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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풍병의 치유를 통해 주의 음성을 듣다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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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의 치유를 통해 주의 음성을 듣다

눅5:17-26

2015.11.1

오늘 본문은 여러분에게 다소 익숙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하루는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람이 많아 그렇게 할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예수께서 계신 곳을 겨냥하여 기와를 벗기고 큰 구멍을 내어 병자를 침상 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풍병자의 치유와 관련하여 몇 가지 주님이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장애물을 뛰어넘게 한다는 것입니다.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 놓으려고 했을 때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장애에 부딪혔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기의 일도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낙심하여 뒤로 물러가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정 조준하여 기와를 벗기고 큰 구멍을 내어 병자를 침상 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남의 집 지붕위로 올라가서 기왓장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 앞에 있었던 장애는 보통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넘을 수 없는 장애였습니다. 그냥 맨몸으로도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이 힘든데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지붕까지 올린다는 것은 쉽겠습니까? 또 지붕을 뜯는 것은 더 큰 장애였습니다. 집 주인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아서 그렇지 지붕을 뜯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나중에 지붕을 원상복구하는 데에 따른 비용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애는 그들의 믿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갖고 중풍병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결국은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왜 성경은 이런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목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에 장애가 있다고 주저앉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장애물은 포기하라는 정지신호가 아니라 극복하라는 정복신호입니다. 장애앞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혹 문제 앞에서 낙심하고 주저앉고 있습니까? 오늘 이 사건을 거울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최초로 북극을 탐험한 ‘피어리'(Robert E. Peary)는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이 8개나 잘리고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는 벽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길을 찾고야 말겠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만들겠다.” 그리고 결국 믿음으로 도전하여 여섯 번 만에 북극 탐험에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현대 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도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그의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읽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빈대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빈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빈대에 대해 너무 잘 압니다. 모기와 빈대는 60년대와 70년대 농촌사람들에게는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빈대에 물려 잠을 설치는 날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도 큰 성공을 이루기 전까지는 빈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빈대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묘안을 냈습니다. 그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 침대의 다리 4개를 각각 그 속에 넣었습니다. 그러면 빈대가 오다가 양동이 물에 빠져 침대로 못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스스로 정말 기막힌 생각을 했다고 득의양양해하며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빈대에 뜯겨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빈대가 자신을 물었는지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그 순간 빈대들이 천장에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빈대들이 사람의 피를 먹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침대로 가는 길이 막히자 천장으로 기어올라 고공 낙하를 하였던 것입니다. 고 정주영씨는 이것을 보고서 빈대에게서 백절불구의 정신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극을 최초로 탐험한 피어리나 현대창업자인 고 정주영씨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으로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념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입니다. 신념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장애물 앞에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그 때마다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쇠고랑을 차는 죄수의 몸으로 마침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네 사람이 믿음으로 장애를 극복하므로 중풍병자를 고침받게 하는 것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더처치와 D3왕의사역’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이것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해외에 나가서 능력전도를 하고 목회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을 모아 제자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누가 제일 타격을 받습니까?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이 일을 방해하므로 이런저런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네 사람이 가졌던 불굴의 믿음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장애를 극복하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장애물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백절불굴의 믿음을 소유하므로 거대한 꿈을 이루는데 즐거운 동반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지붕을 뜷고 중풍병자를 내린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일하십니다. 따라서 삶 속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려면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단지 구원을 받은 수단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받은 후에도 그리스도인이 사용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말을 빌려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근거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고 기적을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시지 않고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믿음의 주인공이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런데 중풍병자의 경우는 믿음의 주인공과 기적의 주인공이 다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으로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자신의 문제만 해결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다른 사람의 문제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나 남편이나 아내의 믿음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믿음으로 그들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식구가 어떻게 홍수 심판 때에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들 각자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한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온 가족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족들의 믿음 없는 것을 인하여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믿음으로도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음을 믿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근거로 자신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가 구원 받는 방법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성경은 분명히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면 그의 마음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지만 가족들이 그 배에 타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모든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0-2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22-24).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접속사 ‘but’은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반대인 경우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화를 보면 앞뒤의 내용이 반대가 아닙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답을 들으시고 그것에 반대되는 말씀을 하셨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곧바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중풍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 세상을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보다 못하신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을 고쳐주시기 전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풍병자는 주님께 나아갈 때에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중풍병만 고침받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중풍병을 고침받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불행의 시작이 죄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병만 나으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래야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인 죄를 해결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 받은 감격과 기쁨을 잃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 받은 감격과 기쁨을 잃으면 우리의 삶은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잘 살 수밖에 없는데 단지 그들이 세상에서 잠시동안만 잘사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문제 중의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 받은 것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인지를 깨닫고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송명희 시인은 나면서부터 뇌성마비로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습니다. 글도 제대로 쓸 수 없어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생을 저주하고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의 확신을 얻자 삶이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육신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우고, 감사와 찬송과 감격에 넘치는 삶을 살며 영감이 넘치는 시를 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고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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