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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도를 거부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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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를 거부하는 교회

- 레너드 스위트 (미국 드루대 석좌교수)


16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제네바의 주교 프란시스 드 살레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물었다. "얼굴에 분을 바르는 것이 죄가 되나요?" 드 살레가 답했다. "글쎄요. 어떤 이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또 어떤 이들은 죄라고 하네요."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그 여인은 다시 명확한 답을 요청했다. 그러자 드 살레는 미소를 띤 채 이렇게 말했다. "중도 노선을 선택하시지요. 한쪽 볼에만 분을 칠하고 다니세요."

중도 노선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중도라는 것은 난처한 선택의 상황에서는 매력적인 제안이 되기도 한다. 회색분자라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면피'를 위한 최선의 선택처럼 보이는 것이 중도 노선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딱히 하나의 중심이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양상은 현재 중도 구조(제도적 권력)에서 양 극단(개인적 권력과 전 지구적 권력)으로 이동 중이다. 21세기 성공적인 경제정책은 다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즉 메가브랜드(Mega-brands), 또는 틈새 전문가(Niche specialists)가 바로 그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강하고 거대한 다국적기업이거나, 작고 민첩한 기업이 성공적 기업의 모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곤란을 겪을 브랜드는 어정쩡하게 중도에 있는 것들이다.

사회적으로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상위 10%가 하위 90%보다 더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 1973년에서 92년 사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10%의 가족들이 받았던 실질임금은 11%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부유한 10%의 임금 상승률은 18%에 달했다. 중도의 소멸의 현실이 되고 있다.

사실상 많은 주류 교회들이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중도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명목을 그럴 듯하게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금 중도를 선택한 교회들은 중산·중도층의 감소와 함께 파산 위기에 놓이게 됐다. 명심하라, 오늘날 '중도적 신앙'은 쇠퇴 중이며, 중도라는 산마루는 점점 더 평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는 모순과 역설을 외면하고 중도를 복원하는 데서 발견되지 않는다. 진리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분열적 현상이 가져다주는 긴장감과 의미를 숙고하고 받아들일 때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오순절 당시와 같이 성령으로 뜨겁든지, 사회와 문화 속에서 신앙을 목숨 걸고 실천하든지, 아니면 이 둘 모두를 넘나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영성과 삶의 정점을 향해 달리면서 진리의 양날인 '역설적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 번역·정리=김영래 (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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