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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 중에도 더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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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도 더러는  

- 김흥규 목사 (내리교회) 


여러 교회, 여러 집회에 다니며 말씀을 전할 때마다 청중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한다. 누구 말대로 처삼촌 산소에 벌초하듯 쉽게 해도 마음문을 활짝 열고 잘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별별 기교를 총동원해 전해도 시큰둥한 이들도 있다. 왜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말씀을 듣는데 반응은 각양각색일까. 전도의 경우에도 수용하는 쪽과 거부하는 쪽으로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팔레스타인에서 농부가 파종할 때, 건기인 4∼9월까지 메마른 땅은 사람들이 열심히 다녀 생긴 지름길도 있고 밭 가에 길이 날 수도 있다. 석회석투성이의 자갈밭인 까닭에 옅은 흙과 잔돌이 뒤섞여 있다. 밭 주변에는 가시 돋친 잡초가 수북이 자란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땅도 있다. 딱딱한 길가, 얄팍한 돌밭, 질식할 것만 같은 가시 떨기, 좋은 땅은 이스라엘의 현실이다. 

농부가 씨앗을 한 움큼 집어든 채 걸어가면서 뿌린 다음에 밭을 간다. 미리 기경을 해 이랑이 생기지 않았기에 씨앗이 정확히 옥토로 투척되기 어렵다. 모든 씨앗이 좋은 땅으로 낙하되지 않고 길가, 돌밭, 가시덤불로 분산될 수 있다. 파종자의 입장에서 씨앗을 낭비해서도, 결실에 실패해서도 안 되지만 이스라엘의 농지와 농법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씨앗 낭비와 결실 실패는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상당수는 꼭 옥토로 떨어져 놀라운 수확을 약속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농부는 낭비하고 실패할 씨앗을 생각하고 씨를 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히 더러는 낭비하고 실패도 하겠지만 그 중에 더러는 반드시 옥토로 떨어져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므로 거기에 희망을 건다. 농부의 기대는 적중한다. 세 번의 낭비와 실패를 일거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100배, 60배, 30배의 세 수준으로 대풍이 일어난다. 이제 세 차례의 낭비와 실패는 세 수준으로 일어난 대성공에 비하면 아주 경미한 것이 된다.

예수님이 아무리 힘써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도 도통 결실의 기미가 엿보이지 않았다. 시간과 에너지 낭비요,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영영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다 옥토가 아니라 박토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경험이요 고백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박토가 아닌 옥토에 희망을 걸고 계속 씨앗을 뿌리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신다. 

얼핏 보면 말씀의 씨앗을 뿌리기 전에 청중의 마음밭은 길가, 돌밭, 가시덤불, 옥토 등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박토의 경우 최고의 설교자가 최고의 말씀을 전해도 결실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도 더러는 옥토로 떨어져 놀라운 수확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믿기에, 거기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오늘도 설교와 전도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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