신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내내 그건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육체적 질병만 문제를 삼고 예수를 보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대개 불만과 원망에 싸여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된 방법으로 삶을 추구하고 있어서 실패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늘 남을 원망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삶을 개선하는 방법이 틀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과 신념의 질병환자인 그에게 예수는 뭐라 하십니까?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8절)입니다. 이 구절은‘일어나라’,‘걷어라’,‘걸어가라’이 세 개의 명령문이 합쳐진 것인데, 병자에게 병이 낳을 것을 명령하는 게 아니라 그릇된 의식 혹은 미신의 그 못가에서 떠날 것을 강하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질병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그의 의식을 끊는 것입니다. 그런 미신으로는, 생각으로는, 의식으로는 생명도 구원도 없으니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아니 여태 그걸 믿고 살았는데 그걸 버리라는 겁니다. 상황을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까?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쩌면 평생토록 믿어온 인습과 믿음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 명령은 동시에 치료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는 몸의 병을 고치기전에 그의 미신과 같은 의식을 먼저 고쳐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이 38년 된 미신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의 몸도 낫게 되는 동시성이 있습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은 ‘건강해져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는 그의 삶의 새로운 시작과 병의 치유를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좀 깊이 해 보세요. 38년을 그릇된 미신하니 믿고 살아왔어요. 예수를 만났을 때도 그게 문제라고 스스로 말했어요. 그런데 예수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그의 몸을 누구보다 먼저 연못에 던져 주는 대신, ‘냉큼 일어나 여기서 가라’고 했을 때 이 병자의 생각에는, 병을 고쳐준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을까, 아니면 몸에 밴 그 미신을 버리라는 말로 듣고 당혹했을까, 어느 쪽일까요?

 

제가 병원에 있다가(하룻밤에 45만 원짜리 격리실)차도가 있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신장 수치가 올라가서 부랴부랴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신장수치가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룻밤을 집에서 지내는데 얼마나 불안한지, 그렇게 밤새 근심하다가 45만 원짜리 병실에 턱 입원을 하고 제가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집보다 병원이 더 편안하다.”였습니다. 한 달 사이에 나는 의료진과 약물에 대해 의존도가 높아져서 내 몸의 치료는 약물과 의료진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자라있었던 것입니다. 한 달 만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38년이나 그렇게 살았으니, 오직 믿는 건, 물이 동할 때 누군가 자기를 그리로 넣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그를 보고 ‘냉큼 이 자리를 떠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기적은 선물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주어집니다. 그가 일어서는 것과 치유 받는 것이 동시적인 사건이듯이 선물을 받는 것도 그와 동시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는 베데스다 못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환자에게서 일어난 은총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선물은 아닙니다.

 

그 기적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이

"당신에게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고 한 분이 누구요?"하고 병이 나은 사람을 추궁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침 받은 그 사람은 자기를 고쳐 준 분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습니다(12-13절). 그래서 ‘나를 낫게 해 주신 분’이라는 칭호 아닌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믿음이 치료의 전제 조건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치유와 구원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믿는 사람에게 조건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붐비는 틈을 타서 그 곳을 빠져 나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예수는 좋은 일을 하고도 그렇게 몸을 피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그의 기적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기적은 그 병자에게는 선물이지만 법조문만 따지는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법 위반이요 신성모독일 뿐이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으로 들어갈 희망을 버린 사람에게는 예수의 기적이 선물이었지만, 여전히 그 못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관념의 앉은뱅이들에게는 예수의 기적은 거리끼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처지와 삶과 생각과 정신과 가정과 사회에 변화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게 예수가 이 세상에 일으키는 생명의 기적이고 선물입니다. 하지만 베데스다 연못의 38면 된 병자처럼, 병이 문제가 아니라 그릇된 믿음, 미신, 신념, 관습, 습관, 체념 같은 구습에 젖어 자기를 바꿔 볼 생각과 결단은 하지 않고, 못의 물만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한, 백 없고 힘없어서 저 못에 먼저 들어가지 못해서 이렇게 못 산다고 하는 잘못된 회한에 사로잡혀 있는 한, 누구도 예수가 주는 그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를 아무리 믿어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 자기를 지배하는 생각과 미신의 견고한 자리를 걷어차고 떠나야 합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 순간에 이미 기적은 시작되고 기쁨에 찬 생이 선물로 주어질 주어집니다. 변화가 시작되고 삶이 활기차지게 됩니다. 이렇게 이전의 삶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의료진을 믿고 누워만 있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내 발로 걷기를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조금씩 새 힘이 생깁니다. 약물보다는 스스로 음식을 씹어 먹고 몸의 기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은 ‘너의 오래된 미신과 습관에서 떠나라“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기적도, 생명도, 구원도, 변화도, 새로운 삶도 없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오래되면 오래 된 대로 모두 버리고 일어나 걸어가세요.. 그게 현재와는 전혀 다른 새 삶을 사는 길입니다. 혹시 그대가 베데스다 연목못가에서 그릇된 미신을 믿으며 38년이나 살아온 그 사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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