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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돈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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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된 사람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라틴어로 인격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가면’이라는 의미다. 흔히 우리는 가면이라는 말을 이중성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인격이라고 해석한 것은 이중성에 대한 개념보다 잘 정돈된 자기 내면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격적이란 말은 내면의 본능적 욕구와 갈등을 스스로 조절해 정돈된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능력임을 의미한다.

자기 본능을 통제하지 못해 있는 그대로의 내면적 욕구를 분출하고 살아가면 이들을 가리켜 인격 파탄자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교제해온 무기수 형제 한 분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순간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평생을 교도소에서 갇힌 자로 지내게 된 사람이다. 그는 늘 자기 다스림의 중요성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주문했다. 자기 실패가 타인에게 반면교사가 되기 원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자기 다스림이나 정돈의 능력을 우리는 ‘절제’라고 부른다. 그래서 옛 헬라인들은 문명인이 가져야 할 가장 고도의 인격적 요소를 절제에 뒀다. 성경의 가르침도 예외가 아니다. 잠언의 말씀들은 구절마다 자기 다스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교훈했다(잠 16:32). 

그런데 이런 자기 다스림의 능력인 절제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 수련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물론 자기 수련이 절제의 능력을 키움에 있어서 필요불가결의 요소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원천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이란 아무리 갈고 닦아도 선한 것이 될 수 없는 본래적 한계성을 명백히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절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가르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제시하는데 그 마지막에 ‘절제’를 말했다. 아마도 신앙적 인격의 최고봉에 자기 다스림에 능한 절제의 열매가 가능함을 가르친 듯하다. 

본래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바 가장 고귀한 성품인 절제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게 된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자기 다스림’의 대표적 인물이다. 유혹 앞에서 자기를 다스렸고 탐욕 앞에서 자기를 다스렸다. 무엇보다 17세 꿈 많던 시절 노예가 되어 팔려갔어도 절망과 포기의 압력 앞에서도 끝내 그 절망감을 다스리고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요셉을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아름답게 자기를 관리해 노예 죄수의 신분에서 총리의 자리에 이른 것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살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무절제가 난무한다. 거리에 나붙은 구호 속에, 주고받는 대화 속에 절제는 없고 욕망의 다스림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중을 동원해 욕설을 일삼고 또 다른 종류의 메카시즘적 마녀사냥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품격있는 나라의 모습도 아니다. 정돈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인격적이듯 우리 사회가 속히 정돈될 수 있어야 선진문명 사회일 수 있다. 그 시작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돼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자기 다스림의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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