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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역사를 바꾼 사진 한 장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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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사진 한 장


1960년 4월 18일 종로 4가에서 3·15 부정선거를 반대하며 시위 중이던 고려대 학생들이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맞아 쓰러졌다. 이 괴한들은 후에 정치깡패로 밝혀졌다. 사진기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깡패들 때문에 함부로 카메라를 들 엄두조차 못 냈다. 낮이라면 몰래 찍을 수 있었지만 밤이어서 사진을 찍으려면 플래시를 터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 현장에 있던 조선일보 사진기자 정범태는 ‘이런 현실을 찍지 않는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 맞아죽어도 찍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왔다. 목숨을 걸고 찍은 그의 사진이 다음 날 신문 사회면에 실렸고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1972년 월남 전쟁이 한창임 무렵 AP 통신사의 신참 사진기자인 후잉 콩 닉 우트(Nick Ut)가 사이공(현재 호찌민) 근처 작은 마을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갈 무렵 겁에 질려 발가벗고 울며 도망치는 한 소녀를 보고 촬영하였다.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소녀가 입고 있던 무명옷에 불이 붙었고, 살기 위해 불붙은 옷을 벗고 화상을 입은 채 거리로 나온 순간이었다. 소녀를 살려야 겠다는 마음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바로 소녀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거부한 의사들을 설득해서 전신화상을 입은 소녀를 살렸다. 당시 나체 사진을 싣지 않는 통신사 내부 규정에 의해 사진이 못 나갈 뻔했지만 가치 있는 사진이어서 전 세계 매체를 타고 전해졌다. 이 사진이 미국 내에서 월남전에 대한 반전 여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터키 남서부 한 휴양도시 바닷가에 밀려 온 파도가 아이 얼굴을 적셨지만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가 꼼짝하지 않았다. 제복을 입은 무심한 공무원이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 때 그 곳을 지나던 토키 도안 통신사의 닐류페르 데미르(Domir) 여성 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촬하였다. 그녀는 12년 동안 수많은 난민을 촬영했다.

이 아이는 부모와 형과 함께 IS를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탈출한 세 살난 아일란 쿠르디(Kurdi)였다. 안전한 나라를 찾아가다가 보트가 뒤집혀 엄마와 형이 함께 죽어갔다. 엄마와 형의 시체도 근처서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보호 장비가 없이 탔다가 보트가 뒤집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에게 냉정하고 규제가 심했다. 이 사진과 사연을 보고 들으며 마음이 바뀌었다. 슬퍼했고 분노하며 반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찾는 저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데미르의 사진 한 장이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나타내는 사진 한 장의 힘이 이토록 크게 작용하여 역사를 움직인 것이다. 말 한 마디가, 작은 선한 행동들이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고 역사를 움직인 사건들이 많다. <조인원의 사진 산책에서>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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