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목적과 수단

  • 한태완 목사
  • 286
  • 0

첨부 1


목적과 수단 

어떤 동네에 교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를 한 대 구입해서 매일 아침 깨끗이 닦 었습니다. 그러나 그 차는 언제나 전시장 신세에 머물러 있었고, 그는 결코 그것을 길 위로 끌어내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그것을 지켜 본 이웃이 물었습니다.
"그 차에 무슨 고장이라도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밖으로 내놓지 않으니 말이오. 언 제나 당신의 차고 안에 있더군요." 그는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그것을 너무나 사랑해서 밖으로 끌어내면 무엇인가 잘못될까 봐 항상 걱정하고 있어요. 사고나 긁히는 일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 사람이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강은 홍수가 쳐서 범람해 아주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한 척 있어서 그들의 생명을 구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배가 우리를 구해 주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이 배를 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우리의 구조자이므로 버리고 가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배를 머리에 이고 마을로 가져왔습니다. 이를 본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저는 아직까지 배를 나르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이 배를 들고 다녀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배는 우리를 구해 주었으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물의 목적은 물고기를 잡기 위함입니다. 물고기가 잡혀지면 그물은 잊혀집니다. 말의 목적은 생각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생각이 이해되면 말은 잊혀집니다. 이처럼 자동차나 배 그리고 그물과 말은 모든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수단에 얽매어 본질적인 목적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율법이 나 교리, 그밖의 모든 종교형식들이 오히려 진리로 나아가는 데 방해를 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합니다.
김동인이 쓴 "감자"라는 단편 아야기입니다. 주인공 복녀는 가난한 농가에서 착실하게 자라납니다. 그녀는 열 다섯 살 나이에 돈에 팔려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남편은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라 얼마 못가서 물려받은 재산을 다 날리고, 복녀 부부는 빈민굴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한 복녀는 송충이 잡이를 나갔다가 음흉한 감독의 눈에 들어 일하지 않고도 몇푼씩 챙겨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얼굴에는 분(화장)도 발랐습니다.
그들 부부의 생활도 궁하지 않게 됩니다. 가을이 되자 복녀는 동네 여인들과 함께 중국 인 왕서방의 밭에 가서 감자며 배추를 곧잘 훔쳐 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밤 복녀는 감자를 훔쳐가지고 나오다 왕서방에게 잡히게 됩니다. 그뒤부터 복 녀는 왕서방집에 자주 갔고, 왕서방도 복녀집에 찾아 다녔습니다. 왕서방을 안 후 부터 복녀 부부는 빈민굴의 부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복녀에게 싫증을 느낀 왕서방은 어떤 처녀를 새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질투심에 불타는 복녀는 왕서방의 배신보다는 어쩐지 새색시만 한없이 미웠습니다.

복녀는 손에 낫자루를 들고 신방에 찾아가 신부를 혼내어 쫓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왕서방이 이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습니다. 분을 못참은 복녀는 낫을 휘둘렀으나 이내 피를 흘리며 푹쓰러진 쪽은 복녀였습니다. 복녀의 시체는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시체주위엔 세 사람이 둘러앉았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한방의사였습니다. 왕서방은 돈주 머니를 꺼내어 복녀 남편과 한방의사의 손에 쥐어줍니다. 이렇게 하여 사흘이 되던 날, 스물이 갓넘은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사의 사망진단에 따라 공동묘지에 묻히 고 맙니다. 돈받고 묵인해 주는 한심한 남편, 의사가 양심을 저버리고 허위진단을 내린 한방의사, 이들은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딤전4:2)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사람의 생명은 결코 돈으로 환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오늘날 부자가 인생의 목표가 되고 돈이 삶의 목적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은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옛날 가난한 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덕군자였고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읽어 둔갑술도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한 의원이 찾아와 개 천 마리를 먹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효자는 한밤중에 도술을 부려 호랑이로 둔갑했습니다. 그리고는 전국을 돌아다 니며 개도둑질을 했습니다.
개 9백99마리를 잡아와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도 거의 나았습니다. 이제 한 마리만 먹으면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남편의 행적을 이상하게 여겼던 아내가 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로 둔갑했던 그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거친 호랑이로 날뛰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도 죽고 그의 아내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이 이야기는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수단이 그릇되면 안된다는 경고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구실로 남의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서양 격언도 바로 이런 것을 깨우치고자 한 것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사회질서를 혼탁하게 만든 무리들이,사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고 변명한다면 이는 그 개도둑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서는 살인, 전쟁, 거짓말,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자행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을지라도 악한 방법을 써서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마귀의 방법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령 천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백해 무익한 수전노 한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 같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악한 방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로마의 법으로 처형당하시면서도 그들을 진멸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활과 승리를 주셨고, 세상을 사랑으로 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요일서2:21)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목적과 수단"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